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출판 해외 진출의 관건…'번역'의 중요성과 역할 확대 [신년특집-출판]

국내 번역가와 원어민 번역가 인재 양성에 중점
번역원, 번역대학원대학교 설립 숙원사업 추진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서점에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코너가 마련돼 있다. 한강은 이날 2024 노벨상 시상식 무대에 올라 노벨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에게 받는다. 2024.12.10/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정수영 김일창 기자 = 한국문학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는 한국문화의 위상이 높아지고 전 세계에서 독자층이 형성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 배후에는 한국의 이야기와 감성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번역의 역할이 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배경에 번역의 공이 컸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번역의 중요성이 재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의 첨병인 전문 번역 인력은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

다행히 '번역'의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각성 속에서 실력 있는 번역가 양성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이에 2025년 더욱 활발해질 한국출판의 해외 진출을 최전선에서 이끌어갈 번역, 그리고 번역가의 중요성과 그 역할 확대를 조망해 본다.

번역의 힘과 중요성

최근 수년간 한국문학의 두드러진 성과는 우수한 번역가들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했다. 이들이야말로 한국의 문학 소프트파워를 더욱 견고하게 해줄 인적자원이다. 한국문학 번역가는 외국어에 능통한 한국인 번역자는 물론 한국어와 토착어 그리고 양국 문화에 능통한 원어민 번역자의 양성도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한강 작가의 국제 무대 진출에도 한국학 전공 영국인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라는 든든한 동반자가 있었다. 그의 영역(英譯)에 힘입어 한강 작가는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2023년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2024년 노벨문학상 등을 받을 수 있었다.

스미스는 '채식주의자' 번역 후기에서 한강 작가의 작품 메시지 전달을 위해 작가와의 공감대 및 독자들과의 소통을 위한 끊임없는 고민 속에서 번역 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한강 작가도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 소감으로 스미스에 대해 "마음이 통한다고 느꼈고, 신뢰를 갖게 됐다"라고 말했다.

번역가는 종합 예술인에 가깝다. 단지 언어를 변환하는 것만이 아니라 창작자, 편집자, 조정자의 역할도 겸비해야 한다. 스미스는 번역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며 "문화적 특수성을 문맥화하는 동시에 작품이 읽히고 수용되는 방법에 있어 과도한 방향 지시를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설가 한강(우측)과 '채식주의자'(영문명 The Vegetarian)를 번역한 영국인 데보라 스미스. ⓒ AFP=뉴스1 ⓒ News1 최종일 기자

한국문학번역원의 적극적인 활동

한국문학번역원(번역원)은 1996년 문화관광체육부(문체부) 산하로 설립된 이후 한국문학을 글로벌 무대에 올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도 그 성과 중 하나다. 번역원은 총 9억 2000만 원을 투입해 한강 작가의 작품 총 76종을 28개 언어로 번역·출판하고, 작가 교류 프로그램 등에 파견하는 데 사용했다.

번역원에 따르면, 2001년부터 현재까지 44개 언어권에 총 2171건의 번역·출간을 지원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지원된 작품들은 국제 문학상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대표적인 작품은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 3년 연속 최종 후보로 오른 정보라의 저주토끼(2023)와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2024)다. 이는 한국 문학의 글로벌 인지도와 수요 증가를 견인하며, 해외 출간이 더욱 활발해지는 선순환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출간 종수가 가장 많은 영미권(미국, 영국)과 일본어권, 프랑스어권에서 특히 두드러진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은 일본에서 출간된 이래 20만 부 이상 판매되며, 젊은 여성 독자들의 큰 공감을 얻었다. 2023년에는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상을 수상했다. 이어 에밀기메 아시아문학상까지 수상했다. 2024년에는 김혜순 시인의 '날개 환상통'이 한국 최초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번역원은 한국문학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더욱 커짐에 따라 앞으로도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더 많은 언어로 번역하고, 전 세계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번역 인력 양성에 힘쓰고 각종 활동도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문체부 역시 그간 번역원의 활동과 성과를 확인하고, 한국문학을 전 세계에 더욱 널리 알리기 위한 지원을 이어나간다는 방침이다.

전수용 한국문학번역원장이 11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전 원장은 이 자리에서 "한국문학의 해외담론 형성 촉진, 기획 출간 확대, 한국문학번역대학원 설립 등을 통해 한강 노벨상 수상으로 세계인들의 주목을 끌고 있는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으로서 새로운 축을 세우는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2024.11.11/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번역대학원대학교 설립 추진

2024년 11월 취임한 전수용(70) 번역원장은 번역원이 한국 작가들을 세계적인 무대에 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문학 번역대학원대학교 설립을 번역원의 숙원사업이라고 밝혔다.

전 원장은 번역원 역할이 단순히 작품을 번역하고 출판하는 것을 넘어 한국문학의 깊이와 매력을 국제적으로 알릴 수 있는 교두보가 되겠다는 포부를 나타냈다. 이를 위한 실행 계획으로 △한국문학 해외 담론 형성 △글로벌 문학 네트워크 강화 △한국문학 번역대학원대학교 설립을 이뤄 나가겠다고 말한 것이다.

사실 번역원은 2008년부터 번역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번역 출간된 작품 중 6건이 번역아카데미 출신이다. 번역아카데미 출신 번역가들은 한국문학의 감성과 깊이를 전하며, 한국문학의 글로벌 성공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식 학위가 수여되지 않아 국내외의 우수한 인재를 확보한 데는 설득력이 약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정식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고도화시킨 모델인 번역대학원대학교다. 현재 번역대학원대학교 설립은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김윤덕 국회의원에 의해 발의돼 있다.

전수용 번역원장은 "한국문학의 국제상 수상은 일차적으로 작가의 우수한 역량도 있지만, 그다음으로 양질의 번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번역대학원대학교 설립을 통해 더 많은 전문 번역 인력이 양성되고, 더 많은 우수한 번역 인재들이 국제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