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기업 구조조정 미루다 부메랑…정책자금 손실도 '눈덩이'
올해 1월~9월 법인파산 신청 1444건…금융위기 이후 최고
늘어나는 좀비기업…중진공 정책자금 추정 손실 1.5조
- 이정후 기자
(서울=뉴스1) 이정후 기자 = 코로나19 이후 고물가·고금리·고환율(3고 현상)로 악화한 중소기업의 경영 환경이 역대 최대 규모 도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7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보다 훨씬 많은 법인파산 신청이 이뤄지고 있어 '선제적 구조조정'을 하지 못하고 그간 미뤄두기만 했던 '좀비기업'의 뇌관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우려가 나온다.
22일 대한민국 법원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접수된 법인파산 신청은 144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213건보다 19% 증가했다.
이는 해마다 작성하는 '대법원 사법연감'을 기준으로 했을 때 가장 높은 수치로 확인된다.
사법연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법인파산 신청 건수는 2002년 108건으로, 이후 관련 수치는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였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발생한 세계 금융 위기 당시에는 △2007년 132건 △2008년 191건 △2009년 226건으로 점차 증가세를 보이다가 2016년 740건까지 늘었다.
2017년에는 699건으로 다소 감소했으나 이듬해 다시 806건으로 증가했고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에는 1069건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1000건을 돌파했다.
지난해 법인파산 신청은 1657건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올해 월평균 법인파산 신청은 160건으로 현재 수치를 고려하면 연말 전체 파산신청 건수는 지난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기업의 부실한 체력은 한국은행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이 외부감사대상 비금융 영리법인 3만 2032곳을 조사해 지난 6월 발표한 '2023년 기업경영분석 결과'에 따르면,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기업은 전년 대비 5.5%포인트(p) 증가하며 40.1%를 차지했다.
이는 기업이 영업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조차 낼 수 없는 '한계기업'이 10곳 중 4곳이라는 뜻이다. 2013년 관련 통계 편제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코로나19 이후 지난 2년간 대출 금리가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금융 비용 부담이 증가한 게 원인으로 파악된다. 여기에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이어지면서 고물가·고환율 불확실성으로 국내 기업들의 경영 환경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중소기업 10개 중에서 9개 기업은 내수에 의지하고 있다"며 "여러 경제 지표는 내수 사정 여력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부실기업의 증가는 세금이 투입되는 정책자금 회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책자금을 지원받은 중소기업의 7.6%는 이미 폐업해 손실이 불가피해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허종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지난 8월까지 중진공의 정책자금 융자 지원을 받은 12만 392곳(직접대출 기준) 중 9157곳이 폐업했다. 이로 인한 추정 손실은 올해 2분기 기준 1조 5566억 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정상적으로 상환되지 못한 정책자금 비율인 '부실률'은 높아지고 이를 다시 회수하는 '회수율'은 낮아지고 있다.
중진공 정책자금의 부실률은 △2018년 3.78% △2019년 3.99% △2020년 3.88% △2021년 3.57% △2022년 2.73%를 기록하다가 지난해 처음으로 4.18%로 4%를 돌파했다.
반면 '회수율'은 △2018년 20.4% △2019년 17.2% △2020년 11.6% △2021년 12.6% △2022년 17.2% △2023년 10.1%로 지난해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법인파산이 증가할수록 정책자금에 대한 부실률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정책자금은 시중 은행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 기업에 대한 지원이 많기 때문에 그만큼 기초 체력이 약한 기업들은 파산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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