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사고 나면 문 닫는 거죠" 중처법 시행 한달, 소공인은 막막하다
소규모 제조업체들 "안전한 최신 설비는 언감생심"
중기부, 소공인 '클린제조' 지원하지만…"효과 미미할 것"
- 김형준 기자
(서울=뉴스1) 김형준 기자 = "쥐를 쫓으려고 해도 나갈 구멍은 내고 쫓는다는데…. 아무 대책도 없이 중처법을 시행하면 안 그래도 힘든데 사업하지 말라는 거죠."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에 위치한 한 봉제 소공인(10인 미만 제조업) 공장. 재봉틀과 재단에 사용되는 기계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뜨거운 스팀과 날카롭고 예리한 기계들을 다루는 직원들의 손도 바쁘게 움직였다.
해당 업장을 운영하는 장 모 대표(65)는 업무 지시를 하며 직원들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봤다. 혹시나 안전사고가 발생해 다치는 직원이 있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올해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처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확대 적용되고 있다. 사업장에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면 업주가 처벌받게 된다.
장 대표는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중처법에 대응할 여력이 없음에도 예외 없이 법 적용 대상이 확대된 상황이라면서 "가뜩이나 일감이 없어 울고 싶은데 중처법이 뺨을 쳐준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업력 30년인 장 대표 업장의 재봉틀 등 장비들은 언뜻 봐도 연식이 오래돼 보였다. 장 대표는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최신 설비를 들여놓고 싶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장 대표의 업장 인근에서 소규모 의류 공장을 운영하는 A 대표(66)의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오후 A 대표의 공장에는 5명가량의 직원들이 재봉틀을 돌리고 재단을 하고 있었다.
A 대표는 "소공인들의 경우 사장도 일반 직원들과 함께 작업하는 '노동자'"라며 "직원들이 다치길 바라는 사장이 어디에 있나. 게다가 같이 일하는 대표가 과도한 책임을 져야 한다니 사고가 나면 그냥 문을 닫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처음엔 우리 업장은 별로 상관없는 법이라고 생각했지만 같은 사고로 부상자가 발생하면 처벌을 받는다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획기적인 대응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말도 안 되는 법"이라고 토로했다.
소공인들의 주무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는 중처법 시행 이후 기존에 시행하던 '소공인 클린제조환경조성 사업'(클린제조 사업)에 중대재해 부문을 신설해 지원에 나서고 있다.
클린제조 사업 중대재해 부문은 총 450개 소공인 사업장에 국비 최대 700만 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작업장 안전사고 예방과 중처법 대응을 위한 컨설팅을 제공하고 작업장 내 유해 물질 제거 설비와 안전 장비 등을 지원한다.
하지만 수혜 대상인 소공인들은 중처법 대응 조치로 클린제조 사업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업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경우도 부지기수다.
장 대표는 "동대문구에만 의류 공장으로 사업자 등록이 된 곳이 1800개가 넘는다"며 "등록되지 않은 업체들까지 고려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을 텐데 그 정도 지원 규모는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처법을 시행하려고 한다면 아파트형 공장과 같은 인프라를 공급해 주는 등 근본적인 대응책이 마련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에도 예산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만큼 소공인들을 비롯한 중소기업계는 중처법 확대 적용을 2년 유예하고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총선 전 마지막 국회 본회의에서도 중처법 적용 유예안이 처리되지 않으면서 소규모 사업장의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j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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