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매''싸움닭'?…'우리말 파괴자' 朴대통령의 6가지 어법

[새책]'박근혜의 말'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제공)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그래서 우리 유족 여러분들도 계속 같이 일단 힘을 합쳐서 제가 앞장서고 이걸 계기로 해서 대한민국은 그런 부패나 또는 기강 해이라든가 또는 정말 헌신적으로 나라를 위해서 일을 해야 될 사람들이 유착이나 이상한 짓하고 이런 것들이 끊어지는 그런 나라를 반드시 만드는 것이 정말 그래도 지금 희생이 헛되지 않으리라 하는 우리 부모님, 또 유가족 여러분들의 생각에 저도 전적으로 같이하고 있습니다."(2014년 5월16일, 세월호 유족과의 면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

비정상적 국정운영 이전에 비정상적 언어가 존재했다. 지난 약 4년간의 재임 기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차분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무엇인가를 말했지만, 그의 언어는 말을 통역한 웹사이트까지 등장해야 할 정도로 '혼돈'이었다.

박 대통령의 통치는 모호한 언어와는 어울리지 않은 가혹한 사법조치 등을 동반했다는 지적이다. 자신의 말 이외는 '유언비어' '찌라시'로 몰아붙이기 일쑤였고 엄중한 처벌을 운운하는 말이 동반됐다. 그의 말은 우스꽝스럽고 요령 부득의 것이었지만 무력한 언어는 아니었다. 모호한 말은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도 이용됐고, 대통령의 말이 가지는 파급력 덕분에 사태의 본질을 감추는 '프레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최근 우리말 연구자인 최종희씨가 약 5년간 준비하고 쓴 '박근혜의 말'(원더박스)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박 대통령의 혼란스러운 어법을 '오발탄 어법''영매 어법''불통군왕의 어법''피노키오 어법' '유체이탈 어법' '싸움닭 어법' 등 6가지 유형으로 정리하고 그같은 혼란된 언어를 사용하게 된 이유를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비정상적 '언어'는 비정상적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언어가 혼돈스럽게 된 배경에는 10대와 20대 초반을 일반인들과 섞이지 않은 채로 지낸 청와대에서의 생활과 아버지를 측근의 손에 잃은 '배신의 경험'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또 대통령이 된 후에는 정책전문성이 부족하고 이해력도 부족해 '내용'보다는 '태도'를 중시하게 됐고, 태도에 따라 발끈하며 동문서답을 하는 특징도 생겼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저자는 일반인의 실생활을 접할 기회가 감정을 과잉발산하는 TV드라마밖에 없어서 박 대통령이 간혹 드세고 교양없는 '싸움닭' 같은 말투를 구사하는 것 아닌가 조심스레 추측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어법 '근혜체'의 유형들

저자가 책에서 첫번째로 꼽은 박 대통령의 특징적 어법은 '오발탄 어법'이다. 2012년 11월 대통령 선거후보 등록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저는 오늘로 지난 15년간 국민의 애환과 기쁨을 같이 나누었던 대통령직을 사퇴합니다"라며 대통령이 아님에도 대통령직을 사임한다고 말한 '깜짝 실수'에서부터 2012년 경기도 당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전화위복'을 말한다는 것이 "전화위기의 계기로 삼아…"라고 말한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2007년 7월 제주MBC 주최 한나라당 대선후보 합동토론에서 "굉장히 준비를 잘 해서 그…배기가스라든가 이런 것이 그 조정이 될 수 있도록 그…(중략) 어떻게 하면 이산화가스, 산소가스를 배출하는 데, 그…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이산화탄소'를 '이산화가스'로 말하는 등의 실수, 이외에도 "군생활이야말로 앞으로 군 생활을 할 때 큰 자산" 등의 표현들도 있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영매 어법'은 "우리나라를 주술국가로 만들었다"면서 저자가 가장 큰 문제로 꼽은 어법이다. 다음처럼 박대통령이 '우주' '정성' '혼' '마음' '일편단심' '염원' '메시지' 등 일반적인 정치인들이라면 잘 쓰지 않는 종교적인 언어를 쓴다는 것이다.

"우리가 경제 재도약을 '염원'하고 어떻게든지 경제 활성화를 해야 된다고 노력하고 있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염원'하는데 그거에 대한 '하늘의 응답'이 바로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것이 바로 메시지'라고 우리가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2015년 3월 무역투자진흥회의 연설에서)

저자는 '나는 왕이자 무오류 존재이고 잘못한 것은 너희'라는 식의 속내가 보이는 '불통 군왕의 어법'도 박 대통령의 어법의 특징으로 지목했다.

