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엽의 IT프리즘]디지털 대전환과 통신사업 규제개편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서울=뉴스1)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 지난 한 해 블록체인, 가상자산, 메타버스, 디지털 플랫폼이 ICT 업계의 화두였다면 올해는 챗GPT 등 AI 패권경쟁을 둘러싼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글로벌 플랫폼 간 대결이 초미의 관심사다.

다만, 한국은 이와 더불어 통신요금 인하, 통신사업의 과점문제, 신규사업자 선정 등 통신사업 규제 이슈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이는 물가인상 등으로 인한 서민생활 안정 차원에서 비롯된 이슈이기는 하지만, 통신사업의 규제개편 이슈는 이미 네이버, 카카오 등 디지털 플랫폼 전성시대를 맞이하여 일찍이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전기통신사업법상 부가통신사업자 지위를 갖는 플랫폼사업자가 기간통신사업자인 통신사의 위상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에 그에 걸맞는 적절한 책임과 의무 부과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정부도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마련하여 의견수렴에 나서고 있다. 정부의 법 개정안은 크게 보면 기간통신과 부가통신 간의 균형 있는 규율 체계 마련을 위해 기간통신역무와 부가통신역무 구분 대신 전송역무와 정보역무 구분을 도입하고, 둘째, 디지털 서비스의 혁신과 공정의 조화를 위해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자율규제 기구의 근거를 마련한다. 셋째, 네트워크 투자 촉진을 위해 B2B 중심 서비스인 이음 5G 서비스의 이용약관 신고 의무 면제, 기간통신사업자의 통신기기 제조업 겸업승인 규제 폐지 등을 추진한다. 넷째, 국민의 디지털 접근권 향상 및 이용자 편익 제고를 위해 디지털 콘텐츠‧앱 등 진화하는 통신서비스에 대한 수요자의 소비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물론 재원조달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보편바우처 제도를 도입한다. 그 외에도 망 중립성 명문화, 도매제공 일몰제 폐지, 지방자치단체의 기간통신사업 허용, 네트워크 안정성 의무 강화 등이 논의되고 있다.

칼럼의 제목과 같은 질문을 챗GPT에게 했더니, 통신사업은 디지털 시대에도 우리 사회에서 사람과 기업을 연결시키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며, 통신사업 규제의 목표는 소비자 이익을 보호하는 가운데 경쟁과 혁신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필자도 같은 생각이다. 통신사업 규제의 목표는 경쟁을 활성화하고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은 물론 혁신을 조장하고 네트워크 인프라를 고도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의 내용을 평가해보면 어떨까. 우선 이해관계자들의 반응을 보면 기간통신사업자들은 망 중립성, 도매제공, 네트워크 안정성, 지자체의 통신사업 진출 등 여러 측면에서 규제가 강화되거나 시장을 잠식당할 우려가 생기면서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부가통신사업자인 플랫폼 사업자들은 총론적인 차원에서 플랫폼을 기간통신사업자와 같은 수준의 규제를 적용한다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본 법안을 준비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아닌 다른 통신사업 사후규제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사전규제가 강화되는 것에 우려를 표시하고 사후규제 중심으로 가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금번 개정안의 방향은 당초 법안의 문제의식이었던 기간통신사업과 부가통신사업의 균형보다는 기간통신사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자율규제기구의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플랫폼 사업자는 사실상 법적 규제 영역 밖에 존재하게 되면서 애초부터 균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정부는 경쟁 활성화 차원에서 다양한 규제와 정책을 준비 중이다. 도매제공제도의 강화, 최근 28GHz의 취소를 통해 확보된 주파수에 대한 신규사업자 선정,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통한 통신의 금융진출, 지자체의 통신사업 허용 등이 그것이다. 과점 상태인 통신시장의 경쟁을 활성화해서 요금과 품질 경쟁을 유도하는 정책 방향은 타당하나. 다만, 그 방법은 시장친화적일 필요가 있다. 과도한 시장개입으로 인해 일몰제를 도입한 도매제공을 영구화하거나 이미 민간 통신자원이 충분한 상황에서 지자체의 통신사업을 허용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혁신을 조장하기 위한 규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플랫폼에 대한 자율규제를 시행하고 자율규제기구의 근거, 기능, 정부와의 관계 설정 등의 최소한의 규제를 도입하겠다는 방향은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모빌리티 플랫폼의 배차기준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리는 등 정부 전체적으로 플랫폼 규제에 대한 입장이 명확하지 않은 것은 문제이다.

이용자 보호와 관련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존 통신서비스 위주에서 콘텐츠 플랫폼 등을 포함하는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접근권을 확대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이를 보편적 서비스 개념의 확대로 해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보편적 서비스 개념을 필요에 따라 확대 가능한 것으로 간주할 경우, 자의적 판단과 정치적 요구에 악용되면서 소모적 논쟁의 요인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통신규제 개편안은 이념이나 철학은 물론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다. 특히, 기간통신사업과 부가통신사업의 균형을 마련한다는 전제보다는 디지털 대전환과 대융합 시대에 적절한 통신, 플랫폼 서비스 재분류작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네트워크의 안정성,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 등 일부 규제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기간, 부가를 포함한 전제 통신사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경쟁을 활성화하고 혁신을 조장하되, 소비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규제는 적정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통신규제 개편이 논의되기를 바란다.

haezung221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