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마지막 말 "희망 있을 거라고 희망하는 것도 '희망'일 수" [일문일답]
[노벨상 현장] 스웨덴 한림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 자격으로 기자간담회
비상계엄, '채식주의자' 유해도서 선정, 문학의 역할 등 다양한 질문에 답
- 김일창 기자
(스톡홀름=뉴스1) 김일창 기자 = 한국 최초, 아시아 여성 작가 중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54)는 6일 "바라건대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방식으로 통제하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한 작가는 이날 오후 1시(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스웨덴 한림원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수상자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했다.
다음은 한 작가와 기자들의 일문일답.
-이번주 전세계의 이목이 한국에 집중됐다. 이번주가 어땠는지 궁금하다.
▶먼저 환영해 줘서 감사하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스톡홀름에 오게 되어서 너무 반갑고 기쁘다. 지난 며칠 동안 아마 많은 한국분들이 그랬을 텐데 충격도 많이 받았고, 아직도 많은 상황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어서 계속 뉴스를 보면서 지내고 있다.
-한국에서는 계엄, 세계 곳곳에선 전쟁 등 아주 복잡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사태에 관한 생각이 궁금하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문학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먼저 아까 제가 짧게 말씀드렸는데, 제 생각을 잠깐 정리한 다음에 질문 답하겠다. 그날 밤에 모두 그러셨을 것처럼 저도 충격을 받았다.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해서 79년 말부터 진행됐던 계엄 상황에 관해서 공부했었는데, 2024년에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2024년 겨울의 이 상황이 (과거와) 다른 점은 모든 상황이 생중계되어서 모든 사람이 지켜볼 수 있었단 점이라고 생각한다. 저도 그 모습들을 지켜봤는데 맨몸으로 장갑차 앞에서 (장갑차를) 멈추려고 애쓰시던 분도 보았고, 맨손으로 무장한 군인들을 껴안으면서 제지하는 모습도 보았고, 총을 들고 다가오는 군인들 앞에서 버텨보려고 애써보려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았다. 마지막에 군인들 물러갈 때는 잘 가라고 마치 아들들한테 하듯이 그렇게 소리치는 모습도 보았다. 그분들의 진심과 용기가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젊은 경찰분들, 젊은 군인분들의 태도도 인상 깊었다. 아마 많은 분이 느끼셨을 거 같은데, 그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판단하려고 하고, 내적 충돌을 느끼면서 최대한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 받았다. 그런 명령을 내린 사람 입장에서는 소극적인 것이었겠지만, 보편적 관점에서는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통을 느끼면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던 적극적인 행위였다고 생각이 된다. 바라건대,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言路)를 막는 그런 방식으로 통제를 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리고 문학의 역할에 대해서 물어봤는데, 문학이란 것은 끊임없이 타인의 내면으로 들어가고, 또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깊게 파고들어 가는 행위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런 행위들을 반복하면서 어떤 내적인 힘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어떤 갑작스러운 상황이 왔을 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최선을 다해서, 결정을 하기 위해서 애쓸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문학은 언제나 우리에게 여분의 것이 아니고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엔 한국 정부가 만든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있었고, 이번에는 계엄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이 발생했다. 이런 가운데 작가들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걱정이 크다.
▶아직 정확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제가 잘 몰라서 앞으로 상황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한가지 언어의 특성 자체가 뭔가 강압적으로 그걸 눌러서 막으려고 한다고 해서 그게 잘되지 않는 그런 속성이 언어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다 해도 계속해서 말해지는 어떤 진실이 있을 것이고, 그런 언어의 힘이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채식주의자'가 유해 도서로 낙인찍히고, 부모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먼저 '채식주의자'는 2019년에 스페인에서 고등학생들이 주는 상을 받은 적 있다. 고등학교 문학 교사 선생님들이 추천 도서 목록을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읽히고 학생들이 오랜 시간 토론해서 이 소설이 선정됐다. 그때 스페인어로 '채식주의자'를 번역하신 윤선미 선생님과 함께 산티아고 가서 학생들이 토론하고, 시상식을 하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과정에 참여했다. 