2016년 4월 대통령의 중간평가 격인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패배했음에도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박대통령은 "20대 국회가 민생을 챙기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국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잘못을 국회에 떠넘겼다. 2015년 국무회의에서는 국회에 대해 "맨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고, 민생이 어렵다고 하면서 자기 할 일은 하지 않는다. 위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눈 하나 깜짝 않고 말을 바꾸는 '피노키오 어법'도 특징으로 지목됐다. 예를 들어 박 대통령은 1989년 5월 MBC 박경재의 시사토론에서 "저는 5.16이 말하자면 구국의 혁명이라고 믿고 있는데…5.16이 없다, 더 나아가 유신이 없다고 할 때 과연 그 5.16을 비판하고 매도까지 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족들을 데리고 사는 이 땅이, 이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라며 5.16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다.

하지만 2012년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토론에서는 "5.16 같은 경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불행한 군인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듯, 그것이 어떤 정상적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불행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버지 스스로도 인정하신 거니까…"라며 말을 바꾼다.

'나는 누군가, 여긴 어디인가?' 식의 유체이탈 어법은 그간 자주 언론에서도 언급된 말로 반성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사안에 대해서 자신을 빼놓고 말하곤 한 어법을 칭한다. 2012년 12월 3차 대선후보 토론회 때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시절 집권당 한나라당의 대표를 지냈기에 같이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의 문재인 야당 대표의 말에 뜬금없이 이렇게 대답한다.

"그래서 대통령 되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지금 제가."

하지만 유체이탈 어법은 박대통령 입장에서 무력하고 무해한 어법은 아니었다. 대통령은 유체이탈 어법으로 수많은 책임을 회피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세월호 참사 직후 국무회의와 수석비서관회의 등에서 "유병언 일가의 이런 행동은 우리 사회에 대한 도전" "세월호 사고의 주요 피의자인 유병언 일가" "세월호 사고는 유병언 일가가 사익을 추구하다 낸 참사" "무엇보다 유병언에 대해서 끝까지 추적해서…" 등의 말을 쏟아냈다. 이는 유병언 일가에 대한 조사를 세월호 사태 원인규명의 핵심인듯 바꿔치기하며 당시 언론의 프레임을 바꿔버렸다.

저자에 따르면 무엇보다도 박 대통령의 말을 듣다가 자주 깜짝 놀라게 하는 유형의 말은 다음 처럼 '싸움닭'같은 말이다.

"한국말 못 알아들으세요?"(2011년 불우아동 후원 바자회에서 한 기자의 질문에)

"병 걸리셨어요?"(2011년 9월 인천고용센터 방문 도중 한 기자가 안철수의 지지율에 대해 질문하자)

박 대통령은 대본 없이 발언할 때, 즉석에서 벌어진 상황에서 이야기할 때, 고상한 채 하기도 어려울 만큼 짜증이 치밀어오르는 듯한 상황일 때 이같이 말했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또 1989년 MBC 박경재의 시사토론에서 "(4.19 이후 만약) 우리가 공산당의 밥이 됐다면…"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으며 '멘붕' '찌라시' '대박' 등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용어 등도 자주 사용했다. 이의 원인을 저자는 '책을 읽었다'는 서술보다 유난히 'TV프로그램을 보았다'는 서술이 많이 나오는 박대통령의 일기에 기초해 TV와 인터넷 등에서 언어를 습득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박 대통령, 고급스러운 유머 구사 못해"

저자는 이런 이유로 박대통령이 심리적인 여유와 교양, 재기가 바탕이 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정치인의 고급스러운 유머를 구사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책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백악관 출입기자들과 가진 퇴임전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공화당의 유력 대선후보로 떠오른 도널드 트럼프의 외교경험 부족 우려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공화당 지도부는 트럼프가 외교경험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미스 스웨덴, 미스 아르헨티나. 미스 아제르바이잔 등 외국 지도자들과 만나왔습니다."

트럼프의 여성편력을 멋지게 비꼰 이 말은 그 자리의 모든 이들을 박장대소하게 했고, 워싱턴포스트는 다음날 '코미디계의 최고사령관'이라는 신문 헤드라인을 뽑았다.

박 대통령 역시 재임기간 동안 "점심 때 못 먹은 것은? 아침밥과 저녁밥", "새우와 고래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 아세요? 답은 새우, 새우는 깡이고 고래는 밥이니까"와 같은 유머를 구사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두고 여야가 국회에서 맞설 때 남성의원들과 맞서고 있던 당시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에 비해서도 유머 감각이 현격하게 떨어진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당시 송 의원은 의사봉이 감쪽같이 사라진 단상 근처에 있다가 다른 의원이 방망이를 내놓으라고 몰아붙이자 "나는 태생적으로 방망이가 없어요!"하고 소리쳐 주변의 의원들을 웃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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