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도 돈내며 쳐야하나요?…취준생 두번 울리는, '비대면 시험' 문턱
시험 환경 마련도 불상사 책임도 '취준생 몫'
"디지털 격차가 기회의 불평등 낳을 수도" 우려
- 권진영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제 친구는 시험 볼 때 노트북 사양이 안 돼서 다른 친구에게 기프티콘 주고 빌려왔대요. 저도 삼각대를 따로 구매했어요."
최근 비대면 필기 전형을 마친 취업준비생 강나윤씨(26·여)는 "(비대면) 시험 때문에 발생한 비용과 불편들이 오프라인으로 봤으면 생기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비합리적으로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장기화로 '비대면' 채용 전형이 더욱 확대되고 있지만 '디지털 격차' 문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기회의 불평등을 낳을 거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시험 공부에 환경 조성까지…사설 강의도 기승
4일 <뉴스1>의 취재를 종합하면 인공지능(AI) 면접을 비롯해 PT, 필기 등 비대면 전형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들은 적게는 하루 1만~2만원부터 많게는 7만원까지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대면 채용 전형을 치를 스터디룸 대여에도 비용이 든다.
손모씨(26·남)는 "자기 소개 영상을 찍어야 했는데 자취를 하다보니 배경이 깔끔한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카페는 소음이 섞일 것 같아 밀폐된 스터디룸을 고르게 됐다"고 장소 대여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손모씨는 "3만~4만원 정도를 썼는데 하루 생활비에 꽉 차거나 조금 넘기도 하는 금액이었다"며 "부담되는 금액이었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고 미래를 위한 투자라 합리화하고 썼다"고 당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웹캠과 장소대여를 비롯해 5만원 이상을 비대면 채용 전형에 쓴 오모씨(25·남)도 "일부 기업에서는 면접비를 지원해주거나 면접 전형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데 비대면은 오롯이 응시자에게 비용 부담이 돌아간다"고 기업측의 비용 전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오프라인 면접에 참여하면 면접비라도 받지만 비대면 채용 전형은 기업이 면접자에게 시설이나 부대 비용을 따로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낯선' 비대면 전형을 준비해야 하는 취준생의 불안을 이용한 상술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강남에서 AI면접 대비반을 운영하는 한 사교육 업체에 문의한 결과 회당 수업료는 20만원에 달했다. 이 업체는 최소 5회 수강할 것을 권했다.
AI 면접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업체의 담당자는 "AI 기술 업체도 딥러닝 기술을 활용한 AI를 공략할 수 없다"며 "부지기수로 생겨나는 AI 면접 대비 업체들에서 가르치는 밝은 목소리 톤과 시선 고정 등은 이제 평가를 좌우하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취준생 한 명이 한 시즌에 최소 5개의 회사에 지원해 비대면 전형을 응시한다고 쳤을 때, 공간 대여료(평균 4만원으로 가정)에만 20만원 가까이 드는 것이다. 여기에 수업까지 수강하면 지출은 최대 120만원으로 늘어난다.
◇전형 규정 숙지 못하면 '응시자 책임'이라는 기업
올해 중앙그룹 공채에 지원한 A씨(26·여)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총 44페이지 짜리 가이드라인을 받았는데 다 익히느라 너무 힘들었다"며 "시험 외적인 장소 대여, 가이드라인, 점심시간도 없는 시간분배에 체력 소모가 너무 심했다"고 토로했다.
A씨는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기계 2개를 설치해야 했는데 조금만 잘못 했다가 부정 행위로 걸리면 문제 아니냐"며 "기업측이 비용부담 절감하려고 많은 책임을 우리에게 돌린 것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고 꼬집었다.
언론사 지망생들이 다수 모이는 다음의 한 카페 커뮤니티에는 중앙그룹의 비대면 채용 매뉴얼을 두고 "대면 시험 하나 피하려고 수험생들한테 도대체 어디까지 요구할 생각인가요?"라는 비판 글이 올라왔다.
실제로 뉴스1 취재진이 입수한 중앙그룹의 온라인 적성검사 응시자 매뉴얼에 따르면 '매뉴얼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았거나 준수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나 그로 인한 불이익에 관한 책임은 1차적으로 응시자 본인에게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매뉴얼은 '문제가 발생해 검사 진행에 지장이 초래될 경우'에 대한 구제 조항을 포함하고 있으나, '응시자가 매뉴얼의 내용을 미숙지하거나 준수하지 않은 정황이 없어야 한다'는 등의 조건을 달고 있어 결국 모든 돌발 상황에 대한 책임은 응시자가 부담하거나 증명해야 할 요소가 됐다.
취재진이 중앙그룹 측에 내년에도 비대면 전형을 유지할 것인지 문의하자 인사팀 관계자는 "앞으로도 이렇게 하겠다는 계획은 따로 없다"며 "공식적인 답변을 드리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취준생 위한 사회적 지원 넓혀야"
공인 성적, 자기소개서, PT, 면접과 같은 채용 공부에만 매진하기도 바쁜 취준생들이 환경 마련에 대한 부담은 덜 수 있도록 더 많은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업계 목소리가 나온다.
김동욱 사람인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는 "화상면접 같은 부담을 경감시켜주는 기업이 많지는 않고 지자체나 고용당국, 대학 등에서 공간을 제공하는 움직임이 있다"며 "사회적으로 취준생들을 더 지원해줄 수 있는 방안을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앞서 지난해 10월 '취업준비생 애로 경감방안'을 발표하고 AI 면접 체험·화상면접 공간을 제공하는 등의 지원 방침을 밝혔다. 해당 방안에서는 올해 6개 권역별로 화상면접에 필요한 장비를 갖춘 센터를 신설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현재 '온라인 청년 센터'에 접속하면 AI 면접 지원 장소는 세종을 제외한 16개 지자체에, 비대면 면접 장소는 강원, 세종, 인천, 충남을 제외한 13개 지자체에 설치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가정의 지원 정도에 따라 기회의 불평등을 낳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가 지적한 기회의 불평등은 디지털 격차를 의미한다.
업계에서는 비대면 채용 전형이 확산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AI 면접 프로그램 제공 업체 담당자는 "지난해 대비 AI 면접을 의뢰한 회사가 2배 가량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이 교수는 "디지털 격차라는 것은 디지털 기기 활용 능력뿐만이 아닌 활용할 수 있는 조건을 포함시켜 이야기해야 한다"며 "대기업의 경우라도 지원자들에게 응시 환경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고, 졸업생의 경우에는 사회에서 동네 센터들을 활용하도록 시설을 갖춰주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realk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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