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잘라야 하나요"…중처법 유예 불발에 '뒷목' 잡은 영세기업들

업계 외면에 분통…사망사고 발생에 '노심초사'
"반드시 유예 필요…2월 임시국회서 다시 논의해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촉구 전국 중소기업인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법안 유예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김형준 기자 = "직원 수가 5명 밑이면 적용이 안 되는 거잖아요. 4명까지 직원을 줄일까 이런 생각까지 들어요. 다른 사장님들도 이런 얘기 많이 합니다."

인천에서 소규모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A 대표는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적용 유예안이 이번에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자 황망함을 표했다. 불의의 사고가 발생해 기업 문을 닫아야 하는 건 아닌지, 직원 수를 줄여야 할지 고민하는 영세 중소기업 대표는 A 대표뿐만이 아니다.

2일 정치권과 업계에 따르면 국회는 전날 열린 1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에 중처법 확대 적용 유예안을 상정하지 않았다. 본회의 직전까지도 유예안 통과가 급물살을 타는 듯했지만 결국 타결을 이루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이 유예안 통과의 선결 조건으로 내걸었던 산업안전보건청 설치를 받아들이고 중처법 2년 유예 후 개청하는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민주당은 의원총회를 거쳐 이를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일말의 희망을 가졌던 영세 중소기업계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한 결정이라며 정치권에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금속가공 제조업체 에이스메탈의 백운기 대표는 "새로 중처법이 적용된 5~49인 사업장은 모두 영세한 기업들"이라며 "그 법을 지키려면 영세 기업들은 그날로 문을 닫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현장에서는 열심히 노력하지만 정치권은 사고의 책임을 업체 대표에게 떠넘기려 하는 것 같다"며 "영세 중소기업 대표들은 사실상 사업을 안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법 적용이 시작된 후 나흘 만에 업장 내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서 기업들의 불안감은 더 고조되는 분위기다.

지난달 31일 부산 기장군의 폐알루미늄 수거·처리 업체에서 일하던 한 작업자가 집게차 마스트와 화물 적재함 사이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광성내남의 한연희 대표는 "소식을 접하고 (중처법 적용이) 현실이 되는구나 싶어서 너무 불안하다"며 "반드시 여유 기간을 주고 정부의 산업안전 지원책 등이 강화돼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업계는 대표의 역할이 절대적인 중소기업의 특성상 대표가 처벌받으면 기업의 존폐가 흔들리게 된다며 법 적용 유예를 꾸준히 요구해 왔다. 이에 따라 해당 기업 근로자들의 일자리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지난달 31일에는 이례적으로 중소기업 대표 3500여명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여 중처법 유예안 통과를 촉구하기도 했다. 대표들은 "중처법은 모든 중소기업 사장들에게 징역을 살 수 있다는 불안감을 심어주는 법"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유예안 처리가 무산되자 중소기업중앙회 등 업계 단체들은 즉각 입장을 표명했다.

업계는 공동으로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법안이 본회의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무산돼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83만이 넘는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예비 범법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남은 2월 임시국회에서 이 법안이 다시 논의돼 처리되길 간곡히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ju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