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그만]③일할 사람도 적은데…"안전관리자 채용 여력 없어요"
제조업 산재사망자 전년比 15%…정책 지원 실종에 중대법 무색
영세 중기 '경영책임자 처벌→안전취약점 보완' 정부 예산 시급
- 김민석 기자
(서울=뉴스1) 김민석 기자 = "안전관리 체계 구축이요? 필요하죠. 그런데 말입니다. 중소기업들은 시간을 많이 준다 해도 쉽지 않아요. 생산 인력도 못 구하는 판에, 안전보건 담당 전문 인력을 뽑을 여력이 있을까요?"(금속 관련 제조사 대표)
◇"생산인력도 못 뽑아 허덕이는데"…안전관리자 수급부터 난관
기업들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관리 구축과 법 정비에 공감하고 있다.
다만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은 동원할 수 있는 자원에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산재 예방을 위한 정책 지원이 병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처벌에 방점을 둔 법·제도 정비가 이뤄져도 여력이 부족한 기업들은 꼼꼼한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고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어서다.
가장 큰 장애요인은 인력이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들은 생산인력 고용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안전관리 전문 인력 역시 대기업·공기업 쏠림 현상이 심하다. 상당수 기업들이 정부의 전문적인 안전관리 인력유성 방안들을 병행해야 산재 예방에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올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50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제조업체 3곳 중 1곳(35.1%)은 중대재해처벌법 '의무사항을 준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과반은 '안전보건 전문 인력 부족'(55.4%)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안전관리 인력이 있는 경우 '다른 업무와 겸직'이 44.8%로 절반에 가까웠다. '전문 인력이 없다'는 응답은 4곳 중 1곳(23.2%)에 달했다.
안전관리 자격증을 갖춘 인력 입장에서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중소기업을 택할 유인이 없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은 안전관리에 소홀해지고 사고 위험에 노출된다. 임금·처우마저 비교 열위다보니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외부 전문기관 위탁이 가능하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외부 전문기관은 다양한 규모, 업종의 중소기업들을 관리한다. 현장에는 월 2회 정도만 방문한다. 안전관리에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수요자 중심 지원 정책 실종…제조업 산재 사망자 더 늘어
이같은 문제에도 정부는 인력 확보나 인건비 지원에 대한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안전설비 투자비용을 지원한다지만 중대재해법 대상이 아닌 50인 미만 기업에 한해서다. 50인 이상 사업장 지원 정책은 융자와 컨설팅 중심이다.
중대재해법 등 처벌에 중점을 둔 정책 시행에도 산재 예방에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올해 3분기까지 산재사망자가 51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 증가(고용부 사망사고 발생 현황)했다. 사고발생 건수는 483건으로 1.8% 줄었지만 50인 이상 제조업 사업장에서 사망자는 64명에서 74명으로 10명(15.6%) 늘었다.
이런 상황에도 고용부는 내년도 예산서 5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 전문 인력 인건비 지원 사업을 신설하지 않았다. 안전투자혁신사업(안전설비 투자비용 지원)은 오히려 예산을 삭감했다.
전문가들이 산재예방을 위한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양옥석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중소기업이 안전 관리자를 자체 채용할시 인건비를 일부 보조하거나 세액공제 등 혜택을 제도적으로 신설해야 한다"며 "점진적으로는 외부 위탁보다 자체 채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슷한 사례로 중소기업 이공계 연구인력 경우 채용시 최대 3년간 기준 연봉 50%를 보조(연구인력지원사업)하는 방안이 있다. 인건비 세액공제 혜택(최대 40%·조세특례제한법 제10조) 등을 지원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인건비 지원은 많은 재원이 필요해 단기간에 문제를 풀기 쉽지 않을 수 있다. 전환기에는 업종별·지역별 중소기업 협동조합에 안전전문가를 상주시켜 중소업체들의 안전관리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양 실장은 "근로자수 50인 이상~300인 미만 업체들 경우 안전·보건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을 두고 있는 만큼 이들을 안전관리자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면서 "중소기업에 한해 안전관리자 자격 요건을 완화하는 것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문가 "정부 정책 강화하고 경영책임자 책임의무 명확히 해야"
안전설비 비용 부담도 풀어야할 과제다. 정부의 재정적 지원은 현재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한정하고 있다. 50인 이상 사업장은 대출을 받아 자체해결에 나서야 한다. 50인 이상 규모도 재정적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법(법령) 조문에 정부의 중대재해 예방 책무를 강화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중대재해법 제16조 '예산의 범위에서 지원할 수 있다'라는 임의 규정을 '지원해야 한다'라는 의무 규정으로 개정하고 법에 최소 산재기금 지출예산의 1% 이상을 매년 중소기업 산재예방 인프라 지원에 사용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경영책임자의 의무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중대재해법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자 사망 등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기업이 체감하는 경영상 부담이 크다 보니 처벌을 회피하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고 사고예방 및 사고발생시 노사간 역할보다는 정부·기관의 해석과 판단에 의존하도록 만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영책임자의 책임과 의무를 명확히 하기 위해선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애매모호한 법 문구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행령에 명시한 '필요한 인력을 갖춰' '필요한 예산을 편성·집행할 것' 등 표현서 '필요한'이라는 표현은 추상적이다.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이란 문구서도 '실질적'이라는 표현이 명확하지 않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법을 통해 적절하고 구체적인 예방의무와 주의 수준을 부여해야 함에도 오히려 '적절히' '충분한" 등의 문구를 사용해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준이 모호하다보니 지난달 말 발생한 대전 현대 프리미엄아울렛 화재 사고에 대한 중대재해법 적용 여부도 쟁점이 되고 있다.
관련 하청업체의 법 위반을 관리·감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원청인 현대백화점 김형종 사장이 방재·보안 시설 하청업체 대표 3명과 함께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중대법이 적용되면 유통업계 첫 사례가 된다. 노동청은 이들을 조만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해 소환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조준모 교수는 "중대법 제정 당시 산업재해 예방을 통해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사고들과 그 수준에 대해 고민이 없었다"면서 "그 결과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비난 대상 찾기, 경영책임자 처벌에만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영책임자에 대한 과도한 책임부여는 법적 쟁송 비용을 증가시킬 뿐 산재사망사고 예방에 뚜렷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긴 어렵다"면서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려면 하청 등 영세 중소기업들의 안전 취약점 보완에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중소기업들이 처한 상황이 어려운 건 맞지만 예외 또는 완화 적용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향후 법 개정시 정부의 정책 지원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동시에 원청인 대기업이 비용 부담을 공동으로 책임지도록 하는 등 구체적인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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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월27일 발효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0개월째, 안전 관리를 철저히 하기 위해 사업주에게 더 큰 책임을 묻고 처벌을 강화했지만 노동 현장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일터에서 죽음이 끊이질 않는다. 중대법 시행 후 9월말까지 433건의 중대재해로 446명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시행 전과 매한가지다. 중대법 그물망도 빠져나가는 구멍이 여전히 큰 까닭일까. 현행 중대법만으로 막을 수 없는 사각지대를 조명하기 위해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적 한계를 6차례에 걸쳐 진단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