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韓 넘어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 쾌거…한목소리 축하(종합)
"역사적 트라우마 맞서고 인간 삶 연약함 폭로, 강렬한 시적 산문"
'인간 존엄' 고뇌 한강 "놀랍고 영광스럽다" 소감…문학계 '들썩'
- 김정한 기자, 정수영 기자, 김일창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정수영 김일창 기자 = 대한민국 소설가 한강(54)이 202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책 속에 묻혀 살던 소녀는 끊임없이 '인간'에 관해 고뇌했고 이를 글로 풀어낸 끝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이자 아시아 여성 작가 중 최초로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이 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시간) 한강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하며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한강은 수상자 발표 후 노벨위원회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매우 놀랍고 영광스럽다"며 "(여러 작가의) 모든 노력과 힘이 나에게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
말름 노벨문학상 위원회 사무국장은 수상자 발표 기자회견에서 "한강과 전화로 통화했는데,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고 막 아들과 저녁 식사를 마친 것 같았다"며 "그는 정말로 이 상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우리는 오는 12월 시상식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논의했다"고 전했다.
한강은 1970년 11월 27일 광주 북구에서 아버지 한승원 씨와 어머니 임강오 씨 사이에서 2남 1녀의 장녀로 태어났다.
어머니 임 씨는 장티푸스에 걸려 약을 먹은 뒤 임신 사실을 알게 돼 고민 끝에 한강을 낳았다. 그래서 한강은 자라는 동안 종종 어른들로부터 "하마터면 못 태어날 뻔했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 한 씨는 1966년 단편소설 '목선'으로 등단한 소설가로 '김동리문학상'과 '이상문학상', '순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한강 역시 이상문학상을 수상해 부녀가 나란히 '이상문학상'을 받은 기록을 갖고 있다.
한강의 오빠인 규호 씨도 신춘문예 등단 작가이며, 동생인 강인 씨는 만화작가로 활동하는 등 집안이 문학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한강은 출판사 '샘터'에서 일하며 1993년 11월 계간지 '문학과 사회'에서 시 '서울의 겨울' 외 네 편을 발표하고, 이듬해 11월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며 작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출간했을 때 치밀하고 빈틈없는 세부, 긴밀한 서사구성, 풍부한 상징 등 대작가의 탄생을 예감케 한다는 찬사를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이 있다. '채식주의자'는 2016년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상, '소년이 온다'는 2017년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말라파르테 문학상', '작별하지 않는다'는 2023년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받았다.
이밖에 장편소설로 △흰 △희랍어 시간 △바람이 분다, 가라 △그대의 차가운 손 △검은 사슴 등이 있고, 단편 소설집으로 △노랑무늬영원 △내 여자의 열매 △여수의 사랑, 시집으로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냈다.
한강은 2014년 한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늘 인간이 궁금했다"며 "그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사람들을 학살하기도, 또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아이를 목숨을 걸고 구하는 사람도 '인간'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간에 대한 질문,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방법으로써 계속 글쓰기를 붙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첫 작품부터 비애의 분위기를 짙게 풍겼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결손 가정이나 비참한 죽음을 과거사로 안고 있고, 발작이나 허무한 복수의 장면을 연출하면서 정처 없이 떠도는 인생들이다.
주인공이 자멸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 어둡고 우울하다는 평가가 많다. 한강 역시 이를 인정한다. 그는 "인간을 껴안고 싶고, 그렇지만 그게 잘 안 되고, 그렇지만 더 나아가고 싶고"라고 말했다.
한강은 작품 '희랍어 시간'에서 인간을 껴안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그 배경에 1980년 광주가 있었단 걸 깨달았다. 그 깨달음의 결과가 바로 작품 '소년이 온다'이다.
'햇빛'과 '눈'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의 작품이 결코 어둡지 않다는 '희망' 또는 '존엄'과도 같다. 한강은 "인간의 참혹과 동시에 인간의 존엄을 들여다봤다"며 "인간의 존엄을 고민한다는 게 인간을 껴안고자 하는 사랑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노벨 문학상은 1901년 제정 이래 백인의 독무대였다. 한강 작가 수상 전까지 유색인종이 수상한 경우는 모두 7번뿐이다.
한강의 연세대 국문과 1년 선배인 김별아 작가는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한 작가 개인의 역량이며, 동시에 그동안 많은 문학가를 통해 한국 문학이 해외 문학계에 꾸준하게 소개된 결과"라며 "그동안 한국 작가의 수상이 없어 아쉬웠는데 이런 아쉬움이 일거에 해소돼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김성신 출판평론가는 "한국의 문학계나 지성계는 물론이고 일반적인 독자까지 한국 문학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관해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고 말했다.
홍순철 문화평론가는 "틀림없이 국내에서 한강 작가 열풍이 불 것"이라며 "해외에서도 '채식주의자'를 비롯해 여러 작품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주목을 받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동석 출판평론가는 "(이번 수상으로) 우리 작가들이 세계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확장될 것"이라며 "케이(K) 드라마나 K-팝뿐만 아니라 진짜 '문화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 K-문학이 세계인들에게 더 널리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방탄소년단(BTS)의 멤버들은 축하 인사를 전했다. 뷔는 인스타그램에 한강의 노벨문학상 기사를 올리면서 "작가님! 소년이 온다 군대에서 읽었습니다, 흑 축하드립니다"라고 적었다.
RM도 같은 내용의 기사를 전하면서 눈물과 하트 이모티콘을 통해 감격한 반응을 전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라오스를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소식을 듣고 페이스북에 "작가님께서는 우리 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위대한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켰다"며 "한국 문학의 가치를 높이신 작가님께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고 축하했다.
국민의힘은 "한강 작가의 수상은 한국 문학의 큰 도약이자 우리 국민에게 자긍심을 안겨준 쾌거"라고, 더불어민주당은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면서도 그 상처를 정면으로 대면해 온 한 작가의 문학이 세계에 우뚝 솟은 모습은 국민의 자긍심이 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들은 국정감사 도중 수상 수식이 전해지자 손뼉을 치며 축하했다.
전세계 주요 언론들은 한강의 수상 소식을 긴급 타전했다.
AFP통신은 "작가 한강은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 사이의 조화 그리고 역사적 사건을 특징으로 하는 작품으로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가디언은 "한강의 소설과 에세이, 단편 소설집은 가부장제, 폭력, 슬픔, 인간성이라는 주제를 다양하게 탐구해 왔다"고 평가했다.
일본 NHK는 와세다대 문학부의 도고 고지 교수 발언을 인용해 "'채식주의자'로 영국에서 권위 있는 문학상인 부커 국제상을 받아,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한국 작가로서도, 아시아 여성 작가로서도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 획기적"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한강의 수상 소식을 전하며 "한국인의 문학상 처음이며, 아시아 여성으로도 처음"이라고 전했다.
ickim@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