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참에 의사업무 '독점' 깨자"…한의사·약사 숙원사업 분출

의사 업무 일부 맡게 된 간호업계…간호법 제정 재추진
한의계 "필수의료에 우리 투입하라"…약업계 '대체조제' 기대감

전공의 이탈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간호사 업무 범위가 확대되는 가운데 8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가 응급실로 환자를 옮기고 있다. 2024.3.8/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의사 집단행동 사태 장기화 조짐에 간호사업계를 시작으로 한의계, 약업계 등에서 '의사의 독점구조를 깨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전공의 집단이탈에 따른 의료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간호사 활용' 카드를 꺼내든 것을 신호탄으로 타 보건의료 직역마다 그간 의사들의 반대에 가로막혀 좌절됐던 숙원사업들을 이번 기회에 해결해 보겠다는 기세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8일부터 간호사가 일부 의사 업무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도록 '간호사 업무 시범사업 보완 지침'을 시행 중이다. 지침은 간호사 숙련도와 자격에 따라 '전문간호사·전담간호사(PA간호사)·일반간호사'로 나눠 업무 범위를 정하고 의료기관의 교육·훈련 의무를 명시했다.

간호사들은 사망진단, 척수마취 시술 등 대법원이 판례로 명시한 총 5가지 금지 행위와 엑스레이 촬영, 대리 수술, 전신마취, 전문의약품 처방 등 9가지를 제외한 다양한 업무를 병원장 책임 아래에 할 수 있다.

심전도·초음파·코로나19 검사, 단순 드레싱(일반·시술 상처·단순 욕창 등), 응급상황 심폐소생술·약물 투여 등은 모든 간호사가 할 수 있다. 전문간호사와 전담간호사는 위임된 검사·약물의 처방과 진료기록이나 검사·판독 의뢰서, 진단서 등 각종 기록물의 초안을 작성할 수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해 "전문의 중심의 인력 구조로 바꿔 나가는 한편, 숙련된 진료지원(PA) 간호사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근본적인 의료전달체계 개편도 함께 추진해 나가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또 "간호사가 숙련된 의료인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간호사들의 경력 발전 체계 개발과 지원에 관심을 기울이겠다"고도 했다. 그동안 간호사의 업무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고 다소 모호하게 규정돼 있었다.

이에 대해 대한간호협회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는 법으로 정해지지 않아 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다"면서 "논란의 여지를 없앤 새로운 간호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간호사의 업무 범위와 처우개선 등을 골자로 한 간호법은 지난 2021년 여야 의원들 발의로 지난해 4월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폐기됐었다.

당시 '이 법은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는 조항이 대한의사협회(의협) 반발을 샀다. 현재 간호협회는 "('지역사회' 문구를 없애는 등) 논란의 여지를 없앴다"고 강조하고 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 8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을 통해 "간호사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반영할 것"이라면서 "간호협회 논의만으로는 어려운 것이고 관련되는 단체와 또 일반 국민들, 전문가 의견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의사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정부를 향해 "필수의료 분야 정책과 미용시술 자격에 각각 자신들을 포함해달라"고 제안했다. 또 의대정원을 2000명 늘려도 10년 뒤에나 공급되기 때문에 한의사들을 적극 활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의사협회의 경우 '한의사 감축'이 당면 과제다. 최근 한의사협회 회장 선거에서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윤성찬 당선인은 공약으로 '한의대 정원 축소'를 내걸었다. 한의협은 "향후 한의사 배출이 수요보다 많다"는 입장을 복지부에 피력하며 한의대 정원 축소를 지속적으로 피력해 왔다.

18일 서울 종로구 약국거리에서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2023.9.18/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대한약사회는 의사 집단행동에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사태가 오래 갈 경우 '대체조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돼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행 약사법은 의사가 처방한 약을 약사가 동등한 약효의 다른 약으로 조제할 때 의사 동의를 받고, 그 결과도 통보하게 돼있다.

약사들은 대체조제 사후 통보라도 간소화되면 약국 업무가 한층 수월해질 수 있어 정부 판단을 기대하는 모습인 반면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대체조제 활성화가 이뤄지면 약화 사고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고 국내 제약산업의 왜곡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 의료직역 단체 관계자는 최근의 이같은 각 직역 단체 움직임에 대해 "정부가 의사들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연속성 있게 제도화될지 미지수 아니겠는가. 정부와 의사단체가 강대강 대치보단 대화 의지를 보여가며 후일을 모색했으면 싶다"고 말했다.

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