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파업이 트라우마?…'신중 모드' 전공의, 4년 전 무슨 일
4년 전 집단휴진 전공의 배제한 채 의정 합의로 21일 만에 복귀
집단행동에 따른 피해의식 작용…의협 불신 팽배
- 이훈철 기자
(서울=뉴스1) 이훈철 기자 =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에 반발해 집단 휴진 등 단체행동이 예상됐던 전공의들이 내부 이견으로 강경 모드에서 한발짝 뒤로 물러나는 모양새다. 4년 전과 달리 악화된 국민 여론과 2020년 의사파업 당시에도 의대 확대 문제로 파업에 나섰지만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정부와 합의하면서 파업 동력이 떨어진 사례가 있었던 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13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전날(12일) 온라인 임시총회를 열고 정부가 2025학년 대학 입시부터 의대 입학정원을 2000명씩 늘리겠다고 발표한 데 대한 구체적인 투쟁방안 등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2020년 의대 정원 확대에 맞서 국가 고시를 거부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의대생들이 현재 전공의가 돼 다시 정부와 대척점에 섰으나 4년 전과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2020년 의사 파업 때 똑닮은 2024년
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해 단체행동을 예고한 의료계의 반발은 4년 전과 상황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2020년 의사 파업의 재판으로 평가되고 있다.
2020년 7월23일 정부가 2022학년도부터 10년간 의과학대학 정원을 매년 한시적으로 400명 늘려 총 4000명의 의사를 추가로 양성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하자 의료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의사들의 최대 단체인 의협은 의대 정원 확대 철회·비대면진료 정책 중단 등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전국의사총파업을 단행하겠다고 강경 입장을 밝혔다.
이어 전공의들의 단체인 대전협도 곧바로 대표자 회의를 열고 24시간 동안 응급실·중환자실·분만실 등의 진료 인력까지 모두 철수하는 전면 파업을 결정했다.
당시 전공의들은 인턴과 4년차 전공의들이 우선 업무를 중단하고 이어 3년차 전공의들이 파업에 참여하는 등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대학 병원 등에서 실질적으로 의료 현장을 책임지는 전공의들이 전면 파업에 나서자 파급효과는 컸다. 집단휴진 참여율이 한 자릿수에 불과했던 전임의들과 동네 병원들도 전공의의 집단휴진에 동참하면서 의사 파업은 전체 의료계로 확산됐다.
2020년 8월7일부터 시작돼 한 달 가까이 진행된 전공의들의 집단 휴진은 정부와 의협이 집단휴진을 철회하는 내용의 합의안을 도출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당시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정부가 의대 증원 문제를 원점 재검토하겠다며 한발 물러서면서 합의안이 도출됐으나 "전공의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졸속 합의"라며 전공의들이 반발하면서 결국 없던 일이 됐다.
의정 합의 논란으로 의료계가 내분을 겪은 가운데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집단 휴진 지속 여부를 놓고 내부적으로 파열음이 나오기도 했다. 전공의들은 2차 집단 휴진 여부를 놓고 투표에 부친 결과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채우지 못해 부결된 뒤 2차 투표 끝에 파업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전공의의 집단 휴진이 한 달 넘게 지속되는 가운데 의대생들까지 국가고시 실기시험을 거부하면서 상황은 전환점을 맞았다.
전공의 집단 휴진의 동참의 의미로 응시생의 80%가 국가고시에 미응시하면서 국가고시는 파행을 겪었다. 의료계뿐 아니라 학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전공의들은 결국 9월6일 집단휴진을 유보하기로 하고 파업을 중단했다. 대신 업무개시명령을 받고도 복귀하지 않은 10여명의 전공의에 대한 고발을 취하하고 국가고시를 보지 못한 의대생을 구제해줄 것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전공의들이 동료 전공의와 후배들인 의대생을 구제하기 위해 집단 휴진을 중단한 셈인데 실질적으로는 의협이 전공의를 제외하고 정부와 일방적으로 합의하면서 파업 동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잇따랐다. 결과적으로 장기화 우려가 컸던 의사 파업은 약 한 달 만에 종료되는 결과를 맞았다.
◇4년 전 의정 합의 트라우마 됐나…2020년과 다른 2024년
4년이 지나 당시 국가고시를 거부했던 의대생들은 이제 전공의가 돼 단체행동 여부를 결정하는 입장에 섰으나 4년 전 강경했던 전공의들과 다른 행보를 보여 주목받고 있다.
이는 2020년 의사 파업 당시 의협에 대한 전공의들의 불신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박단 대전협 회장은 지난 7일 전공의의 단체행동 방향에 대해 의협과 노선을 같이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또 4년 전과 달리 정부의 강경한 입장도 전공의들의 단체행동을 주저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2020년 의대 증원에 대한 국민 여론은 60% 수준으로 현재 의대 증원 찬성하는 여론보다 낮았다. 또 당시에는 코로나19라는 국가 위기 상황에 굳이 의대 증원 문제를 꺼내야 했느냐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필수의료 붕괴에 대한 우려와 응급실 뺑뺑이로 대변되는 잇단 의료사고의 원인으로 의사 부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 4년 전 양측이 합의할 당시 의료계가 코로나 사태 이후 의대 증원 문제를 논의하자고 합의해놓고 이후 '수가 인상'만을 고집한 채 아무런 합의나 진전이 없었다는 점에 있어서도 의료계도 책임소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가다. 정부도 이에 4년 전과 같은 사태는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의료계 내부에서도 명분 없는 파업에 나서기가 쉽지 않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boazho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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