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기술 훔치면 개발비까지 다 물어낸다…처벌 강화"

양도판매비용에 개발투입비용까지 추가해 피해 산정
수·위탁 거래에만 의무였던 비밀유지계약…협상까지 확대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서울=뉴스1) 이정후 기자 =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기술을 탈취해 부당한 이익을 취한 기업이 있다면, 앞으로 천문학적인 배상 책임을 물게 될 수 있다.

그동안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기술을 빼앗기고도 '실질 손해액'을 입증해야 그나마 배상을 받을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손해액은 물론이고 기술 개발에 들어간 연구비용까지 모두 배상하도록 처벌 수위가 대폭 강화됐기 때문이다.

또 기업 간 거래 중 수·위탁 거래에서만 의무 사항인 비밀유지계약(NDA)도 협상 및 교섭 등 모든 양자 관계로 확대돼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기술 보호 사각지대가 사라질 전망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와 같은 내용이 담긴 '스타트업 혁신 기술 보호·구제 강화 방안'을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16일 발표했다. 중소기업기술보호법과 상생협력법 개정을 추진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기술 보호 제도를 정비하고 처벌 수위를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

솜방망이 처벌 수준 강화…'찔끔 배상' 문제도 해결

중소벤처기업부 스타트업 혁신 기술 보호‧구제 강화 방안 인프로그래픽(중소벤처기업부 제공)

중기부는 기술 탈취 행위가 발생할 경우 시정권고에 그치는 현행 행정조치 수준을 시정명령으로 강화하고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

지금까지 현장에서는 "행정조사를 하더라도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중소기업들은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어 왔다. 실제로 현행 시정권고 수준에서는 권고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기업 이름을 공표만 할 수 있을 뿐 추가 조치가 불가능한데, 이에 처벌을 강화하기로 했다.

중기부는 이와 함께 수·위탁 거래 및 대기업의 스타트업 기술탈취 등 중대한 법률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시정멸열과 별도로 금전적 제재 수단을 가할 수 있도록 방안을 검토할 방이다.

빼앗긴 기술력과 비교해 터무니없이 적었던 손해 배상 문제도 개선한다. 현재는 기술이 양도되거나 판매돼 실제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만 배상액 대상으로 인정됐지만, 앞으로는 시장에 공개되지 않은 신기술이더라도 기술개발에 투입된 비용까지 손해 비용으로 인정될 수 있도록 손해액 산정 기준을 개선한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 A사의 기술개발비가 2억 원이고 법원이 인정한 기술탈취 관련 손해액이 6000만 원일 경우, 현재로서는 6000만 원만 인정손해액에 해당하나 앞으로는 기술개발비까지 포함한 2억 6000만 원이 인정손해액으로 책정된다.

이와 함께 법원의 징벌적 손해배상액 산정 고려 사항에 비밀유지계약 체결 등에 따른 '비밀유지의무 위반 여부'를 가중 요소에 반영할 수 있도록 검토한다. 또 올해 1월 개정된 상생협력법에 따라 투자 협상 및 교섭 등 계약이전 단계에서 발생한 기술탈취 행위에 대해서는 최대 5배의 배상책임을 부과한다.

기술보호 사각지대 해소…법적 의무 범위 확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대한 기술보호 범위를 넓혀 사각지대도 최소화할 방침이다.

기존 법률에 따르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CCTV를 설치하거나 비밀 관리 인력을 별도로 두는 등 관련 노력을 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비밀 관리 요건'을 충족했다고 인정돼 구제받을 수 있었다.

중기부는 스타트업의 부족한 자금 상황 등을 고려해 이러한 비밀 관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피해를 입증할 근거가 있으면 지원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수·위탁 거래에서만 의무였던 비밀유지계약을 협상이나 교섭과 같은 모든 양자 관계로 확대한다. 기술은 반드시 서면으로만 요구하도록 하고 협상이 종료된 경우에는 기술을 반환하거나 폐기하도록 법적 의무를 강화할 방침이다. 또 기술자료를 보유한 임직원의 명단과 목적 외 사용금지 약정서를 기술한 '표준기술자료 요구서'도 마련한다.

부당한 제3자 기술제공 및 비밀유지계약 체결 등에 따른 비밀유지의무를 위반하는 사용·공개 행위도 중소기업 기술 침해 행위 유형에 신설한다.

김려흔 뉴려 대표이사가 지난해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참고인으로 출석, '지식기술 탈취'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2023.10.16/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스타트업 맞춤형 지원 강화…피해확산도 적극 방지

스타트업을 위한 맞춤형 지원도 강화한다. 대표적으로 기업들이 기술보호 프로그램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 기술보호 바우처' 예산을 올해 18억 원에서 내년 28억 원으로 확대했다.

특히 스타트업에 대해서는 일반 중소기업 대비 바우처 지원 한도를 1000만 원, 보조율은 10%포인트 확대한다.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전용 법률 자문 서비스를 신설하고 기술 분쟁 장기화에 따른 경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융자 및 보증 등의 정책자금도 우대 지원한다.

또 중소기업 기술보호 정책을 연구하고 조사 및 분쟁 조정을 지원하는 '중소기업기술보호원'(가칭) 신설을 위한 연구도 추진한다. 기능과 역할, 법적 근거 등 전담 기관 신설을 위한 연구용역은 내년에 추진할 방침이다. 일정 규모 이상으로 분쟁 조정이 증가하면 중소기업 기술분쟁 사건을 전담하는 조정원 설립 근거 마련도 검토한다.

이와 함께 스타트업의 핵심 기술을 분석하고 유사한 특허 출원을 모니터링하는 '핵심기술 모방 조기경보 서비스'를 도입하고 신고 없이도 착수할 수 있는 직권조사를 통해 시장 감시 기능을 강화할 방침이다. 변호사 등이 당사자 간 화해를 유도하는 알선 및 직권조정 절차도 신설한다.

오영주 중기부 장관은 "이번 대책을 통해 기존 법률이 보호하지 못했던 스타트업의 혁신 기술을 사각지대 없이 보호하고 기술개발 비용도 포함해 손해액을 현실화하는 만큼 기술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번 대책이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작동될 수 있도록 법 개정 등 필요한 사항들을 신속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내 스타트업은 혁신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등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약한 협상력과 법 제도의 미비로 기술 분쟁은 늘고 있다. 지난해 기술 탈취를 이유로 행정조사·조정을 신청한 스타트업은 전년 대비 167%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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