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X 사태, 심층분석]④국내 거래소는 안전하다?…체면 차린 '특금법'
고객 자산 분리 보관…'파산 거래소'에 자금 묶일 가능성 희박
'거래소 토큰'도 일찌감치 금지…"FTT 같은 사례 나오기 힘들다"
- 박현영 기자, 박소은 기자
(서울=뉴스1) 박현영 박소은 기자 = 글로벌 3대 가상자산 거래소 FTX가 한순간에 몰락하면서 국내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이 재조명되고 있다.
특금법 규제가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고객 자산과 거래소 자산을 분리 보관하도록 강제함으로써 '코인런'을 방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FTX가 자체 거래소 토큰 FTT로 몰락한 만큼, '거래소 토큰'을 애초에 금지해둔 특금법 조항에 대한 시각도 긍정적으로 바뀌는 모양새다.
◇고객 돈-거래소 돈 분리 보관…거래소 파산해도 고객은 돈 챙겨
지난 11일(현지시간) FTX는 미국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파산 신청 이전부터 FTX는 고객의 가상자산 출금을 막았다. 이후 거래소가 결국 파산에 이르면서 자금을 출금하지 못한 이용자들은 FTX에 돈이 묶인 상태다.
미국에서는 은행이 파산할 경우 고객 예금은 보호받을 수 있게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지원한다. 그러나 가상자산 거래소는 예외다. 은행과 달리 가상자산 관련 기업은 안전장치가 없어 FTX 이용자들의 자산이 안전할지는 미지수다.
샘 뱅크먼 프리드(Sam Bankman-Fried) FTX 전 최고경영자(CEO)도 지난 7일 트위터를 통해 "FTX 고객 자산은 안전하다"고 밝혔지만, 지난 9일 해당 트윗을 삭제했다. 이에 이용자들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국내 거래소라면 이같은 사태가 일어날까.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내에서 영업하기 위해선 고객 자산과 거래소 자산을 분리해서 보관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래소가 파산한다고 하더라도 분리돼 보관 중이던 고객 자산만큼은 밖으로 빼낼 수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건 개정 특금법이다. 국내 금융당국은 지난해 3월부터 개정 특금법을 도입, 가상자산 거래소 등 가상자산사업자를 규제하고 있다.
특금법에 따르면 국내에서 원화와 가상자산 간 거래를 지원하는 거래소는 은행으로부터 실명확인입출금계정(실명계좌)을 획득해야 한다. 이 때 특금법 시행령은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획득하기 위해선 고객의 자산과 거래소의 자산을 분리 보관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발급받도록 하는 조항은 가상자산 산업에 대한 평가를 기존 은행에 맡기는 것이라 불합리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번 FTX 사태를 계기로 위기 상황에선 '코인런' 가능성을 낮추는 조항으로 작용할 수 있어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투자자들의 자금이 묶여있는 상태에서 거래소가 파산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현재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 등 5대 거래소는 모두 고객 자산과 거래소 자산을 분리 보관하고 있다. 원화 예치금은 실명계좌 발급 은행이 보관하고, 가상자산의 경우 고객의 가상자산 대부분을 '콜드월렛(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오프라인 지갑)'에 보관함으로써 해킹 위험도 차단한다.
빗썸 관계자는 "고객 자산과 거래소 자산을 분리 보관하는 것은 물론, 고객 자산은 90% 가량 콜드월렛에 보관한다"며 "콜드월렛에 70% 정도 보관하는 것이 권고 기준인데, 그 이상인 90% 가량을 보관 중"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분리 보관 여부는 은행과 금융당국이 거래소에 대한 실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확인한다.
금융당국도 이런 점을 내세워 국내에선 '코인런' 발생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국내 거래소의 고객 예치금은 별도 보관하고 있어서 문제가 없다"며 "특금법이 의외의 곳에서 힘을 내고 있다"고 자신했다.
더불어 국내 거래소들은 재무제표 공개 시 보유 중인 고객 자산을 공개하도록 규제받고 있다. 이 점도 '코인런' 리스크를 낮추는 데 일조하고 있다.
