[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굴탕면을 먹다가 '프랑스 남자'가 생각났다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그 집 굴탕면이 맛있어요."
오래전부터 밥 한번 먹자고 하던 지인과 점심 약속이 잡혔다. 날짜가 확정되고 나서 내가 문자를 보냈다.
"장소는 OOO 대표가 좋아하는 곳으로 정하면 내가 그쪽으로 갈게요."
약속 전날 서울 동부이촌동 중국집으로 정했다는 카톡이 왔다. 내가 "동부이촌동?"이라고 반문하자, 그는 "굴탕면이 맛있다"고 덧붙였다. 지하철에서 조금 멀기는 했지만 나는 굴탕면이란 말에 두말없이 좋다고 했다.
국물을 한 숟갈 넘기고 탱글탱글한 굴을 씹었다. 굴의 육즙이 입안에 퍼져나갔다. 나는 금방 포만감에 취했다. 역시 겨울에는 굴이 들어간 음식을 자주 섭취해야 한다고 중얼거리면서.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그릇을 비웠다.
굴이 들어간 식사나 요리를 나열해본다.
굴밥, 굴국, 굴탕면, 굴미역국, 매셍이굴국(이상 식사류)
생굴, 굴전, 굴튀김, 굴구이, 어리굴젓, 굴초무침(이상 요리류)···.
굴은 동양에서는 바다의 인삼, 서양에서는 바다의 우유로 불린다. 굴이 몸에 좋은 자연식품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전설적인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등장한다. 카사노바가 매일 20개의 생굴을 먹었기 때문에 여러 여성과의 연애가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굴이 몸에 좋은 자연식품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개개의 메뉴에 들어가면 호불호가 갈린다. 대체로 굴전은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밀가루와 계란옷을 입혀 중불에서 지글지글 익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굴 향이 집안에 퍼져나가면 누구라도 입맛을 다시지 않을 수 없다. 노릇노릇한 비주얼에 금세 침이 고인다. 나는 개인적으로 굴튀김보다는 굴전을 더 선호한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같은 동남아에서도 굴전과 비슷한 요리가 있다.
생굴에 관해서는 호불호가 극명하다. 나는 갯내음이 물씬 나는 비릿한 향기의 생굴을 좋아한다. 바다의 짠맛을 품고 있는 거칠고 야성적인 금속성 맛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맛으로 인해 고개를 젓는 사람도 있다.
성문종합영어에는 굴과 관련 영어문장이 앞부분에 나온다. 굴은 1월부터 12월까지 'r'이 없는 달에는 먹어서는 안 된다. 달(月)을 표기하는 단어 중에 'r'이 없는 달은 오월(May), 유월(June), 칠월(July), 팔월(August)이다. 일 년 중 4개월은 굴을 먹을 수 없다는 뜻이다. 프랑스어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는 벚꽃이 지고 나면 굴을 먹지 않는다. 4월이면 벚꽃이 홋카이도를 제외하고 다 떨어지니 영미권의 통념과 거의 맞아떨어진다. 날이 따뜻해지고 바닷물이 더워지는 여름철에는 굴에 독소가 생긴다. 이런 굴을 잘못 먹으면 비브리오 패혈증에 감염된다.
외국 여행을 하다 보면 한국의 굴 가성비가 좋다는 것을 종종 깨닫게 된다. 오래전 런던 여행 중에 타워브리지 근처에서 우연히 굴을 사 먹은 적이 있다. 때는 오월이었는데, 동양인이 노점에서 굴을 팔고 있는 게 신기해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굴을 사서 아들과 함께 하나씩 나눠 먹었다. 굴 하나에 1파운드(약 1500원)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동양인은 태국 사람이었다. 알이 굵었지만 신선했다는 기억은 없다. 오히려 조금 맛이 상하기 직전이었던 것 같았다. 그때가 오월이었다는 사실을 유념했다면 그렇게 충동적으로 사 먹지 않았을 것이다. 굴 노점상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서 굴 장사를 보고 내가 그만 흥분하고 말았다.
굴의 수도와 굴의 제국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면 뉴욕에서 살아남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팝아트의 황제 앤디 워홀은 "성공이란, 뉴욕에서 직장을 잡으면 그게 성공"이라고 일갈했다. 경보선수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뉴요커들을 뉴요커답게 만드는 메뉴가 굴 요리다. 대서양과 면해 있다 보니 뉴욕 식당가에는 다양한 종류의 신선한 굴이 공급된다.
굴은 뉴욕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뉴욕과 멀지 않은 곳에는 오이스터 베이(Oyster Bay)라는 마을이 있다. 바닷가에 지천으로 널린 굴을 보고 네덜란드인이 붙인 이름이다. 19세기 뉴욕 앞바다에 굴 양식이 보급되면서 굴이 대량 생산되었다. 거의 모든 식당에서 굴 요리를 팔았다. 뉴욕을 가리켜 '굴의 수도'라고 불렀다. 굴 소비가 폭증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20세기 초반 굴 양식업자들이 수요를 맞추려 씨알이 굵은 외국 종자를 들여왔다. 그런데 이 외국 종자에 세균이 숨어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외국 종자와 함께 침입한 세균은 뉴욕 양식장의 토종 굴을 초토화했다. 흔하디흔했던 굴이 갑자기 귀해지면서 값이 폭등했다. 그때부터 굴의 수도라는 위상이 흔들렸다.
