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의 메디컬인사이드] 의사 부족 근거?…동네 의원 수에 답 있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최근 대한의사협회는 의사가 부족하다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를 내놓으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주장을 믿어주는 국민이 없으니, 정부의 의대 증원 수요조사 결과 발표를 계기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를 새로운 무기로 삼는 것 같다.
대체 의협이 인정하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무엇일까? 의협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에 대한 요구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길 바라며, 최근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에 의사가 얼마나 부족하지를 근거를 제시하려고 한다.
먼저 만성질환자를 진료하는 동네의원 의사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알아보기로 하자. 의사가 얼마나 부족하지 알아보려면 사람들이 아플 때 대개 얼마나 멀리 있는 병원까지 이용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를 가지고 진료권을 설정한 다음 진료권 간에 의사 수에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멀리 의사가 있어서 제대로 진료를 못 받는 사람이 얼마나 더 많은지, 결국 의사가 부족한 진료권에서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지를 비교해 보면 의사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 수 있다.
암 환자·뇌졸중 환자는 2시간 정도의 시간을 들여서라도 대도시에 있는 큰 병원을 찾아가지만(대진료권), 응급환자·수술환자는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종합병원을 찾고(중진료권), 고혈압·당뇨병 같은 흔한 만성질환자는 15~30분 안에 갈 수 있는 동네의원을 찾는다(소진료권). 우리나라는 대략 1500여개의 소진료권으로 나눠진다.
동네의원이 부족한 지역은 붉은색, 많은 지역은 녹색으로 표시했는데, 대개 큰 도시에 동네의원이 많지만, 같은 시군구 안에서도 동네의원 수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진료권의 인구 당 동네의원 의사 수를 기준으로 '충분한 지역', '부족한 지역', '매우 부족한 지역'으로 나눠서 지역 간 의사 수 격차를 비교해 봤다. '충분한 지역'의 인구 1만명 당 동네의원 의사 수는 10.7명으로, '매우 부족한 지역' 1.5명과 엄청난 격차가 있었다.
대도시와 중소도시 도심 지역 동네의원 의사 수가 군 단위 시골 지역보다 7배나 더 많은 것이다. 시골에 노인이 더 많고 인구 당 의사 수를 비교한 것이니 환자가 없는 시골이라서 의사가 없다는 억지는 부리지 말자. 동네의원 의사가 '부족한 지역'과 '매우 부족한 취약지'에 사는 사람은 모두 22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44%에 달했다.
의협은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의료접근성이 제일 좋은 나라라고 하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시도별로 동네의원 의사가 많은 지역, 평균 이하인 지역, 아주 부족한 취약지로 구분해서 각각의 비중을 살펴보면, 인천과 울산을 제외한 특별·광역시 소진료권 대부분은 의사가 많은 지역이었던 반면 도 지역은 동네의원 의사가 평균 이하이거나 취약지인 지역이 60~70%를 차지했다.
인천과 울산에 의료취약지 비중이 높은 것은 광역시에 섬 지역과 시골 지역이 여럿 포함돼 있어서 생긴 착시현상이다. 아프면 동네의원에서 쉽게 진료받을 수 있다는 의협 주장은 대도시나 중소도시 도심에만 해당하는 말이었다.
시골에는 큰 병원만 없는 게 아니라 동네의원도 턱없이 부족해서 응급환자만 치료를 못 받는 게 아니라 고혈압·당뇨병 환자도 제대로 치료를 못 받고 있다.
동네의원이 부족하면 결국 만성질환이 잘 관리되지 않아 심각한 합병증이 더 많이 생기고 더 많은 사람이 사망한다. 동네의원이 '매우 부족한 지역'에 사는 만성질환자 중 자기 지역에서 진료받는 환자는 10%에 불과했고, 그 결과 지속해서 진료 받는 환자는 동네의원이 '충분한 지역'의 절반에 불과했다.
대한가정의학회 연구팀 연구 결과에 의하면, 만성질환을 잘 관리해 합병증 발생을 예방하고 사망률을 낮추려면 인구 1만명당 동네의원 의사 수가 10.7명, 그중 흔한 병을 두루 치료하는 일차진료 의사가 5.6명까지 늘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동네의원 의사가 1만5000명~2만2000명 더 있어야 한다. 이렇게 동네의원 의사 수가 늘면 매년 사망자를 2만명, 건강보험 진료비를 약 6조원 줄일 수 있다.
이 같은 격차는 시간이 지나면서 좋아지고 있을까? 아니다. 오히려 동네의원이 많은 지역에선 의사가 많이 늘고 부족한 지역에선 의사가 거의 늘지 않았다. 2015~2019년 사이 동네의원이 매우 부족한 취약지의 인구 1만명당 의사 수는 0.1명밖에 늘지 않았지만, 동네의원이 가장 많은 지역에서는 0.9명이나 늘었다.
의사가 늘면서 격차가 좁혀지기는 커녕 더 확대되고 있었다. 의사 배출을 늘리면서 취약지에 만성질환을 관리하는 일차진료 의사를 적극 유치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래에 의사가 부족해지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의사가 부족하다.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서만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동네의원 의사도 부족하다.
정말 환자를 위한다면 의사를 늘려봐야 지방에 가지 않는다는 '무용론'을 펼 게 아니라 만성질환이 관리되지 않아 생기는 심장병, 뇌졸중 같은 합병증을 치료하느라 쓰고 있는 진료비 6조원을 일차진료 의사 2만명을 양성해 중소도시 외곽 지역과 군 지역에서 진료하도록 하는 데 투자해야 한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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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중증 응급, 소아, 분만 등 필수 의료가 무너지고 있다. 의사 수 부족이 원인으로 거론되나 의료 현장에서는 보다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 교수는 의사 배출을 늘리는 것과 함께 '나쁜 의료제도'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계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때로는 '논쟁적 존재'가 되는 김 교수가 앞으로 '김윤의 메디컬인사이드'를 통해 의료계 문제를 진단하며 해법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