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년 타임머신 타고 온 고려 나전칠기…4만5천번 정성에 '감동'
문화재청, 일본에서 환수한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언론 공개
전세계 20건도 남아 있지 않아…"보존상태 매우 탁월, 국보급 유물"
- 김일창 기자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일본인 소장가의 창고에서 100년 이상 보관됐던, 그동안 학계에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고려 나전칠기 하나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문화재청은 6일 오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일본에서 환수한 고려 나전칠기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를 언론에 공개했다.
나전칠기는 자개로 무늬를 장식하고 칠을 한 공예품이다. 목재, 옻칠, 자개, 금속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며, 작게 오려낸 자개를 일일이 붙여 꽃과 잎의 문양을 장식하는 등 고도의 정교함과 복잡한 제작 과정을 거쳐 완성되기 때문에 '공예 기술의 집약체'라고 일컬어진다.
특히 고려의 나전칠기는 청자, 불화와 함께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미술 공예품으로 꼽힌다. 12세기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송나라의 서긍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나전 솜씨가 세밀해 가히 귀하다"(螺鈿之工 細密可貴)라고 기록했으며, '고려사'(高麗史)에도 이미 11세기에 고려 조정이 송(宋), 요(遼) 등 외국에 나전칠기를 선물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가로 33㎝, 세로 18.5㎝, 높이 19.4㎝의이번 나전칠기 상자는 문양과 보존 상태가 고려나전을 대표할 만큼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현존하는 고려 나전칠기가 전 세계 20건에도 못 미치고, 3점을 제외한 나머지가 외국에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이번에 공개된 나전칠기 상자는 국보급 유물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작품은 13세기 것으로 추정된다. 문양을 살펴보면 고려 나전칠기의 대표적인 문양인 국화넝쿨무늬, 모란넝쿨무늬, 연주(連珠) 무늬가 고루 사용됐다. 전체 면에 자개로 약 770개의 국화넝쿨무늬를 장식하고, 뚜껑 윗면(천판) 테두리의 좁은 면에는 약 30개의 모란넝쿨무늬를 배치했다. 외곽에는 약 1670개의 연주무늬가 촘촘히 둘러져 있다. 사용된 자개의 수만 약 4만5000개에 달한다.
C자형 금속선으로 국화꽃무늬를 감싸고 있는 넝쿨줄기를, 두 선을 꼰 금속선으로 외곽 경계선을 표현했다. 국화꽃무늬는 중심원이 약 1.7㎜이며, 꽃잎 하나의 크기는 약 2.5㎜에 불과할 만큼 정교한 기술을 자랑한다.
특히 나전 본래의 무지개 빛깔과 광택이 살아있어 오색의 영롱함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나전과 금속선 등 장식 재료의 보존상태도 현재까지 알려진 고려나전 중에서도 매우 탁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나전칠기 상자는 일본에서조차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다가 지난해 7월 재단의 일본 현지 협력망을 통해 최초로 확인된 후, 문화재청과 재단이 1년여간의 치밀한 조사와 협상 끝에 지난 7월 환수에 성공했다.
이번 환수 과정에서 주목할 부분은 매입 전에 유물을 국내로 들여와 고려 나전칠기의 제작기법, 재료 등을 정확하게 분석해 밝혀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지난 5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X선 촬영 등 과학적 조사를 통하여 정밀 분석을 했으며, 그 결과 목재에 직물을 입히고 칠을 한 목심저피칠기(木心苧被漆器)로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칠기 제작기법이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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