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엽의 IT프리즘]OTT 콘텐츠 독점과 소비자 선택권

(서울=뉴스1)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 센터장 = 일정 기간마다 비용을 내고 원하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제활동을 의미하는 소위 구독경제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소비자는 목돈이 없어도 일정 기간마다 비용을 나눠 낼 수 있는 장점이 있고 기업은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하여 안정적인 매출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소비자는 많은 구독서비스와 커진 요금 지출에 부담을 느끼고 있고, 기업도 과당 경쟁 등으로 수익성에 대한 고민이 늘고 있다.

특히, 대표적인 구독서비스인 OTT는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에 돌입하고 있다. 넷플릭스 외에도 디즈니, 애플,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이 시장에 진입했고 티빙, 왓챠, 웨이브, 쿠팡 등 국내 OTT들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경쟁 과열로 선택지가 많아진 소비자를 붙잡기 위해 기업은 최근 들어 오리지널 콘텐츠에 승부를 걸고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은 인기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보기 위해서 여러 OTT에 중복 가입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에 계정 공유로 소비자의 요금 부담을 덜어주는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페이센스라는 회사가 대표적인데 이 회사는 OTT 구독권을 나누어 ‘1일 이용권’을 판매하고 있다. 이에 웨이브·티빙·왓챠 등 국내 OTT 3사는 지난 7월 1일 서울중앙지법에 이용권의 타인 양도 및 영리 활동을 금지한 약관을 위반했다는 등의 이유로 페이센스에 대한 서비스 중단 가처분을 신청했으나, 페이센스가 1일 이용권 판매를 중단하면서 이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이처럼 이제 OTT의 독점적 콘텐츠 수급 전략이 일반화되면서 기준 유료방송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일부 인기 영화의 경우 극장 상영 후 OTT가 독점 방영하면서 IPTV나 케이블, 위성방송에서는 볼 수 없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막대한 콘텐츠 수급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OTT 업체와 달리 그렇지 못한 유료방송 플랫폼은 경쟁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OTT가 콘텐츠 경쟁을 통해 선택권을 늘려줄 거라고 기대했지만, 정반대의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이런 콘텐츠 독점 문제를 고민해왔던 방송규제는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동등접근, 보편적 시청권 보장이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미국의 프로그램 접근 규칙(Program Access Rule; PAR)은 시청자들의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성과 시청권의 보장, 다채널유료방송 시장에서의 사업자들 간의 공정경쟁의 촉진을 목적으로 하여 배타적 프로그램 공급, 부당한 영향력 행사 및 가격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EU의 보편적 접근 규칙(Universal Access Rule: UAR)은 국민적 관심이 높은 스포츠 경기나 이벤트에 관한 중계방송프로그램을 대상으로 배타적 방송계약을 금지하는 프로그램 목록을 작성한 후 시행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우리 방송법과 IPTV법에도 유사한 규정이 도입되었다. 방송법 제76조 방송프로그램의 공급 및 보편적 시청권 조항 제1항에서 방송사업자는 다른 방송사업자에게 방송프로그램을 공급할 때에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시장가격으로 차별없이 제공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2항 및 제3항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는 보편적시청권보장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민적 관심이 매우 큰 체육경기대회 그 밖의 주요 행사를 “국민관심행사 등”으로 고시하고 이에 대한 중계방송권자 또는 그 대리인은 일반 국민이 이를 시청할 수 있도록 중계방송권을 다른 방송사업자에게도 공정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차별 없이 제공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IPTV법 제20조 콘텐츠 동등접근 조항은 등록하거나 승인을 받은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 콘텐츠사업자가 제공하는 방송프로그램 중 방송통신위원회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고시한 “주요방송프로그램”을 일반 국민이 시청할 수 있도록 다른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 제공사업자에게도 공정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차별 없이 제공하여야 하며 주요방송프로그램의 계약 행위 등에 있어 시청자의 이익 및 공정거래질서를 저해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방송법은 국민관심행사, IPTV법은 주요방송프로그램에 대한 다른 방송사업자와 시청자의 접근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데, 주로 특정한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의 접근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은 미국보다는 EU식 접근에 가깝다. 결국 동동접근권의 목적은 경쟁의 활성화와 소비자보호이다. 즉, 플랫폼, 콘텐츠 사업자간의 수직결합과 이로 인한 배타적 거래 때문에 신규 플랫사업자나 소비자의 콘텐츠 접근이 제한되거나 통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 방송플랫폼의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콘텐츠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으며 콘텐츠를 둘러싼 경쟁제한행위의 가능성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OTT의 경우에도 그런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원칙적으로 OTT 콘텐츠 수급에 관한 문제는 당사자 간의 계약으로 사적 자치의 영역이다. 게다가 OTT의 경우는 아직 방송사업자가 아닌 부가통신사업자 지위를 가지고 있어 콘텐츠 동등접근에 관한 규제도 받지 않는다. 다만, 시청자의 선호도가 높은 프리미엄 영상 콘텐츠를 시청자가 보다 수월하게 접근하도록 하는 논의를 시작할 필요는 있다.

물론 이 문제는 OTT의 유료방송 대체성 여부, OTT 사업자의 법적 지위 등을 포함해 OTT의 방송미디어규제 제도에서의 위상에 대한 결정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이제 OTT 독점 콘텐츠가 시장에서 경쟁상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물론 시청자의 선택권도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청자가 어떤 방송플랫폼에서든 원하는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콘텐츠 동등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학문적, 정책적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2bric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