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무언'으로 메시지를 쏘다…"이토록 강렬한 침묵이라니"

[김성신 출판평론가 특별기고]
"노벨상, 한강 작품으로 한국문학과 한국인 정신 살펴보라 촉구"

한강 ⓒ AFP=뉴스1 ⓒ News1 정윤경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신 출판평론가 = 뛰어난 전기 작가이자 소설가였던 슈테판 츠바이크는 '모든 운동은 책에 기초한다'에서 지상의 모든 운동은 인간 정신의 두 가지 발명에 기초한다고 지적했다. 축을 진동하며 공간을 구르는 '바퀴'가 그 하나이며, 다른 하나는 지상의 개별 영혼들의 경험과 체험의 비극적 유한함을 극복하는 '문자'의 발명이다. 바퀴가 기술의 역사를 함의한다면, 글로 짜인 책은 츠바이크의 말을 빌리면 "누구도 자신의 시야에 갇히지 않고 현재와 과거의 모든 사건, 전 인류의 사상과 감정에 모두 관여"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출판평론가인 나에게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책의 존재 가치와 이야기의 힘이 무엇인지를 단박에 일깨우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전쟁과 가난, 혐오와 고통, 학살과 절망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면서도 우리는 지독하고도 절실하게 이 비극을 체감하고 있는가? 고통과 절망으로 살이 부서지는 아픔을 제대로 타전하는 이는 어디에 있는가?

한강 작가의 목소리는 파편화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망각하지 말아야 할 진실을 추적하고 폭로한다. 그것은 4·3과 오월 광주의 역사적 트라우마, 가부장 사회의 폭력과 희생, 공포와 죽음의 늪 앞에서 망각만을 강요당했던 우리의 초상이다.

한강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 결정한 스웨덴 한림원은 "역사적 상처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그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것은 증오와 폭력의 역사를 반성하고 여전히 잔혹한 죽음이 현재진행형인 고통받은 자들을 위한 위로와 애도를 작가 한강이 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노벨문학상은 그 자체가 메시지다. 문학을 통해 전 인류를 대상으로 '영감'을 전하고 '각성'을 일깨운다. 이는 여전히 글이 '현재와 과거의 모든 사건, 전 인류의 사상과 감정에 관여하고 비극적 유한함을 극복하는, 좁지만 명징한 길이 될 수 있음을 알려 준다. 이는 디지털 기계에 포박된 우리가 한치 밖의 시야도 보기를 망설이고 나서기를 거부하는 두려움에 갇힌 자들임을 놀랍도록 마주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 느껴야 할 것은 나와 이웃이 처한 인류의 고통을 직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시 생각해 보자. 한강의 작품 대부분은 역사에서 일어났던 폭력과 상처를 다룬다. 이 때문에 그의 작품들을 접한 사람은 대부분 암울하고 아득한 심연으로 빠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한강 작가의 거의 전 작품을 관통하는 일관된 메시지는 결국 '밝음'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 방법을 찾기 위해 우리 내면에 있는 '인간 본성'에 물음을 던지자는 것이다. 이것이 2023년 제주 4·3사건을 다룬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의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받은 직후 한강이 직접 밝힌 속내다.

한강이 '밝음'을 찾는 방법으로 '청산'이 아닌 '회복'을 제시한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껄끄러운 과거를 묻어두고 잊자는 식의 '청산'이 아니라, '폭력'과 '상처'를 왜곡되지 않은 날것으로 마주하고 어머니의 마음으로 보듬고, 사랑하고, 용서함으로써 진정한 '치유'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강이란 작가가 자신의 모든 작품을 통해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메시지의 요체다. 그래서 한강은 가부장을, 5·18을, 4·3을, 우리의 아픈 기억을 헤집고 들추는 것이다.

한강 작가는 기자회견 요청에 응하지 않고 서면을 통해 짧은 감사만 전했다. 그 이유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하지만 앞서 아버지의 전언을 통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 등) 전쟁에서 날마다 사람들이 죽는데 무슨 잔치에 기자회견이냐"고 한 점과 "비극 즐기지 말고 더 냉철해지라는 상이다"라고 한 말에서 그가 말하려는 메시지는 충분히 다 읽혔다. "요란한 자축보다는 현재 지구촌 어디에선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아픔에 대한 공감을 세상에 환기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토록 강렬한 침묵이 있을까? 한강이야말로 이 같은 '무언의 강력한 영감과 각성'을 세상에 전할 수 있는 작가이고, 노벨문학상도 이 점을 간파했다고 본다.

한국의 현대사는 폭력과 야만과의 투쟁사였다. 식민지 시대, 내전의 시대, 독재 시대를 거쳤고, 여전히 같은 민족끼리 극한으로 대치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지난한 투쟁에서 끝내 정신적으로 파산하지 않았기에 오늘날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경제적·문화적 번영을 일궈내고 있다. 과거에서 비롯된 증오를 극복하지 못하고 공멸로 치닫고 있는 오늘날의 인류에게 이번 노벨문학상은 한강의 작품을 통해 한국의 문학, 한국인의 정신을 한번 들여다보라고 전 세계에 촉구한 것으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한강 소설의 문장이 가리키는 고통의 심연, 그 심연을 건너는 지극한 사랑의 언어에 우리가 오래도록 머물러야 할 이유이다.

김성신 출판평론가(본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