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게 파인 의료계 갈등의 골…전문가들 "의료법 리셋할 때"
"간호법 극한대결 벌일 내용 없어…정부 책임 있는 대안 내야"
"간호법 갈등을 더 나은 법과 제도 마련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 강승지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간호법으로 촉발된 의료계 갈등이 지난 16일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전환 국면을 맞았다. 직역 대다수가 "국민 건강에 피해를 주지는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서로가 서로에겐 상처를 남기고 있다.
하지만 간호법 내용을 보면 이렇게 싸울 이유를 찾기 어렵고 또 제정된다고 크게 바뀔 게 없는데도 극단적인 대결로만 치달았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간호법을 놓고 다툴 게 아니라 의료인의 업무 범위가 단 한 문장으로 명시된 의료법부터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에 힘이 실린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재무상임이사를 지낸 이평수 전 차의과학대학교 보건의료산업학과 교수는 18일 뉴스1에 "의료법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할 때"라며 "간호법만이 마련된 것도 문제고 간호법을 반대하는 것도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이 전 교수는 "그동안 의료계 상황이 잘못돼 있었다는 것은 국민 누구나 알게 됐다. 고령화 시대가 왔으니, 지역사회에 나가 돌봄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간호업무 성격상 지역사회에 나가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거부권 의결 취지도 이해하지만, 의료직역 간 업무 범위를 재설정한다는 의지 또한 명확히 밝혔어야 했다"면서 "간호계가 거부 사유를 받아들이지 못한 데는 정부 책임도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땜질식으로 손만 본다면 의료계 갈등은 영원히 봉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료관리학 교수 역시 "그때그때 주먹구구식으로 의료인 업무 범위를 정해왔다"며 "업무 범위를 정하는 법과 제도는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모든 의료인이 주도적으로 자기 직역 업무를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기 직역에만 유리한 결정을 하지 않도록 국민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위원회에서 업무 범위를 조정하면 된다. 선진국에서는 다 이렇게 한다"면서도 "특히 국민이 더 좋은 의료혜택을 받도록 진료환경에 따라 의료인 간 업무 범위의 중복은 합리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도 갈등의 근본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며 "배타적으로 각 의료인이 자기 업무 범위를 정하면 국민은 다른 나라처럼 좋은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다. '간호법이 최적의 대안이 아니다'라는 말로 회피할 게 아니라 책임 있는 대안을 내놔야 한다"고 부연했다.
또한 김 교수는 "정치권도 갈등을 정쟁의 불쏘시개로 쓰면 안 된다. 여당도, 야당도 문제"라며 "국회는 간호법 갈등을 더 나은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교수와 김 교수 모두 간호계의 준법투쟁이 업무 범위의 모호함으로 인한 대표적 사례 아니겠냐고 짚었다.
대한간호협회는 지난 17일 "불법 진료에 대한 의사의 업무지시를 거부하는 준법투쟁을 벌인다"며 "대리처방, 대리 수술, 대리기록, 채혈, 초음파 및 심전도 검사 등 불법 지시를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일부 간호사들이 관례로 해온 '간호사 업무 외 의료행위'는 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이른바 '진료 지원인력(PA·Physician Assistant)'으로 불리는 간호사들은 병원이 진료 의사 부족 문제를 해소하려 마련한 인력이다. 국내 의료법에는 의사와 간호사는 있으나 PA는 없다.
하지만 전공의 등 의사 인력이 부족한 외과에서는 필수 인력으로 자리 잡았고 제도화 필요성도 꾸준히 거론돼왔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현장에 1만명 이상의 PA 간호사가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간호계에서도 달라지고 있는 의료 환경에 맞춰 의료인의 역할을 조정할 논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간호계 관계자는 최근 사태에 대해 "갈등이 생기면 소송으로 가고, 의료법 위반이냐 아니냐 정도의 법으로 결정하는 상황이 이어졌다"며 "의사 이외 대부분 의료직역은 업무에 정당한 처우를 보전받기 어려웠기에, 뜻을 모아 바로 세우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든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의료기관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도 다양한 돌봄이 요구되고, 이 영역에 전문성 필요한 일들이 많이 생겼다"면서 "누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모른다. 영역을 마련할 법적 체계나 역할과 업무를 조정해 줄 기구, 논의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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