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 굴리고 제비뽑기까지"…가구 입찰담합 어떻게 이뤄졌나
[가구 카르텔②]아파트 신축 설명회 전후 모여 낙찰 순번 합의
수익 챙기고 입찰 자격유지 목적으로 담합
- 김민석 기자
D사 "제비뽑기 한 대로 이번 현장은 저희 차례입니다."
C사 "예, 알겠습니다. 총금액만 알려주십시오."
D사 "42억5000만 원에 들어갑니다."
C사 "저희는 43억 원 쓸게요."
B사 "저희는 43억8000만 원 쓰겠습니다."
D사 "감사합니다. 총금액 유지 부탁드립니다."
(서울=뉴스1) 김민석 기자 = 가구 특판 입찰 담합 행위에 가담한 가구업체 담당자들이 모바일 메신저로 투찰 가격 및 입찰견적서를 공유한 부분을 실제와 유사하게 가공한 대화다.
7일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에 따르면 한샘(009240)·현대리바트(079430)·에넥스(011090)·넵스·에몬스가구 등 31개 가구업체는 건설사의 아파트 신축현장 설명회 전후로 모여 입찰에 낙찰받을 순번을 합의했다.
특판 가구 입찰은 대부분 최저가 지명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된다. 건설사들은 협력업체 풀을 정해놓는 경우가 많아 건설사별로 입찰 참여업체들이 달라진다. 이 때문에 가구업체들은 대부분 건설사별로 영업 담당자를 지정하고 입찰에 참여한다.
이번 담합에 가담한 가구업체들은 낙찰 예정자 또는 낙찰 순번을 △주사위 굴리기 △제비뽑기 △선(先)영업 업체 우대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결정했다.
낙찰 예정 업체는 전화·이메일·모바일 메신저로 입찰가격과 견적서를 공유했고, 들러리 업체들은 낙찰 예정 업체보다 높은 가격으로 투찰하는 방식으로 담합을 실행했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대우건설 발주 건에서 사업자들은 입찰 전 미리 준비한 주사위 2개를 굴려 그 합계가 높은 업체 순서대로 연간 단가 입찰의 낙찰 순위를 결정한 사례가 있었다. GS건설 발주 건에서 업체들은 해당 연도 예상 현장 목록을 만든 후 제비뽑기를 통해 낙찰 순번을 정했다.
가구업체들은 낙찰 확률을 높이거나 입찰 참가 자격을 유지할 목적으로 낙찰 예정자를 명시적으로 합의하지 않고 견적서 교환을 통해 입찰 가격만을 합의하기도 했다.
빌트인 특판 가구는 아파트 등 대단위의 공동주택 신축·재건축·리모델링 등 사업서 주택 시공과 함께 설치하는 싱크대·냉장고장·붙박이장·신발장 등이다. 설치비용은 아파트 등의 분양 원가에 포함돼 있다.
공정위가 밝힌 가구업체들이 담합 규모는 1조9457억 원(담합 이뤄진 입찰 계약금액 합계액)에 달한다.
공정위는 이번 담합으로 대다수 국민들의 주거공간인 아파트의 분양원가 상승에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했다. 원가율 대비 약 5% 이익을 봤다는 업체 담당자 진술을 토대로 세대별 25만 원 내외(84㎡형 기준) 이익을 거뒀을 것으로 추산했다.
가구업체들의 담합으로 입주민도 손해를 입게 된 것이다.
가구업체들이 담합을 하게 된 구조적인 요인도 있었다.
대부분 건설사는 가구업체들의 △입찰참가 실적 △투찰 가격 △신용평가결과 등을 토대로 입찰참가 자격을 유지하거나 제한하고 있어 가구업체들은 입찰참가 자격 유지를 위해 낙찰을 희망하지 않는 입찰에 대해서도 투찰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가구업체들은 입찰에는 참여하면서도 견적서 작성에 드는 노력은 줄이기 위해 낙찰 희망업체와 담합할 유인이 생겨난 것이다.
이들은 출혈경쟁 따른 저가수주 방지와 입찰참가자격 유지 등을 목적으로 공동행위를 합의하고 실행하다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지한 한 업체가 '형사 리니언시'(자진신고 감면) 제도를 활용해 자진 신고하면서 덜미가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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