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공사 50년, '석굴암 원형' 진실을 논하다

재야 사학자 성낙주 소장, '원형 논쟁' 총정리한 책 출간
"일출 신화·광창설·석조 신전설 등은 신비주의 부산물"
"박정희, 보수공사 지시 사실 아니다" 문교부 문건 제시

(서울=뉴스1) 박태정 기자 = 성낙주 석굴암 미학연구소장. © News1

</figure>국보 24호이자 국내 첫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석굴암이 1964년 복원공사를 마치고 준공된 지 올해로 반세기가 됐다. 다음달 1일이면 정확히 50년이 된다.

하지만 복원공사 후 지속적으로 '원형 논쟁'이 제기되면서 수많은 논란거리를 낳았다. 원형 논쟁 가운데 대표적인 게 일반인들도 학계의 정설처럼 받아들이는 '일출 신화'다.

석굴암이 마주한 동해에서 떠오르는 아침 햇살이 석굴 내로 수렴돼 본존불의 얼굴을 비추게 설계됐다는 주장이다.

이런 이유로 석굴암의 원형은 전각이 없고(개방구조설), 주실 돔 지붕 앞에 원래 햇살을 받아들이는 채광창이 있었다(광창설)는 갖가지 설들이 제기돼 많은 이들에게 지지를 받아 왔다.

하지만 재야사학자인 성낙주 석굴암 미학연구소장은 이 같은 쟁점 하나하나에 매스를 들이대며 "그동안 석굴암이 자리한 토함산의 현실과 건축 원리에 어긋난 견해들이 석굴암의 진면목을 가려왔다"고 지적한다.

석굴암 관련 원형 논쟁을 20년 동안 분석해 총정리한 책 '석굴암, 법정에 서다'(불광출판사)를 통해서다.

성 소장은 2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1970년대 처음 제기된 한 학자의 주장이 어떻게 학계에 빨려들어가듯 인정이 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당시 해방 후 민족의 자신감을 찾기 위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구한말이었던 1909년 훼손된 석굴암 사진으로 시작해 일제 총독부가 석굴암을 전면 해체해 재조립한 1915년 보수 공사를 거쳐 전실을 확장하고 전각을 세운 1964년 복원까지 문헌과 사진자료를 내놓으며 '일출 신화'를 반박했다.

성 소장은 "1년 중 134일 동안 비가 오고 110일 동안 결빙이 생기는 석굴암의 기상 여건을 고려하면 전각이 없이 개방된 구조라는 건 상식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그동안의 논쟁은 대부분 토함산의 현실을 무시한 환상과 신비주의의 부산물로 학술적 요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일축했다.

'일출 신화'는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달콤한 문화식민사관의 하나라는 주장이다.

'일출 신화'에서 파생된 '광창설'과 햇살을 차단하려고 일본 신사의 도리이를 본따 얹었다는 '홍예석 철거론', 석굴암이 석굴사원이 아닌 그리스나 로마의 신전과 비슷한 건축물로 여기는 '석조신전설'도 하나하나 해체해 반박했다.

성 소장은 책에서 법당 밑으로 샘물이 흘러 실내의 결로를 방지했다는 '샘물 위 축조설'에 대해서도 "반과학적인 신비주의적 발상"이라고 꼬집는다.<figure class="image mb-30 m-auto text-center border-radius-10">

1961년 2월 당시 문교부가 작성한 '석굴암 석굴의 현황과 보수대책(안)'. © News1

</figure>이날 성 소장은 1961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착수했다며 정치적 동기를 제기하는 일각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는 증거도 내놓았다.

그는 박 대통령이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기 3개월 전인 1961년 2월 당시 문교부가 작성한 '석굴암 석굴의 현황과 보수대책(안)'을 내보이며 "당시 민주당 정권이 모든 공사와 대책을 세워 놓은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성 소장 역시 1964년 보수공사 당시 석굴암의 안전을 담보할 기술 부재로 일제가 덮어 놓은 시멘트 두겁을 제거하지 못하고 2차 콘크리트 두겁을 덧씌운 만큼 수명이 다하기 전에 원형 복원 연구가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성 소장은 "즉흥적인 가설이 어떻게 학문적 진실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는지 보수공사 후 50년 동안의 모든 논쟁을 담으려고 했다"면서 "이제라도 석굴암 연구가 원형논쟁 늪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제 설정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굴암에 얼마나 가 보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100번 넘게 가보았다면 믿을 것이냐"고 반문하면서 "차로 접근이 어려운 시절 겨울에 걸어서 올라 스님의 허락을 얻고 석굴암에서 잠을 잔 적도 있다"고 소개했다.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성 소장은 현재 서울 온곡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석굴암을 소재로 한 소설을 구상하던 중 기존 학계의 석굴암 인식에 의문을 품고 연구한지 20여년이 됐다.

2009년 석굴암의 근대사 100년을 돌아보는 사진전 '석굴암 백년의 빛'을 열었고 1999년 출간한 '석굴암, 그 이념의 미학'은 우수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성 소장은 "올해가 석굴암 보수공사 50주년이 되는 해인데도 그 흔한 학술대회조차 없다"면서 "한때 '일출 신화'를 정설처럼 얘기하던 학자들이 반론을 인정하지 않는 건 너무 와 버려 퇴로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figure class="image mb-30 m-auto text-center border-radius-10">

'석굴암, 법정에 서다'(불광출판사). © News1

</figure>

pt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