김세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FTX 파산으로 코인 거래소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이 커지자 거래소들이 실제 보유한 코인 및 자산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며 "국내 거래소들은 분기 혹은 반기마다 외부 감사를 받고 해당 내용을 공시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다"고 분석했다.
◇FTX 몰락시킨 FTT…국내는 '거래소 토큰'도 일찌감치 금지
이와 더불어 '거래소 토큰'을 금지해둔 국내 특금법 조항도 재평가 받고 있다. FTX가 자체 거래소 토큰 FTT로 몰락했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자오창펑(Zhao Changpeng) 바이낸스 CEO가 FTT를 전량 매도한다는 트윗을 올리면서 FTT 가격은 폭락하기 시작했다. 일주일도 채 안 되는 기간에 90% 이상 폭락했고, 이는 FTX가 5일 만에 파산에 이르는 결과를 초래했다.
FTX는 FTT를 통해 레버리지를 발생시키고, FTX 관계사 알라메다리서치는 FTT 평가가치를 담보로 다양한 트레이딩(거래) 전략을 구사했다. 이처럼 FTX는 FTT에 과도하게 의존, 담보 자산이었던 FTT가 흔들리자 FTX 그룹사 전체도 몰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거래소 토큰이 금지된 국내에선 이 같은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국내 금융당국은 지난해 특금법 개정을 통해 '가상자산사업자(거래소 등)가 자체 발행한 가상자산의 매매 및 교환을 중개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이른바 '거래소 토큰'을 금지하는 조항이다.
국내에서 이 같은 조항이 일찌감치 도입된 데는 '코인제스트'의 영향이 컸다. 지난 2018년 한 때 업비트도 앞지른 바 있는 국내 거래소 코인제스트는 자체 발행 토큰 '코즈(COZ)'로 결국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당시 코인제스트는 사용자들이 낸 수수료를 자체 거래소 토큰으로 돌려주고, 거래소 수익의 일부를 해당 토큰 보유량에 따라 사용자들에게 배당하는 '채굴형 거래소' 사업으로 인기를 모았다. 이 채굴형 거래소 사업 모델은 한계가 있다. 사용자가 거래를 할수록 매일 새로운 토큰이 채굴되므로 토큰의 공급량은 꾸준히 증가하는데,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토큰 가격이 떨어진다.
코즈 역시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아 가격이 꾸준히 떨어졌다. 결국 코인제스트는 몰락했고, 당시 코인제스트가 원화 예치금을 포함한 투자자 자금을 출금해주지 않아 이용자들은 거래소에 자금이 묶여야 했다. 이 같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국내에선 거래소 토큰이 금지됐다.
이후 해외에선 바이낸스코인(BNB), FTT처럼 다양한 사용처를 통해 수요를 창출하는 거래소 토큰들이 나오면서 거래소 토큰은 재도약했다. 그러나 이번 FTT 사례로 거래소 토큰의 한계가 다시 한 번 부각됐다.
국내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거래소 토큰이 금지됐을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선 BNB 같은 코인이 나올 수 없으니 사업 모델이 또 줄었다는 부정적 평가가 많았다"면서도 "이번 FTX 사태로 거래소 토큰에 대한 불신이 높아져 오히려 특금법이 재평가받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hyun1@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편집자주 ...연초만해도 '코인계의 JP 모건', '코인계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며 전세계 가상자산 업계를 쥐락펴락하던 샘 뱅크먼-프리드가 이끄는 'FTX 제국'이 한순간에 몰락했다. 고작 서른살의 나이에 156억달러(20조원)에 달하던 그의 자산은 하루 아침에 휴지 조각이 됐다. 영국의 권위있는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과도한 레버리지△위험한 베팅 △ 부실한 담보가 원인이라고 짚었다. 전통적인 금융업에서도 늘 있어온 문제점들이다. 탐욕으로 얼룩진 FTX의 몰락은 지난 5월 테라·루나 사태에 이어 가상자산 업계의 신뢰도에 또 다시 치명타를 가했다. FTX 사태의 의미와 향방을 심도있게 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