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구진, 오른손·왼손 분자의 미세한 차이 잡는 기술 개발
서울대-고려대 공동연구진, 초고민감도 분자 카이랄성 측정 기술 개발
의약학 분야 활용 기대…네이처 게재
- 김승준 기자
(서울=뉴스1) 김승준 기자 = 성분은 같지만, 구조가 다른 분자를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이 기술은 생체 재료 합성 및 물질 분석이 중요한 분석학, 진단학, 약학 등 다양한 산업뿐만 아니라 화학, 생물학, 물리학 등 기초 학문 분야에도 큰 파급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서울대학교 남기태 교수, 고려대학교 이승우 교수, 박규환 교수로 구성된 공동연구팀이 이같은 기술을 개발했다고 15일 밝혔다.
과기정통부의 '미래소재디스커버리지원 사업' 등의 지원이 이뤄진 이번 연구의 성과는 네이처(Nature)에 15일 게재됐다.
왼손과 오른손은 구성 성분이 동일하고 구조도 비슷해 구분이 어렵지만, 왼손 장갑을 오른손에 끼울 수 없다. 이처럼 분자에도 구성성분이 동일하지만, 서로 거울상 대칭이기 때문에 작용이 다른 분자들이 있다. 이러한 차이를 카이랄성이라고 부른다.
카이랄성이 중요한 이유는 성분은 같아도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인체 등에서의 작용이 다르다. 예를 들어, 단백질의 기본 단위인 아미노산도 카이랄성이 있다. 인체에서는 '왼쪽' 아미노산만 사용이 가능하다.
의약 분야에서는 탈리도마이드의 사례가 유명하다. 입덧 치료제로 쓰이던 탈리도마이드는 거울상 대칭인 분자가 있다. 문제는 거울상 대칭이 고려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유통되며, 태아의 신체 발달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 것.
카이랄 분자는 구성성분, 무게 등 많은 측정값이 동일하게 나타나 구분이 어렵다. 카이랄 분자에 전자기파(빛)를 쬐어주면 그 구조에 따라 '편광'이라는 특징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 방법이 구분에 주로 쓰인다.
이 방법으로 카이랄 분자를 분석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쉽지만, 실제는 한계가 존재한다. 분자(수 ㎚)와 빛(수백 ㎚)의 크기 불일치로 인해 빛-물질 간 상호작용이 충분히 크지 않아 분석에 고농도의 시료가 필요하다고 측정 시간도 오래 소요된다.
이번에, 국내 공동연구진이 개발한 방법은 2차원으로 배열된 나노 입자를 이용하는 것이다. 연구진이 개발한 2차원 나노입자 기판 위에 시료를 올려놓고, 가시광선을 쬐어주면 비교적 간단하게 육안으로도 분자의 카이랄성을 확인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연구팀이 활용한 나노 입자는 고유의 기하 구조로 인해 입사되는 빛(원편광)과 공진해, 분석 대상 입자와 빛의 상호작용을 극대화한다. 즉 일종의 신호 증폭 역할을 하는 셈이다.
남기태 서울대학교 교수는 "대한민국 연구진이 함께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새로운 소재 개발 등 후속 연구를 통해 초격차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사업을 탄생시키고자 한다"고 전했다.
공동교신저자인 이승우, 박규환 고려대학교 교수는 카이랄 금 나노 입자 격자의 광 특성과 분자 카이랄성 민감도에 대한 전자기학 시뮬레이션과 새로운 물리적 이론을 구축했다.
이들은 "생체모방 재료공학과 전산나노광학의 창의적 융합을 통해 카이랄 분자 센싱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는 점이 크게 고무적이며, 육안으로 분자의 카이랄성을 구별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이랄 금 나노 입자 배열 기반의 초고민감도 분자 카이랄성 분석은 다양한 생체 분자, 화학 약품, 의약품의 카이랄성 분석 등에 이용될 수 있다. 생체 재료 합성 및 물질 분석이 중요한 분석학, 진단학, 약학 등 다양한 산업뿐만 아니라 화학, 생물학, 물리학 등 기초 학문 분야에도 큰 파급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에는 김령명, 허지혁, 유석재 연구원이 제1저자로 참여했다.
seungjun241@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