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산한 빈집, 제주 담은 고급숙박으로"…다자요의 혁신 분투기

[퍼스트클럽]①빈집 재생 숙박 스타트업 남성준 다자요 대표
빈집 리모델링해 공유 숙박…제주에서만 11채 운영

제주도 한경면 고산리에 있는 고산도들집. 제주 지역 스타트업 다자요가 빈집을 리모델링해 숙박업소로 운영하고 있다. 2024.10.11/=뉴스1 이정후 기자

(제주=뉴스1) 이정후 기자 = "집을 보려고 방에 들어섰는데 달력이 2003년 4월에 멈춰 있었어요. 20년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빈집이었죠. 제주도에는 이런 빈집이 1000채가 넘습니다."(남성준 다자요 대표)

제주도 서쪽 바다와 가까운 한경면 고산리에는 특별한 집이 있다. 밖에서 보면 돌담으로 둘러싸인 평범한 집이지만, 입구에 들어서면 넓은 마당과 고급스러운 단독주택이 눈앞에 나타난다. 제주도의 빈집을 고쳐 공유숙박으로 제공하는 스타트업 '다자요'가 운영하는 '고산도들집'이다.

다자요는 빈집을 집주인으로부터 10년간 무상으로 빌려 리모델링한 뒤 숙박업을 하는 제주 지역 스타트업이다. 계약 종료 후에는 원래 주인에게 집을 돌려준다. 지금까지 제주도 내 13채의 집을 리모델링해 2채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줬다. 현재 운영 중인 집은 11채다.

다자요의 9번째 집인 고산도들집은 1960년대에 지어진 주택이다. 자식들을 도시로 떠나보내고 노부부가 살던 집은 혼자 지내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빈집이 됐다.

"어느 지역이든 다 그렇잖아요. 자식들이 학교나 직장 때문에 더 큰 도시로 나갔다가 터를 잡으면 못 돌아오고, 그러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빈집이 되고요. 지방이 무너지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거죠."

다자요가 리모델링 하기 전의 고산도들집.(다자요 제공)

제주에서 나고 자란 청년…서울 경험하고 스타트업 대표 '다짐'

남 대표도 더 나은 직장을 찾기 위해 제주를 떠났던 '제주 사람'이다. 대학교까지 제주도에서 보낸 그는 취업을 위해 2000년대 초, 28살의 나이로 서울로 향했다.

정든 고향을 떠나 육지 사람이 된 남 대표는 은행 직원부터 이자카야 운영까지 다양한 일을 했다. 서울에서 지내는 동안 그는 '우버'로 출퇴근하며 플랫폼 산업의 가능성을 포착했다. 제주도로 돌아가 에어비앤비와 비슷한 '공유 숙박 중개 플랫폼'을 차리기로 결심한 것도 이때였다.

2015년 42살의 나이로 제주도에 돌아온 그는 그해 '다자요'를 창업했다. 당시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숙박업소는 300개 남짓이었는데 주변 지인을 통하면 훨씬 많은 숙박업소를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사업을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지나자 사업 자금이 모두 바닥나고 말았다.

"처음 창업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별거 아니구나' 하고 뛰어들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직원들 월급을 줘야 하니까 사업 방향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중개 수수료 조금씩 얻는 거 말고 직접 숙박업을 하는 방향으로요."

고산도들집 앞 남성준 다자요 대표. 2024.10.11/=뉴스1 이정후 기자

호응 일색 '빈집 프로젝트'…규제로 발목 잡혀

숙박업으로 사업 방향은 틀었지만 땅을 사거나 건물을 지을 돈이 없었다. 지역 스타트업에 투자할 투자자를 찾기도 어려웠다. 집을 고칠 비용 정도만 남았던 그는 공짜로 빌릴 집을 찾아야 했다. 그때 남 대표의 머릿속에 '빈집'이 스쳤다.

남 대표는 "빈집을 세련되게 고치면 외부는 고즈넉하고 내부는 편안한 공간이 된다"며 "때마침 현지 분위기를 그대로 즐기는 게 여행 트렌드가 되고 있었다. '제주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빈집이 적합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2017년 서귀포시 도순동에 있는 '도순돌담집'(현재는 원래 집주인에게 반환)이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이용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첫 번째 크라우드펀딩으로 2억 원을 조달했고 제주관광공사 제이스타트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급성장하던 다자요는 2019년 예상하지 못했던 복병에 발목을 잡혔다. 바로 '규제'다. 농어촌 민박의 경우 실제 집주인이 상주해야 하는데 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빈집 4채를 리모델링해 사업을 확장하던 때였다.

이후 2020년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 자격을 취득할 때까지 다자요의 사업은 1년 넘게 '올스톱'됐다. 숙박객을 받을 수도 없었고 집을 늘릴 수도 없었다.

다자요는 불특정다수가 아닌 회사의 주주들에게만 숙박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버텼다. 다자요의 사정을 들은 사람들이 추가 크라우드펀딩을 요청했고 3억 원이 모였다. 그렇게 350명의 주주이자 지원군이 생겼다.

영화배우 류승룡 씨도 주주로 참여했다.

고산도들집 내부 모습. 기존 집의 골조를 그대로 활용했다.(다자요 제공)

여전한 그레이존, 그사이 난립한 유사 모델

다자요가 2020년 10월에 취득한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 자격은 올해 1월에 2026년까지 2년 연장됐다. 50채로 제한됐던 실증 범위는 농촌소멸위험지역을 포함해 500채까지 확대됐다. 영업일수 300일 제한도 폐지됐다.

외적인 사업 환경은 좀 더 나아졌지만 불법과 합법의 사이에 있는 '그레이존' 속 스타트업이라는 사실은 여전하다. 만약 실증특례 연장이 중단된다면 다시 불법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그사이 다자요의 빈집 사업 모델은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델이 됐다. 빈집을 고쳐 '단기 숙박'이 아닌 '장기 임대' 등으로 운영하는 식이다. 다자요가 규제에 발목을 잡힌 사이 비슷한 사업이 여기저기서 진행됐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남 대표는 아이디어를 먼저 제안한 이들에 대해 존중과 혜택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온몸으로 규제와 맞서 싸우는 동안 비슷한 사업들이 난립하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남 대표는 "규제 샌드박스는 사이클 경기랑 똑같다. 맨 앞에 달리는 사람이 바람을 모두 막아주면 뒤에 있는 사람들은 편하게 달리는 것"이라며 "최초 정책 제안자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규제를 헤쳐 나가고 있는 다자요는 제주도 이외의 지역에서도 빈집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계획 중이다. 실제로 많은 지역에서 다자요에 먼저 손을 내밀고 있다. 일룸, 노루페인트(090350) 등 많은 기업들도 다자요의 뜻에 동참하며 가구와 페인트를 지원하고 있다.

"다자요의 역할은 지역 소멸을 막는 첫 번째 단추 같은 역할입니다. 이 마을을 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스킨십 단계죠. 나중에는 작은 타운도 만들어 볼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leej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