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의 메디컬인사이드] 정부는 손에 잡히는 필수의료 대책을 내놔라

김윤(서울대 의대 교수ㆍ의료관리학)

편집자주 ...중증 응급, 소아, 분만 등 붕괴 위기에 처한 필수의료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 교수는 의사 수를 늘리는 것과 동시에 '나쁜 의료제도'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계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때로는 '논쟁적 존재'가 되는 그가 '김윤의 메디컬인사이드'를 통해 의료계 문제를 진단하며 해법을 제시한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사직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20일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에 의사들의 집단 진료중단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의 대국민 호소문이 부착돼 있다. 2024.2.20/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며 환자 곁을 떠난 전공의들은 집단행동의 명분으로 정부가 필수의료를 살리겠다고 내놓은 대책이 구체적이지 않아서라고 주장한다. 대한의사협회도 정부가 향후 5년간 1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하지만 어디에 얼마나 쓰겠다는 계획이 없으니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의사협회가 의대 증원에 반대하고 전공의들이 무더기로 근무지를 이탈하는 진짜 이유는 정부의 '필수의료 패키지'가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기보다 동네 병의원들이 많은 돈을 벌고 있는 비급여 진료를 정부가 규제하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21일 발표된 대한전공의협의회 성명서가 "국민 부담을 늘리는 지불제도 개편, 비급여 항목 혼합 진료 금지, (중략) 미용 시장 개방에 반대한다"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것을 보면 속내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환자 곁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의사들에게, 지금은 환자 곁을 떠나 있지만 정부가 진심 지역 필수의료를 살리겠다고 한다면 돌아갈까 고민하는 의사들에게, 그리고 정부의 의대 증원을 지지하는 국민들에게 정부는 '필수의료 패키지'라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믿음을 줘야 할 책무가 있다. 정부가 발표한 대책을 믿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그 목표를 언제까지 달성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이렇게 '손에 잡히는 필수의료 대책'을 내놓는 게 국민과 의사들의 신뢰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정부를 지지해 주는 국민과 환자 곁을 지키는 의사들에게 무엇을 약속해야 할까?

첫째, 응급·중증·소아·분만 환자의 건강보험 수가(진료비)는 적어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수준으로 높여주겠다고 약속하면 좋겠다. 최근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 진료대란이 더 심각해지는 이유는 당직 서며 힘들게 응급환자, 중증환자 보는 대학 교수 월급에 비해 당직도 없고 경증환자 보는 동네 병의원 의사 소득이 2~3배 수준으로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대학교수들은 사표를 내던지고 워라밸도 좋고 월급도 많은 동네 병의원으로 몰려가고, 새내기 전문의들은 교수 자리를 준다고 해도 대학에 남지 않는 게 대학병원에선 익숙한 모습이 된 지 오래다.

둘째, 지역 응급·중증·소아·분만 환자를 책임지겠다고 하는 의대와 대학병원에 의대 정원을 배정하고, 병원들이 힘을 합쳐 응급환자 뺑뺑이를 없애고, 중증 환자가 수도권 병원을 찾지 않아도 되게 만들면 건강보험 진료비를 올려주겠다고 약속하면 좋겠다. 자기 지역 응급환자가 골든타임 내에 얼마나 잘 치료받는지, 수도권 병원으로 빠져나가는 중증 환자를 얼마나 줄였는지 평가해서 성적이 좋은 지역 병원들에게 건강보험 인센티브를 지급하면 된다. 대학병원과 지역 종합병원들이 협력해서 환자를 보면 더 많이 보상하겠다고 약속하면 좋겠다.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이 환자를 서로 보겠다고 경쟁하면 환자와 의사가 모두 분산되면서, 진료의 질은 떨어지고 의사는 부족해지고 인건비는 올라간다. 건강보험 진료비를 아무리 높여줘도 소용이 없다. 대학병원은 중증 환자를 진료할 때 진료비를 높여주고, 지역 종합병원은 중등증 환자를 진료할 때 더 많은 진료비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략 1조원 정도를 투자하면 첫 번째, 두 번째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셋째, 응급환자 중증 환자 보는 의사들이 주 1회만 당직을 서도 되도록 환자 당 대학병원 교수와 종합병원 전문의 수를 늘리겠다고 약속하면 좋겠다. 전국 42개 권역응급의료센터와 60여개 지역응급의료센터의 응급실 전담 전문의를 1.5배로 늘리고(500명), 중증 응급환자를 수술하고 입원 치료할 내과(순환기, 소화기), 외과, 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 신경과·신경외과, 영상의학과, 마취과 교수(전문의)를 병원 당 20명씩 늘리는(2000명) 데 연봉 3억원을 기준으로 7500억원이면 된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박단 회장과 각 병원 전공의 대표 및 대의원들이 20일 낮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대강당에서 2024년도 긴급 임시대의원총회를 하고 있다. 2024.2.20/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넷째, 현재 주 80시간이 넘는 전공의 근무시간을 최대 60시간으로 단축하고, 필수 진료과 전공의 급여를 30% 인상하고 정부가 추가 급여를 부담하겠다고 했으면 좋겠다. 지난 20여년간 이뤄진 연구에 의하면 전공의 근무시간이 길어지면 의료사고는 늘어난다. 주당 근무시간이 60~70시간일 경우 48시간일 경우에 비해 의료사고 발생률이 2배 넘게 늘어난다. 첫 번째 약속처럼 대학병원 교수와 종합병원 전문의를 늘리면서 진료지원 인력(PA)을 함께 늘리면 가능한 일이다. 정부가 전공의 급여로 대략 2000억원을 지원하면, 우리나라 전공의 급여를 유럽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끝으로, 앞으로 3년 안에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했으면 좋겠다. 이 네 가지 약속을 모두 지키는 데 필요한 재정이 약 2조원이니, 정부가 '필수의료 패키지'에 투자하겠다고 한 5년간 10조원으로 감당 가능한 규모이다. 만약 이것으로 부족하면 정부가 발표한 대로 실손보험을 개선하고 비급여를 관리하면 매년 수조원을 절감할 수 있으니 그 돈을 필수의료에 투자하면 된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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