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통첩 마지막날 복귀 움직임…정부·전공의 대화 '실낱 희망'

전공의 294명 복귀…한번에 66명 복귀한 곳도
병원장들, 복귀 호소…이송 거부·검사 지연 등 현장혼란 가중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집단 이탈한 전공의들에게 제시한 복귀 시한 마지막 날인 29일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정부는 "29일까지 복귀하면 그간의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라며 전공의들의 복귀를 독려해왔다. 만약 이날까지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으면 정부는 전공의들에게 무더기 면허정지와 사법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2024.2.29/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이훈철 기자 = 정부가 전공의의 의료 현장 복귀 데드라인으로 정한 29일 일부 전공의들의 복귀 움직임이 포착됐다. 하지만 여전히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가 9000명에 달해 의료공백에 따른 환자들 불편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다. 정부는 예고한 대로 업무개시명령을 어기고 의료현장에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에 대해 3월부터 면허정지 처분과 사법조치를 위한 절차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2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8일 기준 전국 100개 수련병원 전공의 가운데 의료 현장에 복귀한 전공의는 294명으로 파악됐다.

◇전공의 294명 복귀…9076명 이탈

전국 100개 수련병원이 서면으로 보고한 자료를 보면 1명 이상 복귀한 병원은 32개 병원이었으며, 10명 이상 복귀한 병원은 10곳, 최대 66명 이상 복귀한 병원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정부는 사직서를 쓰고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에 대해 29일까지 복귀하지 않을 경우 3월부터 의사면허를 정지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다만 29일까지 복귀한 전공의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밝혀 전공의들의 현장 복귀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정부가 정한 복귀 데드라인이 7시간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미복귀자는 9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날(28일) 오후 7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 9997명이 사직서를 제출했고,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9076명이다. 근무지 이탈로 업무개시명령이 발부된 전공의는 9438명이며, 7854명에게 불이행 확인서가 징구됐다.

빅5 등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아직 전공의들의 복귀를 체감할 수 없다며 복귀가 아닌 환자 상태 열람, 단순 방문일 수도 있다며 오후까지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다.

정부는 복귀 명령에 불응한 전공의에 대해 이미 예고한 대로 면허정지와 고발 등 사법절차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정부는 다음 달 4일 이후에 행정절차법상 처분을 위한 절차가 시작된다고 밝혔다.

김충환 중수본 법무지원반장은 "바로 정지 처분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 사전통지하고 의견 진술 기회를 준 후 진행된다"며 "고발 등 사법절차는 법과 원칙에 따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박 차관은 "디데이 이후 사고가 터지면 원인 조사에 따라 책임이 부과되는 것이지, 무조건 현장 의료진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것은 아니다"며 "만약 원래 있어야 하는 의사가 없어서 사고가 벌어졌다면 부재한 전공의에게 책임 소재가 돌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거점 국립대 의대교수 1000명 더 늘린다

정부가 밝힌 전공의 복귀시한인 29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4.2.29/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이날 정부는 전공의와 의료계를 달랠 당근책도 내놓았다.

의과대학 정원 2000명 확대에 맞춰 2027년까지 전국 9개 거점 국립대 의대 교수를 1000명 더 늘리기로 한 것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중대본 회의에서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의학교육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 거점국립대 의대교수를 2027년까지 1000명까지 늘리고 실제 운영 과정에서 필요한 경우 현장 수요를 고려해 추가로 보강하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거점 국립대 의대 교수는 1200명 정도다. 정부안 대로 3년내 1000명을 더 늘리면 지금보다 2배에 가까운 2200명 수준이 된다. 특히 정부는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등 필수의료 분야 교수를 더 늘리겠다고 했다.

