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월대, 4차례 걸쳐 변형…문화재청 "복원 위한 단서 확보"

"일제 전차 선로로 훼손된 어도계단지서 지대석 확인"
동구릉 등에 있던 부재 재사용…10월까지 복원 예정

광화문 월대 유적 전경. (문화재청 제공)

(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조선 고종 연간인 1866년 조성된 광화문 월대(月臺)가 크게 4차례 변화 과정을 거쳐 훼철된 것으로 조사됐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9월부터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진행한 광화문 월대 발굴조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25일 밝혔다.

월대는 궁궐 등 주요 건물 앞에 설치돼 각종 행사가 열렸던 넓은 기단 형식의 대다.

1865년 4월1일부터 1868년 7월4일까지 경복궁 중건 당시 기록을 담은 '경복궁 영건일기'(景福宮 營建日記)와 1890년대 이후 전해지는 사진 자료를 종합하면 광화문 월대는 길게 다듬은 장대석을 이용한 기단석과 계단석, 그리고 난간석을 둘렀다.

월대는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돈화문, 덕수궁 대한문 등에도 설치됐는데 궁궐 정문에 난간석을 두른 경우는 광화문 월대가 유일하다.

1890년대 광화문과 월대 전경. (도서출판 서문당 제공)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광화문 월대의 전체 규모는 길이 48.7m, 너비 29.7m다. 월대 중앙부에는 왕이 다니던 너비 7m의 어도(御道)의 흔적도 볼 수 있다.

문화재청은 월대 서편과 달리 비교적 원형을 유지한 동편을 통해 경복궁 중건 당시 월대의 전체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광화문 월대는 동·서 외곽에 잘 다듬어진 장대석(길이 120~27㎝, 너비 30~50㎝, 두께 20~40㎝)을 이용해 2단의 기단을 쌓고, 그 내부는 서로 다른 성질의 흙을 교차로 쌓아 주변보다 높게 대를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남쪽 계단은 장대석으로 조성했는데 그중 어도와 연결되는 중앙부는 소맷돌(계단 장식·마감용으로 쓰는 부재)로 동·서 계단과 분리했다.

어도계단지의 경우 일제가 만든 전차 선로에 의해 일부 훼손됐으나 소맷돌을 받쳤던 지대석이 확인돼 월대의 원형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문화재청은 기대하고 있다.

광화문 월대 유적 현황. (문화재청 제공)
광화문 월대 남쪽 어도계단지 전경. (문화재청 제공)

또한 광화문 월대는 축조 이후 4단계의 변화를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축조 당시 남쪽에는 경계가 나눠진 3개의 계단이 있었고, 월대의 평면 형태는 '역철자형'이었다.

중앙의 어도계단지가 경사로로 바뀐 2단계를 거쳐 경사로의 범위가 확장되고 계단은 동·서 외곽으로 축소 변형됐다. 이때 일제는 처음으로 외줄 형태의 전차 선로를 설치했다. 그리고 일제가 전차 선로를 복선화하면서 난간석 등이 철거되고 월대는 파괴됐다.

광화문 월대 복원 예시도.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은 훼철된 후 경기 구리 동구릉 등에 이전돼 있던 월대 부재(난간석·하엽석 등)를 재사용하고, 전통재료·기법을 적용해 오는 10월까지 월대를 복원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시와의 업무 협조를 통해 월대 주변부 정비사업(삼군부 및 의정부터 일부)과도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cho8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