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지는 삶에 대한 연민과 뭉근한 슬픔"

[신간] '상사화 지기 전에'

'상사화 지기 전에'(북인 제공)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이건행 시인의 시집 '상사화 지기 전에'에 실린 시들은 저마다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읽으면 금세 어떤 사건이 머리에 그려진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쉽게 읽힌다.

사건은 이야기로 흐르면서 어느 순간 시로 툭 떨어지는데 은유나 상징, 이미지 등 시적 장치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압축하기보다 그 한 단면을 도려내 새롭게 펼쳐 보인다.영화의 극적인 한 장면이 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인의 시는 쉬운 데다 기존 운문시들과 달라서 얼마든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정한용 시인에 따르면, 이 시인은 사건의 연속인 우리의 일상에 두레박을 깊이 내려 시를 길어 올린다. 단면의 서사는 이 시인의 주된 시적 장치인 셈이다.

실제로 시집에 실린 '사랑의 무게'를 읽으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시인은 대학생 시절 시국 사건에 연루되어 쫓기면서 첫사랑의 얼굴을 멀리에서라도 보기 위해 충남 공주로 향한다. 하지만 공주사대 정문 한쪽에서 첫사랑을 보지 못하고 시내 여인숙으로 간 시인은 밤새 강소주를 들이키며 그녀의 안전을 위해 다시는 찾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 시집의 시는 크게 세 부류다. 하나는 시인이 지난날 겪었던 사건이나 인물을 회고하는 작품이고, 두 번째는 생활 주변에서 만나는 사물과 풍경을 서정화시키는 작품이며, 마지막으로는 현실의 모순과 질곡을 진술하는 작품이다. 그 내면을 관통해 흐르는 주제는 '삶에 대한 연민과 뭉근한 슬픔’으로 수렴된다.

◇상사화 지기 전에/ 이건행 글/ 북인/ 1만 1000원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