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데보라 스미스, 이전 한국인 번역과 이것이 달랐다"
[한국문학의 세계화]1. 세계인에게 읽히는 번역은…
- 권영미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나의 목적은 문학을 마치 무엇과도 상관없이 바꿔칠 수 있는 물품처럼 다루는 '상업검열'에 반대하여 번역을 예술행위로 승화시키고 세계적인 독자 사이에 깊은 이야기꽃을 피우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데보라 스미스의 에세이 '한국문학과 함께 가는 삶의 여정' 중에서)
소설가 한강(46)이 쓰고 데보라 스미스(28)가 번역해 영어권에 소개한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공동수상한 후 한국문학의 번역과 해외 소개가 관심으로 떠올랐다.
지난 21일 오후 고려대에서 정영목 이대 통번역대학원 교수의 진행으로 열린 제3회 번역대담 프로젝트 ‘번역을 묻다’에서는 1990년대 이후 한국문학의 번역 전반이 꼼꼼하게 점검됐지만 중심 화제는 역시 스미스의 번역을 둘러싼 것이었다.
고려대 번역과레토릭연구소와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번역학과가 주최한 이 행사에서는 아울러 '한국문학은 번역의 문제로 세계문학에 편입되지 못했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반론이 일었으며 한국문학이 해외에 소개되기 위해서는 어떤 번역 전략이 채택되어야 하는지 이야기됐다.
번역과레토릭연구소 소장이자 고려대 불문과 교수인 이영훈 교수는 “그간 '좋은 번역이 없어서 노벨문학상 등 국제적 상을 못탔다'는 (번역에 대한) 비판은 너무 단순한 인식"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번역과 현지에서 생각하는 좋은 번역이 기준이 달랐을 뿐”이라면서 “몇 년 전 한국문학번역원이 그간 번역원이 지원한 번역작품에 대한 평가를 내부적으로 했는데 한국적인 것을 못살린 번역이 많았던 것으로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번역자와 한국인 번역자가 공동으로 한 번역의 경우 작품 속의 한국적인 것이 사장되지 않았지만 외국인번역자가 단독으로 한 경우 한국적인 색채가 사라졌기에 그 평가가 좋지 않았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간 국내에서 좋은 번역의 의미는 '한국적인 색채를 띠면서도 자연스러운 번역'이었다는 의미다.
대체로 한국문학의 초기 번역은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이 맡았다가, 그 후 한국인과 외국인의 공동작업이 주로 이뤄졌다. 하지만 최근 데보라 스미스 경우처럼 개인적으로 한국작품에 관심을 가지면서 번역하는 소위 제3세대 번역가들이 등장했다.
외국인 번역자가 단독으로 번역한 경우인 '채식주의자'는 현지 수용자들의 입맛에 초점을 맞춰 좋은 성과를 냈다. 현지에서는 좀더 보편적이고 수용자 중심적인 번역이 좋았다는 의미다.
대산문화재단의 곽효환 상무는 ”이전에는 한인 교수 중심으로 번역이 진행돼 작품이 아카데믹하게 읽히는 면이 많았다. 하지만 스미스의 경우에는 언어의 뉘앙스나 화자들의 언어수준까지 반영한 미묘한 '등가번역'이 이뤄졌다"고 높게 평가했다.
현재 한강에 이어 배수아의 책을 번역중인 데보라 스미스는 섬세하고 시적인 작품들을 주로 번역하며 그에 적합한 출판사를 연결해주고 있다. 문학을 물품처럼 다루는 '상업검열'에 반대하는 그는 무조건 크고 책을 잘 팔아줄 출판사를 찾는 게 아니라 작품과 성격이 맞고 작품세계를 잘 이해하는 출판사를 연결해주는 '소개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채식주의자'의 영어판 'The Vegetarian'은 대산재단의 번역비와 출간비용의 지원을 받아 2015년 영국 포르토벨로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번역 후기에서 데보라는 "번역은 ‘단 한 가지’ 해석을 낳지 않는다. 혹은 그러해서는 안 된다.(중략)문화적 특수성을 문맥화하는 동시에 작품이 읽히고 수용되는 방법에 있어 과도한 방향 지시를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스미스는 "폴란드와 같이 가톨릭 문화가 강한 나라에서는 (채식주의자의 주인공인) 영혜가 과거 기독교 성자들이 그러했듯 금욕을 통해 종교적 무아지경에 도달하려는 것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 반면 불교국가라면 "영혜의 선택을 인간 동물의 내재적 폭력성을 떨쳐내기 위한 조금은 더 조용한 시도로 볼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영국 독자들은 유교적 위계에 따른 경직된 사회 질서를 이해할 가능성이 적어 다른 번역전략을 택해야 할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이날 번역대담에서 이 전략은 한국문학이 더욱 많이 소개되어 한국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 다시 조정되어야 할 전략으로 간주됐다. 대담자인 한겨레 신문의 최재봉 문학전문기자는 "채식주의자는 원작을 영미권의 맥락과 언어특질에 따라 변형하고 번역자가 개입한 것인데 한국문학 소개 초기이므로 현지 독자에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라면서도 "하지만 한국문학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 다시 원전에 충실해져서 자국의 독특한 것을 살리는 쪽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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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소설가 한강이 쓰고 데보라 스미스가 번역해 영어권에 소개한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공동수상한 후 한국문학의 번역과 해외 소개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뉴스1은 한국문학의 해외진출을 위해서는 어떤 번역이 좋은 번역인지, 우리 문학을 해외 소개하기 위해 어떤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는지, 그리고 번역문학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번역비평에서의 쟁점은 무엇인지 3회에 걸쳐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