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고쳤더니 활기"…소멸 위기 마을에 스타트업 들어가다
[퍼스트클럽]②빈집 재생 숙박 스타트업 남성준 다자요 대표
스타트업이 낯선 지자체…"창업에 대한 인식 바꿔야"
- 이정후 기자
"빈집은 철거의 대상이었어요. 그런데 숙소로 만드니까 어두웠던 동네가 밝아졌다고 하더라고요. 주민들이 많이 좋아해주셨죠."(남성준 다자요 대표)
(제주=뉴스1) 이정후 기자 = 지방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새로운 인구가 유입되지 않으면서 빈집이 증가하고 있다. 빈집이 하나둘 생길수록 마을의 분위기는 을씨년스러워지기 마련이다.
지방소멸의 대명사가 된 빈집을 활용해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이 있다. 늘어난 빈집 때문에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최전선에서 지역 경제에 힘을 보태고 있는 '다자요'가 그 주인공이다.
다자요는 빈집을 10년간 무상 임대해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하고 숙박업을 하는 스타트업이다. 계약 기간 종료 후에는 원래 집주인에게 고친 집을 돌려준다. 지방의 빈집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면서 규제 속에서도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 자격을 얻었다.
남 대표는 "다자요는 지방에 있는 많은 빈집을 활용해 멋진 스토리를 담은 좋은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방의 빈집 문제는 갈수록 심화하는 중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전체 주택 중 빈집의 비율은 7.9%다. 2015년 6.5% 대비 1.4%포인트(p) 증가한 수치다.
언뜻 보기에는 소폭 증가로 보이지만 이는 2015년 신도시였던 세종시의 빈집 비율(2015년 20.3%. 이후 2023년 8.5%로 낮아짐)이 높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에는 세종과 대전을 제외한 15개 광역자치단체에서 빈집 비율이 증가했다.
특히 제주도의 빈집 비율 증가 폭이 가장 컸다. 2015년 9.5%였던 제주도의 빈집 비율은 지난해 13.5%를 기록했다. 전남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빈집 비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자요는 지방소멸의 상징인 빈집을 기반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제주가 국내에서 여행 산업이 가장 발달한 지역인만큼 외부인은 꾸준히 들어올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그렇게 2018년 빈집을 리모델링한 첫 번째 숙소 운영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관심이 없던 주민들도 어두웠던 골목에 불이 들어오고, 여행을 온 외지인들로 마을이 활기를 되찾으면서 마음을 열었다.
"마을 분위기가 밝아지니까 동네 분들도 저희 사업을 좋아해 주셨죠. 앞집 차를 누군가가 긁고 가서 저희 숙소에 있는 CCTV로 뺑소니 사건을 해결한 적도 있어요. 시골 골목에는 CCTV가 없는데 저희가 역할을 대신 한 거죠."
이처럼 지방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다자요도 사업 초기에는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농어촌 민박 규제로 1년 넘게 사업이 중단된 게 가장 컸으나, 현실적으로는 지역 스타트업의 고질 적인 문제인 '자금 조달'과 '인재 부족'이 힘들었다.
서울에서는 강남만 가더라도 투자자와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는 '펀드' 심지어 '스타트업'이라는 개념조차 낯설어했다. 이와 같은 지역 창업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남 대표는 지방자치단체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자체들이 대기업 유치를 원하는 건 '한 방'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스타트업도 일자리 만들 수 있어요. 회사가 망하면 어떡하냐고요? 망하기 전까지 성실하게 월급 줬잖아요. 월급을 줄 수 있는 회사가 있다는 게 중요한 거예요. 배임이나 횡령으로 망한 게 아니라면 박수쳐 줘야죠."
청년과 창업이 취약 계층으로만 인식되는 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도와줘야 할 대상이라는 선입견이 생기는 순간 그 이상의 정책이 나오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청년과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지역에서도 혁신가가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개인이 돈을 벌려고 욕심부린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스타트업이라는 산업이 잘돼야 성공한 기업가가 나오고 지역 청년들에게도 롤모델이 생겨요. 지방에서는 여전히 공공기관 다니는 선배, 자영업 하는 사장님이 롤모델이잖아요."
빈집을 활용해 지방소멸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해결하고 있는 다자요는 남 대표의 말처럼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역할을 하고 있다. 대내외 여건상 인재 채용이 어려운 IT 전문 인력 부분을 지역의 또 다른 IT 기업과 협업해 해결하면서다.
기획력과 아이디어는 있지만 IT 기술력이 부족한 다자요와, IT 기술력은 보유했지만 사업화 역량이 부족한 지역 스타트업이 손을 잡은 형태로 협업에 대한 결과물은 수익을 공유한다.
숙박업을 하면서 필요한 청소·세탁·조경 등 관리 인력은 지역 주민들을 고용했다. 지금은 이들이 스스로 전문성을 키울 수 있도록 회사를 세우는 일을 돕고 있다. 지난해 지역주민을 고용해 창출한 금전적 효과만 7600만 원 규모다.
빈집 리모델링 숙소 매출의 1.5%는 해당 마을에 기부하고 있다. 지난해 6개 마을에 기부한 금액은 470만 원을 기록했다. 또 숙소에 비치된 음료나 식품은 제주 지역의 중소기업 제품으로 채웠다. 미약할 수 있지만 스타트업 하나가 빈집 문제, 지역 경제, 고용 효과까지 영향력을 발휘하는 셈이다.
"서울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방소멸은 먼 나라 이야기예요. 내 문제가 아니니까요. 정책적으로 지역 스타트업을 뒷받침해 줘야 합니다. '예산이 곧 의지'라는 말처럼 더 많은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leej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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