굉장히 학생들이 깊게 생각하고 소설을 분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더라. 굉장히 감명 깊었다. 그때 저도 한국의 중고등학생들을 생각해 봤는데, 문화 차이도 있고 중고생들이 한국에서 그렇게 하기는 어렵겠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사실은 오랜 시간 동안 한국에서 낭독회 할 때 가끔 고등학생들이 '채식주의자'를 가져와서 사인해달라고 할 때가 있다. 이건 나중에 읽고 "'소년이 온다'를 읽어" 이렇게 했다. 그건 이제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고요. '채식주의자'가 지금 받는 어떤 오해들에 대해서 지루하시겠지만 잠깐 해명하고 싶은데 허락해 주신다면, '채식주의자'는 질문으로 가득한 소설이에요. 제목부터가 '채식주의자'인데 굉장히 아이러니한 제목이다. 주인공을 지칭하는데, 주인공은 단 한 번도 자신을 채식주의자로 명명한 적 없다. 제목부터 아이러니가 들어가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는데 주인공이 말하는 부분은 없다. 앞에 약간 악몽의 독백 정도가 나오고, 나머지는 철저히 이 인물이 대상화돼 그려진다. 오해받고, 혐오 받고, 욕망 되고, 동정받고 그런다. 완벽한 객체로서 다뤄지는. 이 구조 자체가 책의 주제를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소설 속에는 신뢰할 수 없는 화자란 문학적 장치가 있는데, 첫 번째 장의 화자가 가장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이고요, 두 번째는 역시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이고, 마지막 화자도 계속해서 주인공 영혜에게 대한 진실을 파악하는 데 실패하기에 모두가 신뢰할 수 없는 걸 보여준다. 그렇게 신뢰할 수 없는 화자가 이야기를 할 때 계속해서 문장마다 아이러니가 발생하기에 그런거 생각하면서 읽으시면 더 흥미롭게 읽으시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를 굉장히 고통스럽게 공감하면서 읽어주는 분들도 많지만 오해도 많이 받는데 그게 이젠 이 책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긴 하지만 이 소설에다 유해도서라는 낙인을 찍고, 도서관에서 폐기를 하는 건 책을 쓴 사람으로서는 가슴 아픈 일이었던 건 사실이다. 지난 몇 년간 한국의 도서관에서 몇천권이 폐기되고 열람이 제한됐다. 저는 도서관 사서 선생님들의 권한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분들이 많이 고민하고 책들을 골라서 비치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자꾸 이런 상황 생기면 아마 검열하시게 될 거 같아서 그런 부분이 우려되는 게 있다. 책이란 건 중요한 존재이고, 책들을 읽으면서 공존하는 법, 타인을 이해하는 법,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그러면서 성숙한 태도도 갖게 되고 열려있는 공동체가 된달까 그런 거 같은데, 그런 인문학적인 토양의 기초가 되는 곳이 도서관인데 사서 선생님들의 권한을 잘 지키는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가야 한다는 바람이 있다.
-세계의 독자들이 '채식주의자'를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하는지 궁금하다.
▶먼저 이 상은 하나의 작품에 주는 상이 아니라 한 작가가 쓴 전체 작품들에 주는 상이라는 말을 먼저 드리고 싶다. 이 소설은 여러 레이어를 갖고 있어서, 어떤 것이라고 집어서 말하는 것도 이 소설에 적합한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단은 폭력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인간이 이 세계에서 완벽하게 폭력을 거부하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이런 질문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정말로 완벽하게 폭력을 거부한다고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를 둘러싼 세계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더듬어 가고 있다. 그리고 뭐가 정상이고 무엇이 광기인가 하는 문제도 있는데, 아마도 그 신뢰할 수 없는 화자들 입장을 따라서 소설 읽어가는 사람들이 '정말 이상한 여자야, 정말 이상한 인물이야, 왜 이렇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근데 책장 덮고 나면 '누가 더 이상하지? 음…이 여자를 둘러싼 세계가 더 이상한 거 아닌가, 그냥 고기를 안 먹겠다고 한 건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의문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 소설서 중요한 장르는 가족들이 영혜에게 억지로 고기를 먹이는 장면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세 파트에 모두 반복해서 썼다. 정말 이상한 장면이잖아요.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광기인지 질문도 하고 싶었고, 어떻게 보면 영혜의 우주 속에서 영혜는 어쩌면 제정신, 아주 제정신인 존재일 수도 있는 거죠. 그리고 이 인물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서 인류의 일원이 더 이상 되지 않기 위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앞으로 전진한다.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어쩌면 이 세상의 폭력이 더 이상할 수 있단 거다. 그런 질문을 던지는 거다. 답을 얘기하는 게 아니고. 너무 길었나요. 그리고 또 여러 레이어가 있는데,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도 있고, 무엇인가를 거부하는 것에 대한 질문도 있고, 우리의 신체가 우리의 최후의 피신처일 수도 있는가 하는 질문도 있고, 그리고 소리 없이 비명 지르는 두 여성, 두 자매가 사실상 이 소설의 주인공인데 그 여성의 목소리, 비명일 수도 있고, 굉장히 여러 레이어가 있다. 그래서 한 마디로 이 소설을 정의하기는 어렵고 수많은 질문으로 가득 찬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에게 노벨문학상이 갖는 의미는.
