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2000명인가?…복지부 "근거 충분", 의료계 "혼란 부추겨"
복지부, 보사연·KDI 보고서 근거…"급속한 고령화 고려"
"2000명 가르칠 교수진 부족…필수의료 수가 구체화해야"
- 김규빈 기자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정부가 올해 고교 3학년이 대학에 진학하는 2025년 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고 2035년까지 10년간 총 1만명까지 정원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보건복지부는 전날(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2024년도 제1차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를 열고,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의대 입학정원 확대 규모를 확정해 발표했다.
정부의 기습적인 의대증원 발표에 의사들의 반발이 거세다. 의사들의 반발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정부가 의사 단체와의 합의를 건너뛰고 왜 일방적으로 의대증원 규모를 발표했는지가 첫째 이유이고, 두번째는 매년 2000명을 더 뽑겠다는 발상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다.
첫번째 이유에 대해 복지부는 그간 의료현안협의체를 운영하면서 대한의사협회(의협)와 28차례에 걸쳐 논의했고, 최근 의협에 의대증원 적정 규모에 대한 의견을 요구했으나 답변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방적인 발표'라는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매년 2000명'일까.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현재 의료 취약지역에서 활동하는 의사 인력을 전국 평균 수준으로 확보하려면 약 5000명이 필요하다. 이에 더해 급속한 고령화로 늘어나는 의료 수요를 고려하면 2035년에 1만명의 의사가 더 부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2025학년도 의대 입학정원은 현재 3058명에서 2000명 증원한 5058명으로 확대한다. 오는 2029학년도까지 매해 5058명 정원을 유지한 후, 그 이후엔 의료환경 변화와 국민의 의료이용 상황 등을 고려해 정원을 관리할 계획이다.
그간 복지부는 필수의료 위기의 원인으로 의사 수 부족을 꼽으며,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해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한눈에 보는 보건의료 2023'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 당 의사(한의사 포함) 수는 2.6명으로 전체 회원국 중 멕시코(2.5명) 다음으로 적다. OECD 평균은 3.7명이다.
증원 규모는 의료계의 예상 범위를 웃도는 수치다. 당초 의대 증원 논의 초반에는 300~400명 규모가 예상됐다. 앞서 전국 40개 의대 학장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올해 반영할 수 있는 증원 규모로 350명이 적절하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이후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등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며, 필수의료, 지역별 의료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의대 정원을 더 많이 늘려야 한다는 논의가 오갔다. 이후 복지부는 지난해 전국 40개 의대를 대상으로 희망 증원 규모를 조사했다. 40개 의대가 증원 가능하다고 밝힌 인원은 최소 2151명으로 파악됐다.
앞서 조 장관은 보건사회연구원 등 전문기관의 수급 전망을 토대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증원 규모를 보고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은 2035년 의사 수가 약 1만명이 부족할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여기에 취약지역의 부족한 의사 수 5000명을 더해 1만5000명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2035년이면 의사 1만5000명이 부족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간 2000명 증원은 10년 뒤인 2035년 의사 수급 추계를 근거로 했다. 조 장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내년도 2000명 정원 확대를 시작으로 2035년까지 1만명을 일단 충원하고, 나머지 5000명에 대해선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와 의료수요의 적극적인 관리, 시니어의사제 등을 활용해 보충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복지부는 주기적인 검토를 통해 필요하면 의사 인원을 늘리고, 필요하면 의대정원을 감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고령화 속도와 인구 감소 속도 등을 고려해서다. 정부는 이를 위해 의료 인력을 추계하고, 의대정원을 조정하는 '의료 수급 추계기구'를 설치할 방침이다.
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대규모 증원에 의료계는 반발하고 있다. 충분한 인력, 교육 시설 등의 확보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것은 의료 현장에서 혼란을 부추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의사들이 필수 의료가 아닌 미용분야로 진입할 수 있는 여지도 여전히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백순영 가톨릭대 의대 미생물학 교수는 "공공의대 등 정부에서 직접 투자를 해 의사를 만드는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며 "최근 10년 사이에 기초의학을 전공하고 교수가 된 사람이 몇 없어서, 지금도 지방의대에는 기초의학을 가르칠 수 있는 교수가 부족하다. 당장 의대생이 2000명 늘어나면, 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교수가 없다"고 밝혔다.
지방소재의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한 정형외과 교수는 "국민들이 의대증원을 지지하는 이유는 필수·지역 의료를 살릴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지만, 이번 증원으로 지방의대에 입학한 학생들이 졸업 이후에도 지방에 계속 머무를지는 미지수"라며 "이렇게 증원만 해 놓으면, 졸업한 2000명 모두 미용분야로 가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필수의료 수가 보상을 구체화하고, 지역 국립대병원에 투자를 해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rn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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