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하는 마당에 복구비로 5천만원?"…건물주 갑질 당한 소상공인 20만명 넘어
중기부, 2023 상가건물임대차 실태조사 결과 발표
부당 요구 받은 임차인 48% "약자라서 들어줬다"
- 이민주 기자
(서울=뉴스1) 이민주 기자 = #. 경기도에서 고시원을 하던 K 씨는 길어지는 보릿고개에 결국 사업을 접기로 했다. 수년간 운영하던 영업장을 정리하고 퇴거의사를 밝히자 임대인은 원상회복 비용으로 5000만 원을 추가 요구했다. K 씨는 고시원 운영 기간동안 개조한 시설도 아니고 이전 임차인이 설치한 시설이기에 복구비용을 낼 이유가 없다고 맞섰지만 건물주는 "억울하면 소송하라"고 말할 뿐이었다. 상가 임대를 알선한 공인중개사에 문의해도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사업을 정리하는 마당에 생돈 5000만 원을 내놓을지 송사에 휘말릴지 선택해야 하는 K 씨는 깊은 좌절에 빠지고 말았다.
상가건물을 빌려 장사를 하다가 '건물주'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소상공인이 지난 한해 동안 20만 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차 소상공인의 7.9%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들 중 절반에 가까운 10만여 명의 소상공인들은 실제 법적 효력이 없음에도 건물주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다고 응답했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혹은 건물주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5일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2023 상가건물임대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임대인으로부터 부당한 요구를 받아봤다는 임차인은 20만5227명으로 나타났다.
임대차 분쟁을 겪은 종류로는 '원상복구 범위'가 39%로 가장 많았다. 앞서 언급한 고시원 운영 K 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주로 이용하던 상가 건물 수리비로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하거나 임차인의 잘못이 아닌데도 부당한 원상복구를 요구하는 경우가 해당됐다.
다음으로 '점포 이전 시 권리금 수수방해'(23.6%)가 꼽혔다. 주로 발견되는 사례로는 장사가 잘 되는 '대박 맛집'의 경우 건물주가 욕심을 내 본인이 직접 운영하려는 의도 등을 갖고 임차인에게 자리를 내놓으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임차인이 권리금을 받고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려 할 때 새 임차인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권리금을 받지 못하게 건물주가 방해를 하는 것이다.
실제 법조계에 따르면 건물주의 권리금 회수 방해로 인한 민사 사건이 다수 접수될 정도로 상가 임차 소상공인에게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로 알려져 있다.
수리비 미지급도 부당경험 중 17.8%에 달해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임대인이 장사를 하면서 건물에 하자가 생겨 수리를 해야 할 경우 이는 건물주가 수행해야 하지만, 수리 자체를 차일피일 미루거나 급한 사정으로 임차인이 우선 수리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엔 건물주가 수리비를 지급해야 함에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월세 및 보증금 과다인상 요구'도 임차 소상공인에게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특히 서울 지역 임차 소상공인이 겪은 부당 요구 중에서는 절반 이상(54.9%)이 월세나 보증금 과다 인상 요구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물주의 부당요구를 받았을 때 임차 소상공인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가장 먼저, 그리고 많이 도움을 요청한 곳은 임대차 계약을 했던 '공인중개사'였다.
부당요구를 당했다고 답한 임차 소상공인의 32.9%가 공인중개사에게 중재를 요청했다고 답했다. 다음으로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32.3%), 민사소송 진행(23%)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임대인으로부터 부당한 요구를 당한 임차인 절반가량은 '법과 관계없이 약자의 위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요구를 들어줬다'(48%)고 답했다.
'부당한 요구지만 권리금 회수 문제 때문에 (임대인의) 요구를 들어줬다'는 이들도 26%에 달했다. 상가임대차법을 근거로 부당한 것을 바로잡아달라고 요구하고 임대인이 수용'한 경우는 17%다.
100명 중 6명은 '부당함을 호소했지만 임대인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임대차 분쟁으로까지 이어졌다'(6.3%)고 답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지난해 경기가 좋지 않다보니 예전처럼 임대료를 갑자기 올리는 등의 불만이나 분쟁이 적었던 편"이라며 "설문을 통해 도출된 (임차·임대인) 요구사항을 정리해 (유관부서인) 법무부와 국토교통부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minju@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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