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김영찬 시집 '오늘밤은 리스본' 출간

(서울=뉴스1) 김형택 기자 = 김영찬 시인의 시집 '오늘밤은 리스본'이 출간됐다.

시집 '오늘밤은 리스본'은 김영찬 시인의 문학적 혈통증명서다. 이 책에는 현기증이 날 만큼 많은 시인, 소설가, 예술가, 철학자의 이름이 등장한다. 폴 베를렌, 아르튀르 랭보, 니체, 자크 프레베르, 테라야마 슈우시, 베토벤, 짐 자무시, 월레스 스티븐슨,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파울 첼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보르헤스, 레이먼드 크노….

이들은 시인 랭보가 ‘나쁜 혈통’이라고 말한 태생적 혈통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선택된 예술적 혈통, 즉 시인의 선조(先祖)들이다. 김영찬은 이들 예술적 조상의 이름과 그들의 언표를 다양한 형태로 전유하여 궁극적으로 텍스트에서 주체나 중심의 흔적을 지우는 방식의 시 쓰기를 수행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막심 로베르(Maxime Rovere)는 스피노자에 관한 자신의 저작에 ‘스피노자와 그의 친구들’이라는 흥미로운 제목을 붙였다. 한 철학자의 삶과 철학을 조망한 책 제목에 ‘친구들’이 등장한다는 것은 스피노자의 사상이 한 개인의 산물이 아니라 다양한 관계의 결과물이라는 의미다.

김영찬의 이 시집도 마찬가지다. 이 책의 곳곳에 등장하는 수많은 예술가와 사상가는 시인의 시 쓰기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존재들이며, 이런 점에서 시인의 친구들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요컨대 김영찬의 시는 주체/중심 없는 상태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뒤엉킨 상태에서 발화된 기표들의 직조물, 즉 퀼트(quilt) 내지 헤테로토피아적(Heterotopia)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셸 푸코의 말처럼 헤테로토피아가 다른 모든 공간에 대한 이의제기라면 김영찬의 시집은 다른 모든 시(詩)에 대한 이의제기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는 주체나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시시각각 분열하는 언술이, 그 결과에 따라 파편처럼 흩뿌려져 있는 언표가 있을 따름이다.

김영찬 시인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한 후 문학과 무역 분야에서 활동해 온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그의 시 세계는 보헤미안 정신과 자유로운 언어 실험으로 특징지어지며,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 라틴어 등 다양한 언어를 활용한다. 이러한 다국어적 접근은 시에 독특한 개성과 아나키즘적 사고를 불어넣었다. 그는 중년 이후인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했으며, 대표적인 시집으로는 '불멸을 힐끗 쳐다보다'와 '투투섬에 안 간 이유' 등이 있다.

김영찬 지음/ 황금알 펴냄/ 160쪽/ 1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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