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올 스톱, 리스크 대응은 무방비" 환율 한파 맞은 中企

[고환율 中企 강타]①수출 효과 미미…원자재 수입 中企 타격
중소기업 10곳 중 3곳 "매출 피해"…"위안화로 바꿔 거래해도 쉽지않아"

편집자주 ...중소기업은 국내 전체 기업 비중의 99%, 고용의 80%, 기업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국내 경제의 '뿌리' 역할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흔들리면 위기는 전방위로 확산된다. 불행하게도 최근 국내 경제를 뒤흔드는 정치리스크와 환율 한파, 대외 불확실성은 중소기업을 강타하고 있다. 대기업에 비해 자금력이나 대응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은 정치리스크로 인해 환율 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생사기로에 놓인 중소기업의 현황을 긴급진단했다.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컨테이너들이 쌓여있다. 2024.6.11/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서울=뉴스1) 장도민 이민주 기자 = "환율이 오른 덕분에 당장 수출해서 얻는 이익이 늘어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제품 원재료가 다 중국하고 동남아시아, 중남미에서 오는데, 수입 가격이 문제입니다. 선적 날짜 기준 환율로 (가격이) 책정되기 때문에 싣지를 못하고 대기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계속 기다릴 수도 없어요. 창고비용도 환율에 따라 지급해야 하니까요."

인천에서 금속 및 화학 관련 제조업을 운영하는 A사 대표의 하소연이다. 비상계엄이 탄핵 정국으로 이어지면서 환율이 치솟자, 중소기업계가 시름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국내 전체 기업 비중의 99%, 고용의 80%, 기업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사실상 국내 경제의 '뿌리' 역할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흔들리면 위기는 전방위로 확산할 수 있다. 그럼에도 중소기업은 규모나 자금력이 대기업, 중견기업에 비해 떨어져 최근처럼 빠르게 고환율 국면에 직면하는 상황에 대응이 쉽지 않다.

외환당국과 국민연금의 긴급 진화 움직임, 외환보유고 4000억 달러 이상 보유, 양호한 대외건전성 등을 고려했을 때 원·달러 환율이 계속 치솟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현재 수준만 유지되더라도 중소기업에는 치명적이다.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스마트딜링룸 전광판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관련 뉴스와 함께 원·달러환율이 1480원을 넘어서고 있다. 2024.12.27/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1480원 뚫은 원·달러 환율에 중소기업 '속수무책'

지난 2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장 중 한때 1480원을 돌파했다. 금융위기였던 2009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달러·원 환율은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계엄 직후 1440원을 넘어선 뒤 1460원 선에서 등락하다가 결국 1480원까지 치솟았다. 금융권에선 환율이 1500원대까지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환율 급등은 수출과 중개무역이 주력인 대한민국 경제에 치명타를 안길 수 있다. 그런데 이 타격이 특히 심한 곳은 환헤지가 어려운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평소 환 변동에 대처할 수 있는 자금력이나 헤지방안을 충분히 보유해 두기 어려운 환경이다 보니 갑작스러운 고환율 상황에 대응하기가 어렵다. 원자재 수입이 많은 대기업 대부분은 보험 등으로 환율 변동 위험을 회피하지만, 자금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대다수의 중소기업은 리스크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국내 수출 중소기업 513곳을 조사한 결과 10곳 가운데 3곳이 '최근 국내외 상황으로 매출에 피해를 보고 있다'고 답했고, 그중 22%는 '고환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충남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B중소기업 대표는 "저희는 원자재 수급을 중국이나 베트남을 통해서 하고 있는데, 중국은 달러로 수출하면 비과세"라며 "달러로 계약하고 있는데 환율이 너무 올라서 걱정이다. 거래처에 말해서 위안화 거래로 바꾸고 있지만, 이것도 오르고 있어 대응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어 "원자재는 매달 들어온다. 한 달에 두세 번씩도 들어오는데 대금은 받을 때 가격으로 치르고 있다"라며 "대다수 중소기업은 환율 상황에 따라 갑자기 수입량을 줄이기도 어렵다.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27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 위치한 환전소 전광판에 외화당 팔 때 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장중 한때 1486.6원을 기록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5년 9개월 만에 1485원을 넘었다. 2024.12.27/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외환당국 긴급진화 나섰지만 역부족…"수출기업은 팔아도 남는 것 없어"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지난 9월 발표한 '중소기업 환율 리스크 분석 연구'에 따르면 중소기업은 환율이 1% 오를 때 손해가 약 0.36% 증가하며, 이들 기업의 환차손 비중은 영업이익의 25%에 달한다.

갑작스러운 고환율이 중소기업의 재무상황에 악영향을 주면서 정부와 금융권도 구원투수를 자처하고 나섰으나 역부족이다.

현재 중소벤처기업부는 고환율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을 위해 긴급경영안정자금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원영 중기부 글로벌성장정책관은 지난 26일 '2025년 소상공인·중소기업 정책금융 공급 계획'을 발표하면서 지금 고환율로 고통받는 중소기업이 많다"면서 "긴급경안자금 사용요건에 '고환율로 인한 피해'도 포함돼 있어 확대 편성해 놓은 게 마침 그쪽에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은행권에서 고환율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을 돕기 위해 수입기업들이 주로 이용하는 신용장에 대해 만기 연장 및 결제 자금 지원, 긴급 금리 인하, 보증금 인하 등의 대안을 내놓고 있으나 역부족인 상황이다.

특히 외환당국이 환율시장에 개입하고 국민연금이 환헤지로 소방수 역할을 하고 있으나 추세 자체는 바꾸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국내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중소기업계에서도 "남는 것이 없다"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지난 23일 한덕수 권한대행을 만난 자리에서 "환율 상승으로 수출 중소기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라며 "제품을 팔아도 원자재와 부품값 상승으로 적자가 발생하거나 간신히 수지를 맞추는 실정이다. 중소기업들이 부품을 중국 등에서 수입하는 경우가 많아 환율 급등이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언급했다.

김 회장은 지난 26일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중소기업은 지난 11월까지 수출(실적)이 좋아서 일본만 꺾으면 5위로 오를 뻔했는데 12월 들어 계엄 이후 상당 부분 수출이 취소되거나 여러 가지 안 좋은 사안들에 대한 뉴스가 있는 것 같다"라며 "대외 신인도가 급락하며 (원·달러) 환율도 1400원을 넘고 수출 환경이 안 좋아졌다. 통상 수입 원자재를 6개월 유산스(기한부어음)로 들여오는데 1400원에 결제해야 하니 수출을 해도 적자인 상황"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jd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