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봐, 어렵지 않아"…쉬우면서 가슴찡한 시집들

오은 '유에서 유'·박기영 '맹산시장 옻순비빔밥' 등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난해한 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이해가 되지 않는데 감동을 얻기란 힘들다. 요즘 시에 쏟아지는 불만이다. 그런데 어려운 것 만이 시의 문제가 아니다. 쉽고 얕은 감성을 보여주는 '스낵'같은 시밖에 없어 시에서 삶을 돌아보게 하는 감동과 반성을 얻을 기회를 찾기가 점점 어렵다는 것도 또 다른 불만이자 우려다.

하지만 최근 이런 우려 속에서 재미있고 독특하고 가슴 찡한 시집들이 여러 권 출간되어 시 애독자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젊은 감각이 톡톡 튀는 오은의 시집 '유에서 유'(문학과지성사), 원소기호에서 시상을 찾은 성윤석의 '밤의 화학식'(문예중앙), 삶과 추억이 서린 음식들을 시에 담은 박기영의 '맹산식당 옻순비빔밥'(모악), 강우식의 음식 시집 '꽁치'(시인동네), 댓글시를 모은 제페토 시인의 '그 쇳물 쓰지 마라'(수오서재) 등이 바로 그런 시집들이다. 이들 시집은 출간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독자와 평단의 호평이 잇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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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시인은 '꿀맛이 왜 달콤한 줄 아니?/꾼 맛도 아니고 꾸는 맛도 아니어서 그래./미래니까,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라며 '시인의 말'에서부터 재기를 뽐낸다.

'내 이름은 척Chuck이야/어느날, 나는 나 자신에게 나를 소개했다//내가 나를 알은척하듯//내가 모르는 나를/실은 알지만 애써 모르는 척했었던 나를/내 이름은 척이니까/잠시 척이 아닌 척했었던 거지/아니 잠시만 척인 척했었던 거지'('척' 일부)

미국 이름인 '척'을 자신을 잃어가는 현대인의 여러 가지 '척'과 결합해 유쾌한 말놀이로 이끌어간 이 시에서 보듯 오은은 사회의 부조리를 향한 폭로와 상처, 어둠, 쓸쓸함 등의 감정을 무겁지 않은 '발랄함' 속에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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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내용에 '납 Pb' '텅스텐 W' '네온 Ne' 등 원소기호가 난무해 과학책인가 싶은 '밤의 화학식'은 슬픔과 외로움의 감정이 차 있는 시집이다. 시인은 마모되고 소멸해가는 ‘먼지’ 같은 외로운 존재들과 쓸쓸한 삶을 근본부터 짚어낸다.

'단단한 네 마음일지라도/금속피로가 오지 않는 이유는/늘 피로한 빛을 하고 있어서 그래./계속되는 슬픔은 피로해지지 않아./등등함마저 버리고/네가 이 세상의 중심처럼 평형의 추처럼/떨어져 있는걸./어느 날 낚싯바늘을 매달고/바닷속으로 가라앉을지라도/숲 그늘에 드러누운 눈밭처럼/넌 너대로 거기 있으렴./어느 계절엔 반짝이지 않는 게/더 큰 빛이야.('납 Pb'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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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음식 시집'이라고 할 박기영과 강우식의 시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토속적 음식이나 일상적 음식으로 차 있다. 이들은 '먹방'(먹는 모습을 방송하는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사치스런 음식도, '죽기전에 꼭 먹어봐야 할 음식' 등의 별스런 음식도 아니다. 추억의 음식이자, 불맛과 손맛이 뜨겁게 살아있어 인생처럼 읽히는 음식이자 시들이다.

예를 들어 박기영은 시 '콩비지밥'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쌀도 가끔은 가마솥에서 혼자 끓어오르기 싫을 때가 있는 것이다./그런 날이면 주인과 아낙 맷돌 옆에 불러놓고 물에 잔뜩 부어오른 콩을 갈게 만든다.//살짝 달아오른 솥바닥에 비곗살 달라붙은 돼지고기를 끌어모으고 서걱이는 김치며 콩나물 몇 줌, 덤으로 쌀 위에 올려놓고 함께 은근한 불로 끓인다. (중략)//콩물과 쌀물이 함께 가마솥에서 오붓한 신방 차려 알콩달콩 서로 손잔등 쓰다듬으며 만들어낸 콩비지밥.'

박기영의 시에서 쌀은 혼자 외롭게 끓기 싫어 주인과 아낙을 콩을 갈게 만들고 자신이 안쳐진 가마솥에 부어진 콩물과 서로 손잔등 쓰다듬듯이 끓는다. 강우식의 시에서는 '붉게 삭은 묵은지같은 여자'와 '돼지 삼겹살 같은 남자'가 함께 번철에서 이리저리 뒹굴며 익어간다.

'사랑이란 때로는/몸서리쳐지도록 시큼 새콤하다./묵은지 같다./그 묵은 맛을 빼고 삭지 않은 것을/어찌 사랑이라 일컬으랴.//돼지 삼겹살 같은 사내와/불판에서 이리저리 뒹굴고/타오르며 익어가는/묵은지처럼 붉게 삭은 여자여.(강우식 시 '묵은지' 일부)

한쪽에 최근 수년간 있었던 사건들에 대한 기사, 다른 한쪽에 제페토 시인이 댓글로 달았던 시를 함께 보여주는 '그 쇳물 쓰지 마라'는 같은 사건을 목격하고 느낀 '공감대'를 바탕으로 해 이해가 쉽다. 어이없고 비통한 현실의 사건들에 대한 슬픔은 인터넷 자판을 넘어서서 현실의 길을 모색한다. 2014년 5월 세월호 추모 집회와 관련해 쓴 시 ‘집을 나서며’는 한국 사회의 아픔에 공감하고 동참하고자 하는 건강한 시민의 모습과 함께 쉽고도 감동적인, 그리고 현실과 밀착된 시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나는 염세주의자인데/ 지독하게/ 겁도 많은데/ 광장행 버스를 타겠다// 방석 대신/ 소설이 빼곡한 신문지를/ 아스팔트 위에 깔고 앉아서/ 세상 바닥이야 으레 차가웠으니/ 그러려니 하겠다// 요구하겠다. 듣든 말든/ 미치도록 하고 싶던 말을/ 물론, 소리치기에 앞서/ 살아만 있던 입은 오늘부로 죽이고/ 성층권에서만 배회하던 머리도/ 뚝, 떼어 버리고// 주먹을 쥐고서/ 고개를 들면서'(‘집을 나서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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