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단골마저 지갑 닫았다"…이사철· 신학기 특수 사라진 전통시장
유동인구 많은 계절 다가오지만 전통시장은 여전히 한파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 관점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대책 필요"
- 김예원 기자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지난해보다 장사가 더 안돼요" "물가가 높아지니 단골도 지갑을 닫네요" "요새는 집들이 가는 사람들도 없어요"
주말을 앞둔 금요일 오후 3시.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대화 중간중간 한숨을 내쉬었다. 각종 물건을 담은 바구니가 매대 곳곳에 진열됐지만 가격을 묻고 흥정하는 손님은 드물었다.
과일 가게를 운영하는 60대 전모씨는 "예전 이맘때쯤이면 집들이 선물로 과일 세트를 사기 위해 가게를 찾는 사람도 종종 있었지만 올해는 문의가 아예 없다"고 말했다.
시장에서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는 40대 조모씨는 "인근 아파트 단지 주민과 상인들이 선물 구매를 위해 많이 찾지만 다들 힘들다보니 예전만큼 구매하지 않는다. 곧 있으면 이사철이니 판매량은 늘겠지만 큰 기대는 않고 있다"고 했다.
수산물 가게를 운영하는 60대 최모씨는 "명절이 있던 1월은 다른 때에 비해 벌이가 괜찮았지만 그 기세는 2월 들어 푹 꺾였다. 3월은 더 심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같은 현상은 다른 전통시장도 마찬가지다. 박지원 전국상인연합회 사무처장은 "최근엔 정부 차원에서 비대면 판매도 장려하지만, 여전히 전통시장은 대면 판매 위주"라면서 "손님 방문이 끊기면 그대로 매출이 곤두박질친다. 코로나19, 한파로 발걸음이 오래 끊기다보니 잘 회복되지 않는 것 같다"고 전했다.
전통시장에 불고 있는 한파를 두고 시장 상인들은 고물가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재열 남성사계시장 상인회장은 "물가가 높아지니 단골도 지갑을 닫는다는 목소리가 많이 들려온다. 안그래도 찾는 사람이 적은데 큰일"이라고 말했다.
가스비 등 공공요금과 납품가 인상으로 제품 공급가가 오르는 점도 상인들의 어려움을 더한다. 서울 마포구 공덕시장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음식을 따뜻하게 유지하려면 하루종일 가스를 켜야 한다"며 "재료값도 상승하니 가격은 올려야겠는데 손님이 더 줄까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상인들을 중심으로 정부 차원의 실효성있는 지원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코로나19 직후 경기침체가 이어지는 상황을 기초체력이 약해진 전통시장이 홀로 감당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소상공인엽합회 관계자는 "위기를 이겨낼 수 있게 시장 방문 활성화와 고물가 등으로 인한 지출 비용 경감 지원책이 동시에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전문가들은 공급자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예산군이 더본코리아와 협업해 시장 내 음식점을 지역 맛집으로 바꿔 인기를 끈 것처럼 소비자의 관점에서 시장 활성화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근보 목동깨비시장 상인회장은 "날이 풀리면 3월 중으로 영화제 등을 진행해 다양한 손님 방문을 유도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종욱 서울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잘되는 전통시장들을 보면 크게 2가지다. 가성비가 좋거나, 레저와 쇼핑 기능을 동시에 충족하는 경우"라면서 "전통시장을 활성화하려면 찾아갈 수밖에 없는 전통시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kimyewon@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