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제의 먹거리 이야기] '물김치와 김치 대란'
(서울=뉴스1) 전호제 셰프 = 올해 겨울은 지난해보다 추운 날이 될 거라고 한다. 더위가 끝나며 5월부터 돌리던 매장 에어컨을 끄고 영업하게 되니 계절 변화가 실감이 난다.
올해는 태풍 피해가 적었지만 채소 가격은 고공행진을 하더니 이제 배추 한 포기가 1만 원을 찍었다.
명절 용돈으로 "배춧잎 한장만 주세요"라면서 푸른색 1만 원짜리 지폐를 부르던 이름은 현실이 되었다.
매장에서 수년간 납품하던 국내산 김치는 지난주부터 중국산으로 제품을 바꾸었다. 국내산 배추와 중국산 고춧가루로 만든 상품이었는데 앞으로는 제공하기 힘들다고 했다.
마트에 간 김에 집에서 먹을 김치를 소량 만들어 보았다. 배추 1포기 8700원, 무 1개 2400원, 쪽파 1단 4500원에 구입했다. 집에 있는 양념으로 추가 비용을 빼면 1만 5000원이 들었다. 다듬고 씻고 깎고 절이고 5시간이 걸렸다. 김치는 2.5리터, 깍두기는 1.5리터 한 통이 나왔다.
일반 김치 4㎏이 대략 4만~5만 원 든다고 하면 아마도 당분간 이렇게 먹어야 할 것 같다.
엊그제는 동네 사시는 어머니 친구분이 나박김치를 조금 나누어 주셨다. 무, 배추에 매콤한 고춧가루로 국물을 낸 입맛 당기는 맛이었다.
이런 물김치류를 먹으며 든 생각이 요즘 같은 때에는 물김치를 만드는 게 낫겠다는 것이다.
물김치는 무엇보다 양념 가격이 별로 들지 않는다. 배추, 무 외에 부재료로 양을 조절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국물까지 말끔하게 먹고, 만들기에도 훨씬 간편하다.
간편하기 때문에 미국에서 기숙사 생활을 할 때 물김치를 만들곤 했다. 작은 냉장고 한 대였지만 주말에 H mart(미국의 한인 마트)에서 사 온 무와 쪽파로 투명 과자통에 물김치를 만들었다.
이틀 정도 익혀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간식으로도 먹고 느끼한 음식에 곁들이기도 했다.
여행할 때도 만들 수 있을 정도다. 인도 캘커타를 여행할 때였다. 한 무리의 한국 학생들을 만났다. 방은 완전히 오픈된 도미토리였고 침대 한 칸씩 사용할 수 있었다.
그중 한 학생은 머리맡에 작은 물김치 한 통을 두고 있었다. 그는 김치를 나누어 주었다. 조금 친해져서 어디서 재료를 구하냐고 하니 바로 다음날 시장에 함께 갔다.
무 한개, 쪽파 3~4개, 고추 1개를 샀다. 인도 상인과 좀 흥정이 필요한 소량이었다. 간단히 씻고 자른다. 작은 플라스틱 통 안에 모두 넣는다. 소금을 넣고 뚜껑을 닫은 후 몇차례 흔들어 준다. 여기에 물만 부어준다. 이렇게 만든 물김치를 침대맡 해가 잘 드는 곳에 둔다.
그 학생은 사진을 전공한다고 했는데 이런 멋진 노하우를 알려 주었다. 단순하였지만 내 기억에는 잘 익은 동치미 같은 그런 맛이 났다.
식당에서 일하는 베트남 친구들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자주 해먹곤 한다. 양배추, 미나리 등 야채를 넣고 소금, 설탕, 느억맘(피시소스)로 슴슴하게 간을 맞추고 2~3일 상온에서 익힌다.
올해부터 유독 심해진 기후 변화로 긴 여름과 짧은 가을은 우리의 김장 문화에 많은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고 한다. 일단 배추, 무 등 고랭지 채소의 재배가 여름이 길어지면서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런 기후변화에 김치의 부재료 가격도 크게 올랐다. 이렇게 보면 좀 더 경제성이 있는 김치가 변화된 환경에 살아남지 않을까 싶다.
식당에서 5㎏ 배추김치를 썰다 보면 국물과 속 재료가 꽤 남는다. 그 국물은 배추와 속 재료에서 자연스럽게 나왔지만 아까운 고춧가루와 양념들이 그대로 버려지게 된다.
이렇게 보면 물김치는 기후변화에 최적의 선택인 것 같다. 뜨거워진 날씨에 시원한 국물을 먹을 수 있다. 버려지는 양념이 없고 남은 국물을 이용하기 쉬워 음식물쓰레기도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
간편한 물김치로 올가을은 넘기고 본격적인 김장철이 되면 채솟값이 좀 더 떨어지길 기대해 본다. 맛있는 김치와 따뜻한 국밥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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