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5824쪽 셰익스피어 번역 대장정…30년간 번역 지속한 힘은"

3일 최종철 교수 '셰익스피어 전집'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

최종철 연세대학교 영문과 교수가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민음사 셰익스피어 전집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책 소개를 하고 있다. 2024.9.3/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작업이 막히다가도 운율을 타고 번역이 잘 되면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어요. 세상일이 다 그렇지만, 고된 작업이 주는 기쁨이 크기에 그 힘으로 30년을 버텼습니다."

(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 셰익스피어 번역의 권위자 최종철(75) 연세대 명예교수는 30여년간의 '번역 대장정'을 마친 소회를 이같이 밝혔다. 3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셰익스피어 전집(10권) 완간' 기념 간담회 자리에서였다. 최 교수는 셰익스피어의 전작(全作)을 운문 형식으로 번역했다.

그는 1993년 '맥베스'를 처음으로 운문 번역한 이래 30여년간 비극 10편, 희극 13편, 역사극·로맨스 외 15편, 시 3편, 소네트(14줄로 이루어진 사랑시) 154편을 열 권에 나누어 담았다. 분량이 총 5824쪽에 이르는 대작업이었다.

최 교수는 운문 번역을 시도하게 된 이유에 대해 "산문 형식으로 셰익스피어 작품을 번역한 적도 있었지만, 시적 효과와 긴장감이 떨어지고, 애초에 작가가 쓴 대로 뜻을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셰익스피어 극 작품 중 대표작이라 불리는 '4대 비극'의 경우, '햄릿'과 '리어왕'은 75퍼센트, '오셀로'는 80퍼센트, '맥베스'는 무려 95퍼센트가 운문 형식의 대사로 이뤄져 있다. 그렇다 보니 "시의 함축성·상징성을 유지하고, 의미를 아름답고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선 운문 번역은 필수였다"고 그는 부연했다.

셰익스피어의 연극 대사 대부분은 '약강 오보격 무운시' 형식. 최 교수는 "강세를 받지 않는 음절 다음에 강세를 받는 음절이 따라오는 것을 '약강'(弱强)이라고 하고, 이런 약강이 시 한 줄에 연속적으로 다섯 번 나타나지만(五步格), 각운은 맞추지 않는 시의 형식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최종철 연세대학교 영문과 교수가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민음사 셰익스피어 전집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책 소개를 하고 있다. 2024.9.3/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최 교수는 '맥베스'를 번역하면서 우리 시의 '삼사조'(세 음절과 네 음절이 되풀이되며 시구를 이루는 운율)야말로 '약강 오보격 무운시'를 살리는 데 제격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삼사조 운율을 적용해 우리말의 리듬을 살린 운문 번역을 셰익스피어 전집에 적용했다.

노(老) 교수는 번역할 때 가장 머리를 싸매고 작업한 작품으로 '맥베스'를 꼽았다. "대사에 압축과 비유·상징이 많아요, 언어의 밀도가 높아서 작품이 짧은데도 번역하는 데 시간이 가장 오래 걸렸죠." '맥베스'를 번역하는 데 3~4년이 소요됐다고 했다.

반면 가장 재밌게 번역한 작품은 '햄릿'이라고 말했다. "'햄릿' 이전의 복수극에서는 와신상담하듯 복수에 직진하는 인물들이 나왔다"며 "하지만 햄릿은 복수 자체를 회의하며 복수에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한다, 이런 유형의 인물은 이전엔 찾아보기 힘들다"라고 했다.

최종철 교수는 "인간 본성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게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이자 오랜 시간 그의 작품이 생명력을 지니는 이유"라며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은 사람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운문 번역 전집을 꼭 소리 내서 읽어보시라"고 웃으며 당부했다.

js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