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용품점까지 뚫린 온누리상품권…온라인 불법현금화도 횡행

전통시장 살린다는 온누리상품권, 미가맹점포서 무분별 유통
"박스 현금 5천장" 불법현금화 성행…지류 발행 4천억 늘린 정부

설 명절을 앞두고 10일 오전 대구은행 중구청 지점에서 열린 '전통시장 온누리상품권 구매 촉진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구매한 상품권을 펼쳐 보이고 있다. 2023.1.10/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서울=뉴스1) 장시온 기자 =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발행하는 온누리상품권이 성인용품점 등 가맹점이 아닌 곳에서 무분별하게 유통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오늘의 시세'까지 광고하며 불법 현금화가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 이같은 미가맹점포 및 가맹제한 업종의 상품권 수취는 부정유통 신고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유통 대부분이 '지류형'(종이 상품권)을 통해 이뤄지고 있지만 정부는 지류 발행금액을 2년 새 4000억 원 늘렸다. 2019년 2조 원 수준이던 전체 발행금액은 내년 5조 5000억 원으로 3배 가까이 증가하면서 정부가 무리하게 발행을 늘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인용품점도 뚫린 온누리상품권…신고 60%가 '미가맹점 수취'

25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시내 상점 중 업종 제한 등의 이유로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이 아닌 곳에서도 대부분 온누리상품권으로 결제가 가능했다. 성인용품점부터 다방, 금은방, 전자기기 판매점 등 업종을 가리지 않았다.

서울 종로3가역 인근의 한 성인용품점은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이 아니지만 상품권 결제가 가능했다. 60대 여사장은 "물건을 파는 대가로 상품권을 받는 게 문제가 되나"라며 "가맹점은 아니지만 근처 가게들 다 알음알음 받는다"고 했다. 성인용품점은 전통시장특별법상 가맹제한 업종이다.

20일 오후 서울 종로3가역 인근의 한 성인용품점. 이 근방의 상점 수십 곳이 온누리상품권 미가맹점인데도 상품권 결제가 가능했다. 2024.11.20 ⓒ 뉴스1 장시온 기자

인근의 다른 상점들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종로구의 한 다방에서 일하는 중국 교포 A 씨는 "온누리상품권 들고 오는 손님은 다 받는다"고 했고 인근의 한 금은방도 "액수가 크면 받아준다"고 했다. 낙원상가 초입의 한 전자기기 판매점은 "지난주에만 3~4명이 온누리상품권을 가져왔다"며 "많이 사가면 상인들도 다 받아준다"고 했다. 다방이나 금은방은 전통시장 내에 있다면 가맹이 가능한 업종이지만 <뉴스1>이 찾은 매장은 가맹등록이 되지 않은 '미가맹업장'이었다.

이같은 미가맹점과 가맹제한 업종의 상품권 수취는 신고가 들어오는 부정유통 유형의 60%가 넘는다. 오세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온누리상품권 부정유통 신고센터에 접수된 신고 782건 중 '미가맹점포 상품권 수취'가 359건으로 가장 많았다. '등록 제한업종 영위'가 134건으로 뒤를 이었다. 올해에는 지금까지 200건이 넘는 신고가 들어왔다.

'오늘의 시세'까지 올려둔 현금화 업체…"박스에 현금 담아 준다"

미가맹점은 가맹점과 달리 온누리상품권을 상인회나 은행 등에서 환전받을 수 없어 상인들은 개인적으로 사용하거나 현금화하는 식으로 법망을 피해 간다. 단속이 느슨해진 틈을 타 온오프라인에는 불법 현금화 업체가 활개 치고 있다.

한 상품권 판매 사이트는 사업자 등록까지 내고 '오늘의 상품권 시세'라며 온누리상품권 금액별 액면가와 매입가, 판매가를 올려뒀다. 22일 기준 시세는 3억 원 상당 상품권 기준 매입가 2억 9325만 원이었다. 금액대는 5000원부터 억대까지 다양했다.

한 상품권 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온누리상품권 금액대별 매입·판매가 (온라인사이트 갈무리)

거래는 대면으로 이뤄진다. 직접 상품권 뭉치를 들고 사무실을 방문하면 박스당 최대 5000장을 담아 현금으로 바꿔주는 식이다. 업체 직원은 "10만 원이든 몇억 원이든 상품권만 가져오면 된다"며 "액수가 높을수록 수수료도 깎아준다"고 했다.

가맹 자격이 없는 곳에서 상품권이 유통되고 불법 현금화까지 성행하면서 전통시장을 살린다는 정책 취지가 옅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관계자는 "미가맹점 유통은 관련 데이터가 없어서 신고가 들어오는 곳만 계도 조치한다"며 "불법 현금화는 중고나라 등 대표적인 사이트 위주로 거래 금지 공문을 보냈다"고 했다.

지류 상품권 줄인다던 정부, 2년 새 4천억 늘렸다

이같은 부정유통은 대부분 지류형 상품권에서 발생한다. 카드형·모바일형과 달리 사용 기록이 남지 않아 단속을 피하기 쉽기 때문이다. 최근 논란이 된 대구 마늘가게 '63억 온누리 깡' 역시 지류형을 사용했다. 이에 정부는 "지류 발행을 줄이고 카드형·모바일형을 늘리겠다"고 강조해 왔다.

그런데 지류 발행금액은 오히려 2년 새 30% 늘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온누리상품권 지류 발행금액은 2023년 1조 2890억 원에서 올해 1조 4000억 원으로 늘었고, 내년에는 1조 7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전체 금액 중 지류 비율도 내년 30.9%로 올해보다 3%p 늘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실제 발행금액 기준으로는 지류 비율이 줄었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정부가 온누리상품권 발행을 무리해서 확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국회 산자중기위 소속인 한 위원은 예결소위에서 "5조라는 목표액을 채우기가 힘드니 병원이나 학원 같은 곳까지 사용처를 확대하는 것"이라며 "늘어난 발행액수와 한정된 수요 사이에서 부정유통이 발생한다"고 했다. 온누리상품권 발행금액은 2019년 2조 원에서 내년 5조 5000억 원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zionwkd@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