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는데 대세입니다"…영화를 빨리감기로 보는 사람들 [신간]
-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빨리 감기'라는 현상을 통해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끄집어낸 신간 '영화를 빨리감기로 보는 사람들'이 번역출간됐다.
'영화를 빨리감기로 보는 사람들' 저자 이나다 도요시는 "왜 요즘 세대는 영화나 영상을 빨리 감기로 재생하면서 보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취재를 시작했다.
이나다씨는 이후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의 출현이 시사하는 무서운 미래라는 칼럼을 세상에 내놓았고 대단한 반응을 얻었다.
책은 기존 칼럼과 차후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와 각계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보강했다. 출간 즉시 일본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일본 독자들은 저자의 칼럼에 대해 명쾌한 지적이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왜 시청 방식을 강요하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모두가 마음 한편에 품고 있던 불편함이 이제 수면 위로 드러난 셈이다.
저자는 우리가 "영화를 감상한다"라는 말보다는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표현을 자주 한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작품'이 '콘텐츠'로, '감상'이 '소비'로 변화했다는 의미다.
'빨리 감기'라는 현상 속에는 세 가지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첫째로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등 봐야 할 작품이 너무 많아졌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영상을 가장 값싸게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둘째는 '시간 가성비'를 추구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요즘 사람들은 영상을 효율적으로 '섭취'하기 원한다.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빠르게 알고 싶어 하기에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장면은 건너뛴다.
저자는 이런 현상이 "성공하는 사람들의 00가지 비밀"류의 자기계발서가 잘 팔리는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꼽았다.
마지막으로 영상 제작 및 연출 자체가 쉽고 친절해졌다. 배우의 표정과 배경 소개로 은근히 표현할 수 있는 상황도 모두 대사로 전달한다. 그러니 대사가 나오지 않는 장면들은 모두 불필요하게 느껴지고 거리낌 없이 건너뛰거나 빨리 감기로 본다.
저자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고 했다. 이런 현상에는 OTT의 탄생, 경기 침체로 인한 효율성 추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남들과 차별화되고 싶다는 '개성'의 족쇄, SNS로 24시간 공감을 강요당하는 분위기 등이 담겼다.
Z세대는 효율을 강조하는 사회 속에서 '치트키'를 찾을 수밖에 없는 현실과 '실패하면 안 된다'라는 압박 속에서 새로운 행동 양식을 만들어냈다.'빨리 감기(배속)', '건너뛰기(스킵)', '패스트무비(몰아보기)' 현상이었다.
스마트폰을 확인하지 않고 캄캄한 영화관에서 2시간을 앉아 있는 게 고역이라는 이야기는 일본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튜브에서는 20분이 넘어가면 "너무 긴" 영상으로 간주되고 '쇼츠'나 '릴스' 영상은 처음부터 배속으로 편집되어 제작된다. 8시간짜리 '오징어 게임'을 30분 만에 몰아보는 현상이 뉴스에 나오기도 하고, 고전을 10분 만에 요약해주는 영상이 인기를 끈다.
'빨리 감기'로 대표되는 '콘텐츠 소비 문화'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영상 콘텐츠 시장이 나아가야 할 길과 우리 사회의 전반적 트렌드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질문을 남겼다.
◇ 영화를 빨리감기로 보는 사람들/ 이나다 도요시 씀/ 황미숙 옮김/ 현대지성/ 1만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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