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결할 이유 있나요"…고환율에 '납품대금 연동제' 난망

[고환율 中企 강타]④부담 덜어줄 납품대금 연동제…현장 안착 더뎌
합의만 하면 미적용 가능…갑을관계 속 실효성 한계

중소벤처기업부·공정위 합동 납품대금 연동제 현장안착 간담회. 2023.9.11/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이정후 기자 = 달러·원 환율이 지난 27일 15년 9개월 만에 장중 1480원을 돌파하면서 원자재를 구매해 제조·공급하는 중소기업들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원자재 구입비가 오른 만큼 발주기업(위탁기업)에 가격 상승분이 적용된 청구서를 제시해야 하는데 거래 관계상 '을'인 중소기업이 '갑'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자재 가격의 등락에 따라 납품대금을 연동하는 '납품대금 연동제'가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제도 시행 1년이 지난 현재도 납품대금 연동제는 현장에 안착하지 못한 모습이다.

30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납품대금 연동제는 지난해 10월 4일 도입돼 연말까지 계도기간을 운영한 뒤 올해 1월 1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납품대금 연동제는 물품 제조에 쓰이는 주요 원재료 가격이 일정 기준(위탁기업과 수탁기업이 10% 이내의 범위에서 협의해 정한 비율) 이상 오르거나 내릴 경우 그 변동분만큼 납품대금을 조정할 수 있는 제도다.

사전에 환율 변동분을 적용하는 내용을 담아 계약을 맺었다면 최근처럼 환율이 크게 올라 원재료 구매 대금이 급등할 경우에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납품대금 연동제가 여전히 안착하지 못해 고환율로 인한 피해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남 창원시에서 주물 사업을 하는 A 씨는 "을의 입장인 중소기업이 납품대금 연동 계약을 체결하고 싶어도 갑의 입장인 상대방 기업에서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거래 기업에 잘못 보이면 다른 업체랑 계약하는 경우도 있어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A 씨는 "선철을 해외로부터 수입하는데 달러 가격이 올라가면서 영향을 받고 있다"며 "아직 즉각적인 영향은 없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환율 문제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스마트딜링룸 전광판에 표시된 원·달러환율이 1480원을 넘어서고 있다. 2024.12.27/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납품대금 연동제는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등 물품 제조를 발주하는 '위탁기업'과 이를 수행하는 '수탁기업'(중소기업)이 의무적으로 지켜야 한다.

다만 △1억 원 이하의 소액 계약 △90일 이내의 단기 계약 △위탁기업이 소기업인 경우 △수탁·위탁기업이 납품대금 연동을 하지 않기로 합의한 경우 해당 제도를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그중에서도 수탁기업과 위탁기업이 합의한 경우 적용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 사항이 납품대금 연동제의 현장 안착을 가로막고 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요구에 마지못해 합의하는 경우도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를 실제로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원재료 가격을 공유하기 때문에 마진율이 드러나고 이에 따라 가격 협상력이 약해져 납품대금 연동제를 적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납품대금 연동제의 현장 안착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중소기업중앙회 측은 "현장에서는 납품대금 연동제를 여전히 체결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지금처럼 고환율일 경우 납품 대금을 증액해야 할 수도 있는데 연동제 미적용으로 이를 미리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leej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