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엽의 IT프리즘] 배달 플랫폼 자율규제와 법적 규제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서울=뉴스1)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 코로나 19가 시작한 이래 비대면 사회가 도래하면서 급성장한 배달 플랫폼 시장에서 플랫폼 사업자, 입점업체, 소비자 간의 갈등이 심화되자, 지난 정부는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을 제정하여 플랫폼에 대한 규제를 시도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법적 규제 대신 자율규제를 선택하고 플랫폼 자율기구 산하의 갑을 분과에서 배달 플랫폼 사업자 및 관련 단체, 중소기업·소상공인 단체 등 이해관계자들과 민간 전문가 등이 참여하여 배달앱 업종에 적용할 자율규제 방안을 논의해왔으며, 6개월 만인 지난 6일 ‘배달 플랫폼 자율규제 방안’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크게 3가지이다. 배달 플랫폼 입점계약 관행 개선, 배달 플랫폼과입점업체 간 분쟁처리 절차 개선, 배달 플랫폼과입점업체 간 상생 및 입점업체의 부담 완화이다.

첫째, 배달 플랫폼 입점계약 관행 개선을 위해, 플랫폼 사업자가 약관(계약서) 작성 시 계약기간, 계약 변경·갱신·해지 시 그 사유 및 절차, 배달중개서비스 제한·중지 시 그 사유 및 절차, 수수료·광고비 적용방식, 대금정산 주기 및 절차, 검색 노출순서 결정 기준 등 포함하도록 했다. 이 중에서 검색 노출순서 결정 기준은 배달 플랫폼 내에서 소비자의 검색에 따라 입점업체가 노출되는 순서를 결정하는 주요 기준을 플랫폼 홈페이지 등에 안내한다는 것이다. 다만, 알고리즘은 제외한다. 그 외에도 배달앱 내 악성 리뷰에 대한 삭제 및 임시조치 기준, 악성 리뷰 작성자에 대한 이용제한 기준, 이용사업자의 리뷰 게시 중단요청 절차 등의 구체적 내용을 정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배달의민족, 요기요는 모두 국제기준인 ISO 20488을 반영한 리뷰 정책을 도입하여 악성 리뷰에 대한 합리적 대응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 계약 관련 내용은 2020년 7월 시행된 EU '온라인 플랫폼 시장의 공정성 및 투명성 강화를 위한 EU 이사회규칙' 이나 2020년 9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예고한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상 규정과 유사하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자동화된 서비스의 노출 기준을 공개하도록 함으로써 배달앱 내에서 검색, 추천 결과의 투명성 제고에 기여할 것이다. 다만, EU 기준의 경우 상품 노출순위를 결정짓는 주요 변수 외에도 변수 간 상대적 중요도, 경제적 대가가 순위 결정에 미치는 영향도 약관에 명시하도록 한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플랫폼 사업자의 부담을 경감한 조치이다. 한편, 소비자와 입점업체 간 분쟁이 계속되는 악성 리뷰에 대한 정책을 마련하기로 한 것도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된다. 다만, 리뷰가 소비자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의 입장도 충분히 반영된 정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배달 플랫폼과 입점업체 간 분쟁처리 절차 개선을 위해 가칭 ‘배달 플랫폼 자율분쟁조정협의회’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또한, 배달 플랫폼 사업자는 입점업체가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 접수일로부터 3영업일 내에 처리결과를 신속하게 회신하기로 하였다.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에도 온라인플랫폼 분야에 특화된 분쟁조정 협의회를 설치하도록 한 바 있다.

셋째, 배달 플랫폼과입점업체 간 상생 및 입점업체 부담 완화 방안으로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는 지난 12월 시행한 포장주문 서비스 무료 지원 정책을 당초 3개월에서 1년간 연장하기로 했고, 요기요의 경우 입점업체의 원활한 자금 흐름을 위하여 대금정산 주기를 축소하기로 하였다. 땡겨요와 위메프오는 현재와 같은 낮은 수수료를 연내 계속 유지하기로 하였다.

이와 관련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에도 플랫폼 사업자와 입점업체 간 상생 협약 체결 권장 및 지원에 대한 근거조항을 두고 있다. 다만, 자율규제와 상생협력은 서로 차원을 달리 하는 문제인데, 이를 자율규제안에 포함시키는 것은 사업자의 영업의 자유에 대한 침해 여지가 있다.

그 외에도 자율규제안의 실효적인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 플랫폼 자율기구 갑을 분과를 통한 자율규제 방안 이행상황을 점검한 결과 미이행한 사항이 있는 경우 1차로 경고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정되지 않는 경우에는 미이행 내용을 대외적으로 공표하기로 하였다. 이 내용은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 상 이행 강제수단인 과징금, 과태료나 동의의결제와는 다르게 상당히 실행력이 약화되어 있으나, 이는 자율규제의 속성상 불가피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번 자율규제 방안은 그동안 플랫폼 사업자와 입점업체 간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과도한 수수료, 불투명한 상품 노출기준, 입점업체 상품을 구매한 고객의 정보 비공유, 수집된 정보를 부당하게 이용한 플랫폼 사업자의 PB상품 개발, 판매과정에서 발생한 손해의 입점업체 일방적인 전가 등의 문제를 망라한 것은 아니지만, 가능한 범위 내에서 민간과 정부의 중재 하에 참여 사업자 간 합의를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실 수수료 등 가격의 조정, 데이터라는 자산의 공유, 손해배상 책임 등 비즈니스나 법적인 한계가 명확한 이슈를 자율규제의 대상으로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자율규제는 말 그대로 국가가 주체가 되고 사업자가 객체가 되는 타율적인 법적 규제를 대신하여 피규제자인 사업자가 스스로 자신들의 행위에 일정한 한계와 기준을 도입하고 이를 실행함으로써 법적 규제가 있는 것과 유사한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다. 배달앱 분야 자율규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함으로써 법적 규제가 다시 길을 비켜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도록 보다 세심한 후속 작업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정부는 배달 플랫폼 외에도 오픈마켓, 숙박앱에 대해서도 자율규제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며, 플랫폼 자율기구 분과 중 하나인 데이터, AI 분과에서도 인공지능을 이용한 검색, 추천서비스 기준 논의가 상당 부분 진행되었다. 다만, 국회를 중심으로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법적 규제도 준비 중이어서 기업으로서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정책의 일관성, 신뢰성을 차원에서 자율규제 실험의 성공 여부를 당분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다.

ejju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