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좌표찍기' 전공의 블랙리스트 논란…의대 교수들 줄사직 확산(종합)

경찰, 블랙리스트 조사 착수…의협 "100% 허위"
아산병원 교수 사직서 제출 등 교수 연대 움직임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하며 집단행동을 이어가고 있는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로비에 의대 증원 반대 및 제42대 회장 선거 안내 포스터가 붙어 있다. 2024.3.4/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이훈철 천선휴 김지혜 강승지 허고운 기자 = 집단행동에 불참한 전공의 명단이 적힌 블랙리스트 진위를 놓고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가 공방을 벌이는 등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증원에 반발해 이탈한 전공의에 대해 면허정지 절차를 진행 중인 가운데 이른바 '빅5'로 불리는 서울 대형 병원의 교수들이 동반 사직 의사를 밝히면서 의대 교수들의 집단행동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대통령실까지 나선 '블랙리스트' 논란…의협 "가짜"

정부와 의료계는 8일 이른바 전공의 블랙리스트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집단행동에 불참한 전공의 블랙리스트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된 데 이어 의협이 이를 사주했다는 의협 내부 문건 폭로 글이 올라오면서 논란이 됐다. 시민단체가 의협을 고발한 가운데 정부도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블랙리스트 진위와 의협 사주 의혹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오후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주재하며 "전공의들이 현장에 돌아올 생각을 하기는커녕 동료들이 복귀하지 못하도록 비난하는가 하면, 용기 있게 먼저 의료현장으로 돌아간 동료를 모질게 공격하고 있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실도 "고도의 윤리 의식이 요구되는 의사 집단에서 환자 곁을 지키는 동료들에게 좌표를 찍어 색출하는 행태를 보인다면 학교 폭력을 일삼는 '일진'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비판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전공의가) 복귀하지 못하도록 교사·방조한 행위와 협박성 보복 등 위법 사항을 철저히 점검하여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의협은 논란이 확산하자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내부 문건이 가짜라며 즉각 반발했다.

이정근 의협 상근부회장(현 회장직무대행)은 "해당 문건은 100% 허위"라며 "해당 문건을 유포한 사람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 16일째를 맞는 6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응급환자를 위한 침상이 놓여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과 서울대병원 등은 전공의 사직 여파로 환자 수가 급감하면서 간호사 등 직원을 대상으로 무급 휴가 제도를 시행한다고 공지했다. 2024.3.6/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의대 교수 줄사직…빅5 병원도 포함

의료계에서는 정부의 전공의 징계에 반발한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처음으로 빅5 병원 교수들도 집단 사직에 동참했다.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전날(7일) 교수 긴급총회를 열고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합의했다.

울산의대 교수협의회에는 울산대병원, 강릉아산병원을 비롯해 빅5 병원 중 하나인 서울아산병원도 포함돼 있다. 이날 총회에 참석한 서울아산병원 교수만 151명에 달한다. 울산의대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는 총 996명이다.

지방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에 이어 새롭게 비대위원장을 선출한 서울대 의대를 비롯해 빅5 병원 비대위 및 교수 단체가 연대할 경우 교수들의 집단행동은 더욱 확산할 전망이다.

앞서 경북대 의대 학장단 소속 교수 14명이 일괄 사퇴 의사를 밝혔으며 가톨릭대 의대 학장단 8명도 지난 6일 사퇴서를 제출했다. 경상국립대에서도 의대 학장 등 보직 교수 12명 전원이 5일 대학 본부에 보직 사직원을 냈으며 원광대 의대 학장 등 5명의 교수도 사직 의사를 밝혔다.

의대 교수들의 사직 예고도 이어지고 있다.

전북대 의대 교수들은 전날 성명서를 통해 "교수 일동은 의과대학 학생과 전공의를 적극 지지하며, 이들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행위가 있을 경우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들도 이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향후 상황 전개에 따라 더 많은 교수가 사직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20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들이 진료를 보고 있다. 군 당국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의료계의 집단행동으로 발생하는 의료공백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군 의료체계를 민간에 개방했다. 2024.2.20/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전공의 이탈 18일째 응급환자 줄고 분산되는 환자

전공의 이탈 18일째 의료 현장에서는 의료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이날부터 의사 업무 일부를 합법적으로 수행하도록 한 '간호사 업무 시범사업 보완지침'이 시행됐다.

보완지침은 간호사의 숙련도와 자격에 따라 전문간호사·전담간호사(일명 'PA' 간호사)·일반간호사로 나눠 업무 범위를 정하고 의료기관이 교육·훈련시키도록 명시했다.

간호사들은 사망진단 등 대법원이 판례로 명시한 5가지 금지 행위와 엑스레이 촬영, 대리수술, 전신마취, 전문의약품 처방 등 9가지를 제외한 다양한 업무를 병원장 책임하에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심전도·초음파 검사, 단순 드레싱(일반·시술 상처·단순 욕창 등), 중심정맥관 관리(혈액채취), 응급상황 심폐소생술, 응급 약물 투여 등은 모든 간호사가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을 내고 "진료공백 해소를 위한 한시적 비상대책이라고 하지만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럴 거라면, 차라리 간호사에게 의사면허를 발급하라'는 게 현장 간호사들의 목소리"라며 "환자안전을 위협하고 심각한 의료사고를 유발할 우려가 높다"고 했다.

한편 전날 하루 동안 의사 집단행동 피해 신고·지원센터에 접수된 의료 피해 신고 건수는 16건으로 전날 20건에 비해 4건 줄었다. 수술 지연이 7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진료 취소 6건, 진료 거절 2건, 입원 지연 1건이다.

의료 피해 건수는 4일을 기점으로 10여건대로 줄었다. 전공의 이탈 초반 10여일 의료 피해 건수는 총 343건으로 하루 평균 30여건에 달했다. 하지만 4일 29건을 기록한 이후 5일 16건, 6일 20건, 7일 16건으로 3일 평균 17건으로 안정세를 보였다.

상급종합병원에 몰렸던 환자들이 1·2차 병원이나 정부가 마련한 군 병원 등으로 분산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국방부에 따르면 이날 전국 군 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받은 민간인은 총 163명으로, 전날 같은 시각보다 5명 늘었다.

박민수 차관은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 입원환자 수는 약 3000명대로 평시 대비 큰 변동 없이 유지되고 있다"며 "응급의료기관의 중등도 이하의 환자도 지난달 1~7일 평균 대비 이달 6일 기준 29.3% 감소했으나 중증 응급 환자는 큰 변동 없이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boazho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