뉴욕의 굴 전문 식당 중에서 널리 알려진 곳이 '오이스터 바'(Oyster Bar & Restaurant)다. 미국에서 가장 큰 기차역인 '그랜드 센트럴'에 있는 식당이다. 뉴욕에서 기차로 출퇴근을 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그랜드센트럴을 이용한다.
'오이스터 바'는 제롬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 등장하면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오이스터 바'는 식당 이름처럼 오이스터가 주요 메뉴다. 손님은 빈자리에 앉아 커다란 직사각형 칠판에 적혀 있는 안내판을 읽는다. 굴 종류와 종류별 산지가 빼곡하다. 블루포인트, 스텔라 마리스, 클레오, 오솔레, 빅록···. 복잡해 보이는 주문서에 병원 문진표 기록하듯 표시를 한다. 큰 접시에 차가운 굴이 8~10개 나온다. 여기에 화이트 와인 한 잔을 곁들이는 것이 뉴요커의 식도락이다.(코로나19 여파로 현재는 임시 휴업 중이다)
앨버타는 캐나다의 대표적 부자 주(州)다. 원유와 샌드오일이 나오기 때문이다. 앨버타는 또한 세계적인 소고기 생산지다. 캐나다 소고기하면, 앨버타산 소고기를 뜻한다.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스테이크 중 최고는 앨버타 스테이크였다. 1990년대 중반 캐나디언 로키를 여행하던 중 밴프(Banff)에서 먹어본 스테이크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앨버타에는 소목장(ranch)이 많다. 자동차로 몇 시간 달려도 목초지만 보이는 곳이 앨버타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목초지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소 떼를 보노라면 소 팔자도 타고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앨버타 제1의 도시는 1988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캘거리다. 캘거리의 큰 식당에 가면 아주 특이한 메뉴가 있다. 프레리 오이스터다. 마운틴 오이스터라고도 한다. Prairie Oyster? 굴은 바다에서 나는 것인데, 무슨 대평원 지역에서 굴이?
소고기 수출은 비육우(肥肉牛)가 대상이다. 수소 중 형질이 우수한 놈을 종자 소로 쓰고 나머지는 전부 거세해 비육소로 만든다. 철저한 우생학이다. 생각해보라. 그 광활한 목장에 어슬렁거리는 수소가 얼마나 많을까를. 타고난 운명대로 살지 못하고 거세당하는 비운의 고환들을.
그 고환 숫자가 얼마나 많겠나. 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버릴 게 하나도 없는 가축이다. 그렇다면 엄청나게 쏟아져나오는 '구슬들'은 어찌하나? 그냥 땅속에 파묻어 버릴까.
아니다. 이 구슬들을 냉장시켜 보관했다가 튀겨서 접시에 내놓는 게 프레리 오이스터다. 막 추출한 생김새가 알이 큰 생굴을 닮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내가 가본 캘거리의 한 식당에서는 마침 프레리 오이스터가 메뉴에만 나와 있고, 재료가 공급되지 않아 먹어보지는 못했다. 대신 설명만 들어야 했다. 어쨌든 요리 이름이 기발하다. 프레리 오이스터.
더이상 쓸모없어진 수컷의 고환을 요리로 먹는 것은 서양의 오래된 식문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가졌던 첫 직업은 요리사였다. 비록 요리사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는 다양한 레시피를 남겼다. 그중 하나가 '꿀과 크림을 곁들인 새끼 양 고환 요리'다.
21세기 굴의 제국은 프랑스다. 프랑스는 유럽 최대의 굴 생산국이다. 매년 200종의 굴 12만톤(t)을 생산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생산량 대부분이 프랑스 안에서 소비된다는 점이다. 프랑스인은 12월부터 굴을 먹기 시작하는데 대부분 생굴로 먹는다. 프랑스 남자들이 섹스를 잘하는 이유가 굴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굴에는 전립선에 좋은 아연 함량이 풍부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프랑스인의 굴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사례 하나. 20세기 파리의 프루니에 레스토랑에서는 모든 메뉴를 굴 요리로 채웠다. 지금도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여러 종류의 굴을 맛보는 '굴 테이스팅 메뉴'를 즐길 수 있다.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파리를 사랑했다. 1920년대와 1940년대 두 차례 파리에 머물며 파리를 탐닉했고 여러 책에 파리 찬가를 썼다. 그중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에 보면 굴 먹는 법까지 친절하게 기록했다.
"굴을 먹을 때, 진한 바다의 맛과 희미한 금속 맛을 차가운 화이트 와인이 씻고 바다 풍미와 즙이 많은 질감만 남을 때, 껍질에 담긴 차가운 즙을 마신 뒤 분명한 맛으로 씻을 때, 공허감을 잊고 행복해져서 앞일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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