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돈은 獨으로 대표도 외국인…어디 민족입니까[기자의눈]
- 이민주 기자
(서울=뉴스1) 이민주 기자 =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배달의 민족"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2014년 광고계의 최대 화제작으로 꼽힌 배달앱 '배달의민족'의 광고 카피 문구다.
이 광고는 예로부터 '밝은 땅에 사는 민족'이라 불려 온 우리민족의 별칭과 '배달 음식을 많이 시켜 먹는' 요즘의 트렌드를 중의적으로 녹여내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추가로 맨 앞에 삽입된 '우리'라는 단어는 이용자로 하여금 기업과 '같은 민족'이라는 연대감도 심어줬다. 절묘한 광고에 늘어난 배달 수요까지 돕자 배민은 곧바로 업계 1위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광고가 나온 지 6년 만인 2020년 배민은 '게르만 민족'이 됐다. 독일의 음식 배달 서비스 회사인 딜리버리히어로(DH)는 배민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을 40억 달러에 인수했다.
원화로 4조 8000억~5조 원이라는 높은 인수 가격도 업계 안팎을 놀라게 했다. 매각가는 논의가 나오기 시작한 2019년 당시를 기준으로 현대건설, LG디스플레이, GS 등의 시총과 맞먹는 금액이다.
이 때문일까 매각 소식이 들리자마자 DH가 배민 수익성 높이기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DH가 큰돈을 들여, 심지어 빚까지 내가며 배민을 산 만큼 이익률을 끌어올리려고 할 게 분명하다고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세간의 우려가 가중되자 우아한형제들은 2019년 12월 17일 "회사 매각에 따른 중개 수수료 인상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실제로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까지 배민은 한 차례도 수수료를 올리지 않았다. 요금제를 다양화하는 등의 귀여운 꼼수를 부리긴 했지만 6.8%라는 수수료율을 유지해 온 것만은 팩트다.
그러던 배민이 이달 10일 처음으로 외식업주가 부담하는 중개 수수료를 9.8%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설립한 지는 13년 만이고 DH 인수된 지는 4년 만의 일이다.
이달 초 사임한 이국환 전 대표의 자리를 임시로 맡고 있는 DH의 최고운영책임자(COO) 피터얀 반데피트 대표는 이번 인상과 관련해 "우리의 새로운 요금 정책은 업주들이 앱을 이용해 비즈니스를 성장시킬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우리 목표는 지속 가능하고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배달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10여 년 동안 업계 1위를 공고히 지키고 있는 배민이 돌연 수익성 높이기 작업에 들어간 배경은 무엇일까?
중개 수수료 인상이 전부가 아니다. 배민은 이달부터 신규 가입 업주를 대상으로 포장 주문서비스 중개 수수료(6.8%)도 받기 시작했다. 그간 배민은 수년간 상생 차원에서 포장 중개 수수료를 받지 않았다. 쿠팡은 현재도 이 정책을 유지하고 있고 말이다.
'남는 돈이 없어서일까?'라는 의문이 든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배민은 지난해 7000억 원에 가까운 돈을 벌어들였다. 우아한형제들의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6998억 원으로 전년(4241억 원) 대비 65% 증가했다.
그러나 배민은 번 돈 이상을 모회사와 그룹 내 계열사에 지급해야 했다. 역대급 실적을 낸 배민은 DH에 4127억 원(배당성향 81.5%)을 배당하고 DH의 사우디 자회사 헝거스테이션에 4000억 원을 대여해줬다. 대여액은 이 회사의 지분가치의 3분의 1에 달하는 금액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 유럽연합 반독점법 위반으로 6000억 원 규모의 벌금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DH가 '캐시카우'인 배민을 쥐어짜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DH로부터 수수료 인상을 요구받았다는 의혹을 안은 채 자리에서 물러난 이국환 전 대표가 사임한 직후 DH의 COO가 임시 대표를 맡은 점. 그 직후 수수료 인상이 발표된 점까지 수상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7000억 원을 벌어들여 81%를 독일 본사에 지급하는, DH의 최고운영책임자가 이끄는 배민은 "어떤 민족일까"
minju@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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