국립대 의대 교수 증원 계획은 오는 4월 공무원 정기 직제에 반영될 예정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29일 오후 전공의들과 만나기 위해 서울 영등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강원지역본부 대회의실로 들어가고 있다. (공동취재) 2024.2.29/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복지차관, 예고대로 전공의들과 대화 시작

아직 현장 복귀한 전공의 숫자가 미미한 가운데 정부는 마지막까지 전공의의 현장 복귀를 설득한다는 계획이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이날 오후 4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강원지역본부에서 비공개로 전공의와 대화를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날 오후 취재진에게 "전공의 몇 명이 참석해 오후 4시 대화를 시작했다"고 알렸다. '전공의 몇 명이 들어간 것이냐'는 취재진 질문에 이 관계자는 "안에 10명 정도 있는데 직원들도 섞여 있어 전공의가 몇 명 있는지는 확실하게 모르겠다"며 "박 차관과 전공의들이 대화를 시작한 건 맞고, 전공의 1명 이상이 참석한 것 정도까지 말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박단 대전협 회장과 대전협 비대위원들은 이날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의대 증원 정국에서 정부와 전공의가 만나 대화를 나누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당초 비공개로 진행하려던 정부와 전공의와의 대화는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불발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박 차관도 이날 오전 열린 중대본 브리핑에서 "비공개로 하기를 원했고, 대화가 필요하다고 하는 전공의들이 자유롭게 오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언론에 공개가 되어 모임 사실이 알려졌다"며 "안 그래도 부담스러워하는 전공의들이 시간과 장소가 공개되는 바람에 더 많은 부담감이 있어 걱정이다"고 했었다.

다행히 극히 소수지만 전공의들이 만남의 장으로 나왔고, 대화가 시작된 만큼 어떤 결과물을 얻을지 주목된다.

29일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과 전공의들이 만나기로한 서울 영등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강원지역본부 대회의실 앞에 취재진이 몰려 있다. 2024.2.29/뉴스1

◇서울대병원장·환자 전공의 복귀 호소

의료현장에서는 전공의 복귀에 대한 호소가 이어졌다.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송정한 분당서울대병원장·이재협 서울시보라매병원장 3인은 소속 전공의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전공의 여러분, 병원장으로서 저희는 당부드린다. 이제 여러분이 있어야 할 환자 곁으로 돌아와 달라"고 말했다.

이어 "여러분의 진심은 충분히 전달됐다. 중증 응급 환자와 희귀 난치 질환을 가진 환자들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많은 환자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돌아와 달라"고 전했다.

하종원 세브란스병원장·송영구 강남세브란스병원장·김은경 용인세브란스병원장도 소속 전공의 전원에게 메일을 통해 "전공의 여러분, 이제 병원으로 돌아올 때"라고 전했다.

이들은 '세브란스 전공의 여러분께'라는 호소문을 통해

"여러분의 메시지는 국민에게 충분히 전달됐다고 생각한다. 중증·응급을 포함한 많은 환자가 지금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며

"의사로서 환자 곁을 지키며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지혜를 모으고 함께 노력하자"며 "선배로서 미안함을 전하며, 함께 협력해 이 위기를 잘 극복하자"고 했다.

한국벽혈병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등 9개 단체 모임인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정부, 의료계가 각자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상황에서 환자들이 억울하게 이용당하는 부분이 있다"며 "사직하고 수련병원을 떠난 전공의가 돌아와 생명과 직결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응급·중증 환자 곁을 지키는 것에 그 어떤 이유나 조건을 붙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공의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29일 광주 동구 전남대병원 응급실 앞에서 한 응급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2024.2.29/뉴스1 ⓒ News1 박지현 기자

◇불안한 환자들…혼란의 의료 현장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의료 공백이 빚어진 지 열흘째를 맞아 전국 의료현장에서는 심근경색 환자가 이송을 거부당해 경찰까지 긴급 이송에 투입되는 등 곳곳에서 크고 작은 혼란이 빚어졌다.

심근경색 통증을 호소한 60대 A 씨(여)는 경찰의 도움을 받아 건국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병원 측에서 환자를 받을 수 없다며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으라고 안내해 경찰차를 타고 다시 한양대병원으로 향했다.

건대병원 측은 "당시 응급실은 다른 심정지 환자의 CPR(심폐소생술)을 진행하는 등 긴박한 응급치료 중이었기 때문에 치료가 바로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다른 병원으로 이송을 안내했다"고 밝혔다.

충남대병원에 입원 중인 B 씨는 림프암 투병 중 또 다른 암이 의심돼 조직 검사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전공의 이탈로 검사날짜가 3주 뒤로 미뤄졌다. B 씨의 아내는 "혹시나 또 다른 암이면 어떡하나. 초기에 치료 시기를 놓칠까 싶어 매일 피가 마르는 느낌"이라며 "환자 중에는 하루하루가 소중한 사람들이 많다.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boazho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