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기일 20일'에 영세 셀러 반색…"알리·테무만 노난다" 지적도(종합)

공정위, 정산기한 20일·판매대금 50% 관리 의무 방안 발표
벤처업계는 반발 "실태조사도 제대로 안돼…산업 위축 우려"

티몬·위메프(티메프) 피해자들로 구성된 검은우산비상대책위원회원들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구영배 큐텐 그룹 대표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청구 기각 결정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2024.10.17/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이정후 장시온 기자 = 제2의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를 막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규모유통업법' 개정 방안을 발표했다. 방안의 핵심은 온라인 중개거래 플랫폼 사업자의 판매 대금 정산 기한을 최대 20일로 지정하고 판매 대금의 50% 이상을 별도로 관리하도록 한 것이다.

티메프 사태로 피해를 봤던 입점 판매자(셀러)들은 정부 방안 중에서도 정산 기한 단축을 특히 반겼다. 반면 중소 플랫폼 사업자들은 유동성 악화로 인한 산업 위축을 우려했다. 해외에 거점을 둔 글로벌 플랫폼 기업과 국내 기업의 역차별 문제도 거론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8일 티메프 사태 재발을 원천 방지하기 위한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 방안을 발표했다. 개정 방안에 따르면 매출액 100억 원 혹은 거래규모 1000억 원 이상인 국내 온라인 중개거래 플랫폼은 '정산기한 최대 20일'과 '판매 대금 50% 별도 관리' 의무가 생긴다.

김동식 인터파크커머스 대표(왼쪽부터)와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 류화현 위메프 대표, 류광진 티몬 대표의 가면을 쓰고 수의를 입은 '티메프 사태' 피해자들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열린 '검은우산 집회'에 참가해 책임자들의 구속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정부에 실효성 있는 구제방안 마련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2024.8.30/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입점업체 "정산기한 강제하면 제2의 티메프 사태 사라질 것"

플랫폼 입점업체들은 이와 같은 공정위 발표를 반기는 분위기다. 정산기일을 법적으로 강제하면 자금난 해소에 도움이 되고 유사 사태 예방에도 실효성이 있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티메프 사태로 1억 2000만 원의 피해를 본 오리고기 도소매업자 이 모 씨(50)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말해주는 사람도 없고 믿을 사람도 없었는데 발표가 나와 반갑다"며 "길게는 3달까지 걸렸던 정산 기일이 애초에 비정상이었다"고 말했다.

정산 대금으로 1억 3900만 원을 받지 못한 수입농산물 유통업자 신 모 씨(55)도 "두 달씩 걸리던 정산기일을 '20일'로 정해주면 셀러 입장에선 일종의 '확신'이 생긴다"며 "자금난이 해소돼 선순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판매대금 별도 관리에 대해서도 "진작에 했으면 이런 일도 안 일어났겠다 싶다"며 "제3자가 판매대금을 관리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보험 같은 인상을 주니 안심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벤처업계 "산업 발전 위협…공정위 방안 반대"

반면 벤처·스타트업 업계는 이번 규제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했다. 이전에 없던 추가 규제로 인해 산업 발전이 위협을 받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벤처기업협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업계의 큰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대규모유통업법 개정 방안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협회는 "공정위는 관련 규제에 적용받는 대상을 30~40개 소수 업체로 추산하고 있지만 규제 여파는 그 수준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며 "중소 이커머스 기업은 규제의 잠재 대상으로 기업 성장의 한계로 작용하고 투자 자체도 제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판매대금 50% 별도 관리 방안은 유동성 악화를 유발해 중국 C커머스의 국내 진출로 어려움을 겪는 이커머스 업체들의 폐업을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법 적용 대상 선행조사는 돼 있나…C커머스 역습 우려"

벤처기업협회를 비롯한 다른 플랫폼 업계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무엇보다 법 적용을 받는 기업에 대해 실태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방안에 가깝다는 점을 우려했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획일화하기 어려운 플랫폼 산업에 일정한 기준을 적용하기보다 플랫폼 업체에 대한 실태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며 "티메프 사태 이후 플랫폼 업체 실태조사를 위한 연구용역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플랫폼 업체에 대한 선행조사 필요성은 티메프 피해자 단체도 비슷했다. 신정권 검은우산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우리나라 플랫폼 업계 현황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일방적인 정책을 발표하는 것을 공청회 때도 반대했었다"며 "정산기한 합리화를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무조건적인 규제는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로 대표되는 해외 플랫폼과 국내 기업과의 역차별 문제도 거론됐다. 해외에 본사를 둔 업체가 국내 법을 얼마나 지킬지, 그리고 위반했을 때 제재를 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다.

실제로 국내 업체들이 중국 플랫폼으로 다수 이동하고 있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 자영업자는 "지금 셀러들은 이미 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 플랫폼으로 이동해 매출 비중이 (중국 이커머스에서) 더 높은 곳도 생겨나고 있다"며 "티메프 사태로 우리나라 플랫폼 업계가 중국에 먹힐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국내 기업만 법을 지키는 역차별 우려가 있는 건 사실"이라며 "공정위는 해외 기업도 규제할 수 있다고 하지만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지난해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에 반대 의견을 낸 사례도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공정위는 이번 개정 방안을 공포 후 1년 유예해 시행할 방침이다. 법 적용 대상 사업자들이 대비할 수 있도록 정산기한은 40일→30일→20일, 별도관리 비율은 30%→50%로 점진적으로 개선할 계획이다.

leej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