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작가 이상 '유고 원본' 공개…'공포의 기록' 등 습작 23편
평론가 조연현 유족, 국립한국문학관에 기증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국립한국문학관은 요절한 천재 시인 이상(1910-1937)의 유고(遺稿) 노트 원본을 공개했다. 1981년 작고한 문학평론가 조연현의 유족이 기증한 것이다. 70여 쪽 분량의 일본어로 쓴 노트로 '공포의 기록', '1931년' 등 총 23편의 습작이 담겨 있다.
조연현은 1960년, 당시 학생이던 이연복으로부터 '이상 유고' 노트 뭉치를 전달받아 그 존재를 알린 바 있다. '현대문학'(1960년, 1966년), '문학사상'(1976년, 1986년)에 김수영, 김윤성, 유정의 번역으로 발표됐다.
그러나 번역본으로만 발표되었을 뿐 일본어 원문이 공개되지 않았고, 원본도 실물로 공개된 바 없다. 번역이 개입하기 이전의 원 창작 형태를 알고자 하는 연구자들이 애타게 찾고 있던 자료였다. 조연현 사후 종적이 묘연하다가 이번에 그 실물이 공개된 것이다.
국립한국문학관은 "'문예지 '현대문학'을 창간하고 작고할 때까지 주간을 맡았던 조연현 평론가의 소장자료에는 문인들로부터의 편지, 원고 등이 많았다"며 "'이상 유고'도 그 자료들 속에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조연현 평론가 사후, 부인인 최상남 씨의 번역으로 '문학사상'(1986년 10월) 발표된 후 유실되었다가, 유족이 우여곡절 끝에 다시 찾아온 것"이라고 원본 발굴 및 공개의 경위를 설명했다.
국립한국문학관은 이상 전문연구자인 김주현 교수(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함께 자료의 원본 여부를 검증했다. 번역본 발표 당시 조연현이 작품의 특성이나 자주 사용한 용어 등을 들어 원본임을 인정한 바 있으나 이후 실물로 검증된 사례는 없었다.
김 교수는 "다행히 이번 유고에는 이상의 자필서명이 남이 있는데, 그 필체가 '전원수첩'에 실린 것과 동일하다"고 원본 확정의 근거를 밝혔다.
그 밖에 정인택의 소설에 등장하는 이상의 아포리즘(경구, 격언, 잠언) '꿈은 나를 체포하라 한다, 현실은 나를 추방하라 한다'라는 문장이 자필로 유고에 남겨져 있는 점, 자신을 소설에 자주 등장시켰던 이상의 창작 스타일이 '불행한 계승'에 '箱' 이라는 인물로 나타난다는 점, 습작 원고와 발표 원고의 상관성이 뚜렷하다는 점 등을 통해 유고가 원본임을 확정할 수 있었다.
국립한국문학관에 따르면, 건축기사 출신의 이상은 도상(圖像)을 작품 창작의 중요한 요소로 여겼다. 또한 그의 일본어 창작은 제국과 식민의 지배관계를 예민하게 자각한 모더니스트로서의 역설적 선택이었다. 이번 유고 발굴과 공개는 그런 점에서 이상 문학의 심층을 이해하는 중요한 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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