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 권석 PD "소설 왜 쓰냐고? 인생 경험 청년들과 나누고파" [책과 사람]

최근 새 소설 '리무진의 여름' 펴낸 권석 MBC 前 예능본부장 인터뷰

편집자주 ...다채널의 뉴미디어 시대라지만, 책은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존재입니다. 책은 전문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부터 각 분야 유명인사와 스타들 및 이웃들의 흥미로운 경험들을 기반으로 탄생합니다. [책과 사람]을 통해 각양각색의 도서들을 만들어낸 여러 저자 및 관계자를 직접 만나, 책은 물론 그들의 삶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최근 소설 '리무진의 여름'을 펴낸 권석 MBC PD / 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무도')의 아이콘은 김태호 PD지만, '무도'의 아버지가 권석(56) PD라는 사실은 덜 알려졌다. 권 PD의 바통을 이어받은 후배 김 PD는 '무도'를 무럭무럭 키워 MBC 간판 프로그램으로 성장시켰다.

'무한도전' 외에도 '놀러와' '진짜 사나이' 등 인기 예능을 기획한 권석 PD는 예능1국장, 예능본부장, MBC 아메리카 대표 등을 거친 뒤 지금은 평PD로 돌아왔다. 1993년 MBC에 입사해 30여년간 예능 PD 한길만 걸어온 그다.

그런 그가 지난 2022년 새로운 이력을 추가했다. '스피드'로 제2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대상을 거머쥐며 소설가로 데뷔한 것. 이어 지난해 12월, 2년 만에 신작 '리무진의 여름'을 펴냈다. 고교 2학년 '임우진'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새엄마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로드 트립(장거리 자동차 여행) 형식의 성장 소설이다.

잘 나가는 PD가 갑자기 소설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왜 '청소년 소설'인지,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뭘 전하고 싶은지 등을 물었다. 먼저 '무한도전' 얘기부터 꺼냈다.

-'무한도전'을 기획했는데, '무도'는 곧 '김태호'로 여겨진다. 섭섭하진 않나.

▶전혀. 당시 '무한도전'은 '토요일'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의 한 코너였다. 상대 방송사가 워낙 강력해서 애를 먹고 있었다. 내가 다른 프로그램으로 가고 (김)태호가 왔는데 너무 잘해줬다. 격식이나 틀을 깨고 파격적으로 새로운 걸 만들어내더라. 태호 덕분에 '무한도전'이 장수해서 내가 그 덕을 보는 것 같다. ''무도'의 오리지널 크리에이터는 나야'라고 생색도 낼 수 있고(웃음). 고마운 후배다.

-소설 쓰기에 대한 열망은 언제부터 갖기 시작했나.

▶40대 후반이 되면서 방송과는 다른, 새로운 창작에 대한 욕구가 생겼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오롯이 할 수 있는 창구를 찾다가 소설을 쓰게 됐다. 단편부터 습작을 시작했고 장편도 썼다. 매일매일 썼다.

쉰 셋에 소설가로 데뷔한 권석 MBC PD는 "소설 쓰기를 통해 인생을 깊이 파헤쳐 보고 싶다"고 했다. / 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예능 프로그램 연출'과 '소설 쓰기'의 닮은 점

-'스피드'로 넥서스에서 대상을 받았다. '매일'의 힘이 쌓인 덕분일까.

▶'스피드'가 첫 장편인데 운 좋게 잘됐다. 문학적인 실력이 쌓인 것 같진 않다. 사실 '예능 프로그램 연출'과 '소설 쓰기'는 비슷한 구석이 많다. 대중을 상대로 하고, 재미와 의미를 추구하며, 또 자기의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는 점이 그렇다. 나는 조연출 때 고생을 엄청나게 했기 때문에 소설 쓰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웃음)

-업무적으로 단련이 돼 있다고 해도 글쓰기만의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문예창작학과나 국문과를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소설 쓰기에 대한 기본기가 별로 없었다. '(소설을) 이렇게 쓰는 게 맞나?' 싶더라. 신춘문예와 문예지에 작품을 냈지만, 7번을 떨어지니 혼자 '뻘짓'하는 것 같았다. '스피드'가 당선된 덕분에 방향성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예능 PD 경력이 소설 쓸 때 도움이 될까.

▶예능 PD 출신이라 강점과 약점이 있다. 예능 PD는 재미있는 요소를 계속 터뜨려야 하므로, 소설 쓸 때 사건 위주로 서사를 끌고 가는 것은 잘한다. 개인 캐릭터 잡는 것도 잘 해낸다. 반면 문학적인 사유나 철학, 그리고 소위 말하는 핍진성은 좀 약하다.

-'리무진의 여름'과 전작 '스피드' 모두 고교생이 성장하는 이야기다. 성장소설을 쓰는 이유는.

▶'성장'은 내 인생의 키워드다. 계속 성장하고 싶고, 성장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어서 좋다. 나는 초보 작가이기 때문에 부족한 면이 많다. 부족한 게 많다는 건, 성장할 게 많다는 뜻 아닐까.

-무엇이 '성장'이라고 생각하는가.

▶젊은 시절엔 '효율성'이 중요했다. 지름길로 가서 빨리빨리 성취하는 게 성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부터 달라졌다. 소설처럼 쓸데없고, 돈도 안 되고, 효율성 제로인 일이라 해도, 내가 성장하고 싶은 영역이 있더라. 예전이었다면 안 그랬을 텐데, 지금은 이런 '비효율적인' 소설 쓰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좋다.

권석 PD는 소설 쓰기가 '개고생'이자 '비효율의 끝판왕'인 것을 알면서도,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두 시간씩 책상 앞에 앉는다고 했다. 그렇듯 아침에 '글쓰기 숙제'를 마쳐야 출근길 발걸음이 가볍다고 덧붙였다.

권석 MBC PD는 "슬픔을 유쾌하게 풀고, 비극을 희극으로 풀어 내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 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과정은 '꽝'이어도 결과가 좋으면 OK?"

-글쓰기의 기쁨은 뭘까.

▶50대가 되니 인생이 부감 샷(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찍는 촬영기법)으로 보인다. 나이가 드니 인생 후배인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생긴다. 소설을 통해 제가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고 생각했던 바를 젊은이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그게 글쓰기의 기쁨이자 즐거움 아닐까 싶다.

-'리무진의 여름'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과정의 중요성'이다. 우리는 지나치게 '결과'만 따지는 듯싶다. 과정은 엉망이어도 결과만 좋으면 된다고들 생각하는데, 인생 전체를 보면 그렇지 않다. 2025년이 시작됐으니, 365쪽의 책을 적는다고 생각해 보자. 어떤 날 '대박'이 났다고 성공한 인생일까. 또 어느 날 '폭망' 했다고 해서 망가진 인생일까. 인생도 한 권의 책을 쓰는 거라면, 과정이라는 한 장 한 장이 이뤄져 결과를 이루게 된다고 본다.

-차기작은.

▶성인 소설을 써 보려고 한다. 물론 인물들이 성장하는 플롯이다. 방송국 이야기이고, 올여름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금 반 이상 썼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가.

▶레이먼드 카버(1938~1988)라는 미국 소설가가 쓴 작품 중 '어 스몰, 굿 띵(A Small, Good Thing)'이라는 단편이 있다. 김연수 작가가 이 소설을 번역했는데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으로 옮겼더라. 그게 내 소설의 테마인 것 같다. 별것 아니지만 독자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는 소설을 쓰고 싶다.

'리무진의 여름'(앤드(&) 제공)

js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