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엽의 IT프리즘]대기업의 미디어 산업 소유규제 완화해야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서울=뉴스1)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 현행 방송법은 자산총액 10조 원이 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경우 지상파방송사의 지분을 10% 이하로 소유하도록 정하고 있으며, 미디어렙법도 자산총액 10조원이 넘는 대기업은 미디어렙의 지분을 10% 이하로만 소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방송법, 미디어렙법상 대기업 기준은 공정거래법을 원용한 것인데, 그동안 공정거래법상 대기업 기준은 국내 경제규모 성장에 비례하여 꾸준히 개정된 반면, 방송법, 미디어렙법상 대기업 기준은 경제규모 성장, 방송사업자들의 자산규모 확대 등과 상관없이 2008년부터 지금까지 (미디어렙법은 2012년) 10조 원으로 유지되고 있다.

현재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자산총액 산정 기준은 <명목 국내총생산의 확정치 x 0.5%>로 변경되었으며, 이 기준에 따르면 자산총액 기준은 10.4조 원이다.

이런 자산총액 규제의 특성은 크게 4가지이다. 첫째, 비현실적이고 낡은 규제라는 점이다. 현재의 방송법, 미디어렙법상 대기업 소유규제는 그동안의 경제와 기업 성장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 소유규제 관련해 방송법 시행령이 마지막으로 개정되었던 2008년 당시 1,154조 원이었던 국내 총생산액은 2023년 2,236조 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2008년 대비 94% 증가한 수치이다.

또한 2024년 대기업 수(48개)는 2008년(공기업 제외 17개) 대비 2.8배 증가하였고, 2024년 대기업 자산총액 총합(2,794조 원)은 2008년(공기업 제외 655조 원) 대비 4.3배나 증가했다. 이처럼 국내 총생산 증가에 따른 기업들의 자연스러운 성장에도 불구하고, 방송법, 미디어렙법상 대기업 기준은 여전히 10조 원을 유지하며 현실에 맞지 않는 낡은 규제로 변질되었다.

둘째. 동 규제는 공정거래법과의 차이점을 반영하지 못해 모순적인 규제가 되고 있다. 2008년 방송법 시행령을 개정해 자산총액 3조 원에서 10조 원으로 상향시 당시 공정거래법상 대기업 기준 자산총액은 5조 원이었다.

이는 당시 공정거래법상 대기업 집단 중에서도 자산총액이 일정 규모 이상인 기업을 방송법에서 별도로 정해 해당 기업들에 한해서만 지상파방송사의 소유를 제한토록 한 것이 당시 입법자의 개정 취지였다.

이런 취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방송법상 대기업 자산총액 기준이 거래법상 금액 기준보다 높아야 하는데 그동안의 방송법 개정 미비로 인해 이와는 반대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셋째, 도입 목적이 상실된 규제이다. 대기업의 지상파방송사 소유제한 규제는 미디어가 지상파 방송과 신문에 불과하던 시대에 대기업의 여론 독과점을 방지하기 위한 진입 규제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후 기술 발전에 따른 방송·미디어시장의 급변, 그리고 포털, SNS, OTT의 이용자 확대 등으로 지상파 방송이 여론에 미치는 영향력은 규제 도입 당시 대비 큰 폭으로 감소하였으며, 이로 인해 당초 동 규제가 방지하고자 한 ‘지상파를 활용한 대기업의 여론 독과점’ 상황의 발생 가능성 자체가 상실된 지 오래다.

또한 이런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기업의 영향력 행사를 방지하는 사후 규제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이미 방송법에 여론 독과점을 방지하기 위해 시청점유율 30% 한도 규제가 있을 뿐 아니라 재허가 심사, 방송평가, 방송 심의 등 최다액 출자자에 의한 지상파 방송의 사적 이용을 막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넷째, 한국에만 존재하는 규제라는 것이다. 대기업 소유규제는 해외 주요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규제로, 토종 콘텐츠 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기업의 자산총액 규모를 기준으로 방송사업 진출에 제한을 두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과 일본은 과거 아날로그 매체 환경에서 도입되었던 일률적 사전 규제를 최소화하는 대신 방송 분야의 과도한 시장 집중이나 특정 사업자의 영향력을 가구 도달률, 시청점유율 등을 통해 규제함으로써 비대화를 억제할 수 있는 사후 규제를 시행 중이다.

이런 대기업의 지상파 방송소유 제한으로 인한 부정적 효과가 심각하다, 동 규제는 방송시장으로의 대규모 신규 투자 유입을 차단해 방송사들의 제작 재원 확보를 어렵게 하고, 국내 방송사들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시도까지 저해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국내 방송사들이 규모 있는 글로벌 콘텐츠 사업자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이에 방송·미디어 시장으로의 대기업 자본 유입을 촉진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가능할 정도로 규모와 경쟁력을 갖춘 사업자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방송법, 미디어렙법상 대기업 소유규제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낡은 소유규제로 인해 대기업들에 의한 전략적 투자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면 결국 제작 재원 확보가 어려워진 방송사들은 어쩔 수 없이 제작비, 수익성을 보장해 주는 글로벌 OTT 향 콘텐츠 제작, 공급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며, 결국 국내 방송사들을 글로벌 OTT의 하청 업체로 도태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방송미디어 시장, 환경의 변화와 지상파 방송의 영향력 감소로 당초 동 규제가 방지하고자 한 ‘지상파를 활용한 대기업의 여론 독과점’ 가능성이 상실된 지 오래라는 점을 감안해, 중장기적으로 민영 방송사에 한해서라도 사회적 논의를 거쳐 방송법, 미디어렙법상 대기업 소유제한 규제를 폐지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 자산총액 10조 기준은 자산총액 기준 금액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 자산총액 기준을 GDP와 연동해 산정하는 방안, 규제 기준을 자산총액 대신 대기업집단 순위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