▶이 상은 문학에 주는 거지 않나. 그래서 처음에는 저에게 쏟아지는 개인적 관심이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한 달 넘게 생각해 보니까 이 상은 문학에 주는 것이고, 문학에 주는 상을 이번에 받았구나, 생각했다. 그러니까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저는 다시 쓸 준비가 됐다. 노벨 주간에 해야 할 일이 많다. 오늘이 가장 어려웠다. 지난번에 스톡홀름을 방문했을 때는 많을 곳을 둘러볼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이곳을 즐기고 싶다.
-오늘 노벨뮤지엄에 메시지 남겼다. 차를 마시는 것, 걷기 등 이런 루틴이 당신을 여기까지 이끌었다고 생각하나.
▶제가 찻잔을 이 박물관에 기증한 이유는 그게 저에게 굉장히 친밀한 사물이어서 그랬다. 너무 거창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저의 루틴을 그냥 보여주는 저에게 아주 소중한 것을 기증하는 게 좋겠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런 게 좋았어요. 단순하고, 그런 것이 그냥 조용하게 한마디 건넨 느낌이 좋아서 그렇게 한 거였다. 이게 아주 조그만 찻잔이어서 제가 그때는 카페인을 많이 마셨는데 요새는 카페인을 끊었는데, 하루에 몇 번씩 책상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마다 딱 그 잔만큼만 홍차를 마셨다. 그래서 그 찻잔이 뭔가 저를 책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주문 같은 거여서 저의 글쓰기의 아주 친밀한 부분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기증한 것이다.
제가 올해가 지금 제가 작가 활동한 게 꼭 31년 되는 겨울이다. 사실 메모에 쓴 것처럼 항상 그런 루틴 지키고 살았다고 하면 아주 큰 거짓말이고 대부분은 방황하고, 무슨 소설 쓰지 고민하고, 소설이 잘 안 써져서 덮어놓고, 그냥 걷고 하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그 찻잔을 사용할 때는 그땐 열심히 했다. 그래서 가장 열심히 했던 때에 저의 사물을 기증했던 것이다.
-고향이 작품과 삶에 어떤 영향을 줬는가.
▶저는 1970년 11월에 광주에서 태어났고, 1980년 1월에 서울로 올라왔으니 9년 2개월 정도를 광주에서 살았다. 나머지 40여 년은 서울에서 지냈다. 저는 광주 사람이기도 하고 서울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국 사람이기도 하고 세계 시민이기도 하다. 저를 딱 어떤 존재로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건 어려운데, 그렇지만 고향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장흥은 제가 살았던 적은 없다. 부모님의 고향이다. 광주는 '소년이 온다'를 썼기에 제게 중요한 장소이자 이름이다. '소년이 온다'를 쓰는 과정이 저를 많이 변화시켰고, 저의 굉장히 중요한 책이기에 광주가 제게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 제2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기 위해서는 문학계에서 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글쎄. 글을 쓴다는 것은 개인적인 거라서 뭔가 지금 얘기하는 건 사회에서 어떻게 해야하나란 질문 같은데, 문학은 굉장히 개인적인 거라서 사회에서 이렇게 한다는 게 말하기 어려운 게 있다. 그렇긴 한데 문학을 잘 교육하면 참 좋겠단 생각을 한다. 어릴 때부터 1년에 최소 문학작품을 학교에서 3~4권 읽고 토론하고 다각도로 이야기 나누고 문학 작품을 읽는 근육 같은 것을 기를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 문학에 흥미를 느낄 수 있게 예를 들어서 장르별로 읽는 독법이 다르지 않나, 소설 읽는 법, 에세이 읽는 법, 희곡 읽는 법, 시를 읽는 법이 다르다. 그런 다른 방법들을 음미하면서 그렇게 읽으면서 다른 사람 내면으로 들어가 보고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보고 하는 경험을 반복하는, 특히 입시 때문에 멈추지 않고, 계속 중고등학교를 통과해서 그런 교육을 한다면 훨씬 더 책을 읽는 독법도 풍요로워지고 좋을 거 같다. 사실은 모든 독자가 작가인 것은 아니지만, 많이들 하는 말이지 않나, 모든 작가는 독자라고, 열렬한 독자라고. 일단은 좋은 독자들이 깊게 읽고 흥미롭게 읽고, 읽는 것을 재미있어하는 독자들이 많이 나오는 게 가장 좋을 거 같다고 생각한다.
-수상한 직후에 전쟁 등 상황을 언급하면서 별다른 축하받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아서, 제가 축하하고 싶지 않다고 한게 아니고 축하를 했다. 그런데 좀 조용히 한 거다. 왜냐면 저희 가족들이 크게 잔치를 하겠다고 해서 그러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게 와전이 돼서 축하 자체를 안 하고 싶다고 나와 당황했다. 요즘 이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게 많은 질문을 하게 되는 시기라고 생각된다. 때로는 희망이 있나?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요즘은 얼마 전부터, 몇 달 전부터 아니면 그 전부터일지도 모르겠는데, 희망이 있을 거라고 희망하는 것도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나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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