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해 하지마세요"…중기부, 벤처투자 인색한 연기금 '모시기' 나선다

중기부 조사 결과 연기금 68곳 중 6곳만 벤처투자…'9% 불과'
벤처, 위험자산으로 인식 …"안전장치 마련해 출자 유도해야"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3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빌딩에서 열린 '벤처캐피탈 업계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제공) 2024.9.30/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서울=뉴스1) 이정후 기자 = 중소벤처기업부가 내년부터 벤처투자조합 신규 출자자(LP)로 연기금을 '모시기' 위한 정책을 본격적으로 펼친다. 벤처투자에 소극적인 '큰 손' 연기금의 출자 규모가 확대될 경우 전반적인 벤처·스타트업 자금 조달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판단이다.

5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중기부는 지금까지 벤처투자조합에 참여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연기금, 금융사, 기관 투자자 등을 대상으로 한 'LP 첫걸음 펀드'를 내년 신설한다. 이와 같은 내용은 최근 발표한 '선진 벤처투자 시장 도약 방안'에 담겼다.

막대한 자금을 운용하는 국내 연기금은 벤처투자 시장에 출자자로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벤처투자'가 위험자산이라는 이유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기부에 따르면 미국이나 영국 등 벤처투자 선진국 등에서는 각국의 연기금이 벤처투자의 주요 참여 주체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68곳 중 6곳만 벤처투자조합에 참여 중이다.

이는 전체 연기금의 9%에 불과한 규모로 국민연금, 사학연금, 중소기업공제사업기금 등 대규모 연기금을 제외하고는 벤처투자조합에 출자한 경험이 전무하다.

국내 다수 연기금의 여유자금을 활용해 재간접펀드를 운영하고 있는 기획재정부의 '연기금투자풀' 역시 올해 8월 말 기준 총수탁고가 약 63조 원에 달하지만 이 중 벤처투자조합에 대한 출자는 전무하다.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호텔 나루 서울 엠갤러리에서 열린 스타트업 코리아 펀드 출범식에서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펀드 출범식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2024.4.24/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1987년 이후 청산 펀드 전수 조사…66%가 수익

대규모 자금을 움직이는 연기금이 벤처투자를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비상장 기업에 투자하는 벤처투자를 '위험자산'이라고 인식한 점을 꼽는다.

반면 중기부는 국내 벤처펀드가 고위험 투자라는 인식과 달리 검증된 투자처라고 설명한다.

중기부에 따르면 1987년 벤처투자조합 제도화 이후 올해 6월까지 청산된 1107개(16조 3000억 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전수 조사한 결과, 펀드 수 기준 66% 펀드가 수익을 기록했고 34%의 펀드가 손실을 기록했다.

수익률 0~20% 구간의 펀드가 51%로 가장 많았으며 30%를 초과한 펀드도 9%에 달했다. 손실률 -10%~0%에 해당하는 펀드는 21%로 집계됐다.

펀드 수가 아닌 펀드별 결성규모를 고려한 투자금 기준으로는 투자금의 73%가 수익을 창출했다.

지금까지 청산된 펀드들의 내부 수익률(IRR)은 8.7%로 나타났다. 이는 1995년부터 2023년까지 '국고채 5년물'의 수익률 5%와 '국고채 10년물'의 수익률 3.9%를 상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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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손실충당·풋옵션 등 강력한 인센티브 제공

벤처투자 시장에서 연기금의 역할을 기대하기 위해 출범하는 'LP 첫걸음 펀드'는 LP의 출자 금액만큼 모태펀드가 1대1로 매칭하는 구조로 이뤄진다. 중기부는 내년 사업 예산안으로 200억 원을 제출한 상태다.

모태펀드와 LP가 각각 200억 원씩 총 400억 원을 공동 조성할 경우, 일반적인 모태펀드 출자사업처럼 이를 운영할 벤처캐피탈은 40%의 자금을 다른 민간에서 조달한다. 이렇게 조성될 결성 목표액은 667억 원이 될 전망이다.

여기에 더해 중기부는 민간 주도 펀드인 '스타트업 코리아 펀드'와 비슷하게 벤처투자조합에 최초 출자하는 연기금에 대해 우선손실충당 인센티브를 제공할 방침이다.

우선손실충당 인센티브는 스타트업 코리아 펀드가 기준이 될 전망이다. 스타트업 코리아 펀드의 경우 민간 출자자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모태펀드가 펀드 결성액의 10% 이내로 민간출자자의 손실을 충당하고 있다.

중기부는 LP 첫걸음 펀드 역시 이와 같은 수준으로 구성하거나 더 강화된 혜택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태펀드 관련 사업 중에서는 처음으로 풋옵션 제도도 운영한다. 풋옵션은 연기금이 보유한 벤처투자조합 지분을 특정 시점에 모태펀드에게 매도할 수 있는 옵션이다. 연기금이 출자한 펀드의 손실이 예상되거나 유동성이 필요할 경우 쓰일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일반 벤처투자 대비 손실에 대한 안전장치를 이중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벤처투자의 안전성과 수익률이 기존에 우려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다는 인식이 작용한 결과물로 풀이된다. 연기금투자풀을 관리·감독하는 기획재정부와도 벤처투자 확대를 위한 협력을 논의 중이다.

벤처캐피탈 업계도 연기금을 벤처투자 시장으로 유도하는 이번 정책에 대해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윤건수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은 "그동안 벤처투자조합에 참여하지 않은 기금들이 들어온다는 것은 벤처캐피탈 입장에서 대단히 환영할 일"이라며 반겼다.

그러면서 "연기금은 재간접펀드 형식으로 벤처캐피탈들에 출자하는 구조인데, 이는 3년에 걸쳐 다양한 업종과 기업을 투자하기 때문에 리스크가 낮은 편"이라며 "연기금 자체가 장기간 투자하는 자산이기 때문에 (만기가 7~8년인) 벤처투자와 성격도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leej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