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은행 문턱 못 넘었다…'K-코인 대표' 페이코인, 상폐 결정 (종합)

실명계좌 확보 못해 상장 폐지…국내서 '페이코인' 통한 결제 못해
페이코인 "닥사 결정은 유감…해외 결제·지갑 사업 지속"

페이코인 이용화면.

(서울=뉴스1) 박현영 김지현 기자 = 다날의 가상자산 프로젝트 페이코인(PCI)이 국내 5대 거래소에서 퇴출된다. 금융당국의 규제로 인해 주요 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된 사실상 첫 사례다. 그간 국내 가상자산 프로젝트들은 유통량 오류, 커뮤니티 소통 부재 등 프로젝트 자체의 문제로 상장 폐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31일 5대 원화마켓 가상자산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로 구성된 디지털자산 거래소협의체(닥사, DAXA)는 페이코인의 거래 지원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거래 종료 시점은 오는 4월 14일이다. 닥사에 따르면 회원사들은 만장일치로 페이코인 거래 종료를 결정했다.

페이코인은 닥사 소속 거래소 중 업비트(BTC마켓), 빗썸, 코인원에 상장돼 있다. 해당 거래소들은 거래 규모가 국내에서 가장 큰 이른바 '톱3' 거래소다.

또 페이코인은 주로 업비트와 빗썸에서 거래된다. 31일 코인마켓캡 기준 페이코인은 전체 거래량의 56.95%가 업비트에서, 33.26%가 빗썸에서 거래되고 있다. 90% 이상 거래량이 양대 거래소에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거래량 대부분을 차지하는 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되면서 페이코인 사업에도 차질이 생겼다.

◇규제 압박부터 상폐까지, 페이코인엔 무슨 일이 있었나

페이코인은 통합결제 전문기업으로 유명한 다날의 가상자산 프로젝트로, 출범 초기부터 국내 시장에선 인지도가 있는 편에 속했다. 업비트, 빗썸 등 대형 거래소에 일찍이 상장되며 인기를 끌었다.

콘셉트는 '페이코인을 통한 결제'였다. 결제 전문기업의 코인다운 행보였다. 이후 페이코인은 다날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굵직한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국내 3대 편의점을 비롯해 BBQ, 할리스커피, 매드포갈릭, CGV 등 유명 식음료(F&B)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맺으며 페이코인의 사용처를 넓혔다.

이런 페이코인에 금융당국이 규제의 칼날을 들이댄 것은 지난해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금융당국은 페이코인의 결제 구조 중 원화와 가상자산 간 교환이 있다고 보고, 페이코인 발행사이자 다날 계열사인 페이프로토콜에 가상자산거래업자로 신고할 것을 요구했다.

페이코인의 사업구조상 고객이 가상자산으로 결제하면 이를 가맹점에 정산해주는 과정에서 원화와 가상자산 간 교환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원화와 가상자산 간 교환을 지원하는 거래업자가 되려면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획득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페이프로토콜에 지난해 말까지 계좌를 확보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페이프로토콜은 기한을 엄수하지 못한 채 가상자산 거래업자로의 변경신고서만 냈다. 금융당국은 페이코인의 변경신고를 불수리했고, 닥사는 이를 이유로 페이코인을 유의종목으로 지정했다.

불수리 통보를 받았을 당시만 해도 페이프로토콜은 1분기 안에 은행 계좌를 반드시 확보해 변경신고에 재도전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불수리를 이유로 페이코인을 유의종목으로 지정한 닥사에게도 1분기까지 계좌를 확보하겠다는 입장을 전했고, 이에 따라 유의종목 지정 기간도 두 달이나 연장됐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페이코인에 또 한 번 제동을 걸었다. 복수의 취재원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자체 발행한 가상자산, 이른바 '자기발행코인'으로 결제하는 모델로는 실명계좌를 받을 수 없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페이코인 서비스의 핵심은 페이코인을 통한 결제다. 해당 서비스를 포기하지 않고는 계좌를 받을 수 없게 된 셈이다. 이에 페이코인은 사실상 국내 시장에서 핵심 사업을 포기해야 했다.

1분기까지 계좌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지키지 못하면서 닥사 소속 거래소들은 회원사 만장일치로 상장 폐지 결정을 내렸다.

현재 페이프로토콜은 4분기까지 은행 계좌를 확보해 거래업자 변경신고에 재신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그러나 계좌 확보에 성공하더라도 페이코인 대신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등 주요 가상자산을 통한 결제만 지원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페이코인 "닥사 결정 유감…사업 포기 안해"

페이코인은 끝내 상장 폐지 결정을 내린 닥사에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닥사가 1분기까지 계좌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근거로 유의종목 지정 기간을 연장한 것은 맞으나, 계좌를 확보하지 못할 상황을 대비해 페이코인 측은 사업 '피버팅(핵심사업의 방향을 바꾸는 것)' 계획도 충분히 소명했다고 주장했다.

가상자산 프로젝트들 중 사업 방향이 초기 백서의 내용과 달라진 프로젝트들은 많다. 이 같은 프로젝트들이 다수임에도, 페이코인만 상장 폐지한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조치라고 페이코인은 주장했다.

페이코인 측은 "백서대로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는 많은 거래 지원 프로젝트들과 비교했을 때 심각하게 형평성을 잃은 조치"라고 지적했다.

상장 폐지로 페이코인은 거래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거래 채널'들을 잃게 됐다. 그럼에도 사업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페이코인 측은 강조했다.

페이코인의 피버팅 계획은 해외 사업과 지갑 사업,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된다. 싱가포르 및 일본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해외 결제 사업을 확대하고, 국내에서는 지갑 사업자 라이선스를 기반으로 가상자산 보관 및 예치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페이코인은 가상자산 거래업자 신고는 불수리 통보받았으나 지갑사업자로는 신고를 수리받은 바 있다.

페이코인 측은 "페이코인의 사업은 결코 종료되지 않을 것이며, 이미 밝힌 바와 같이 3분기 내 해외결제 사업을 시작하고 13개 블록체인 메인넷을 지원하는 지갑 서비스도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계획을 밝혔음에도 불구, 시장은 냉정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날 닥사가 상장 폐지를 발표한 지 30여분만에 페이코인 가격은 50% 이상 하락했다.

이날 오후 4시 28분 업비트 기준 페이코인 가격은 전일 대비 50.85% 하락한 235원을 기록했다.

hyun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